이제 사람이 되었네.
어두운 채도에 더 무겁게 보이는 구름이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바람조차 불지 않아 미동 없는 구름은 마치 판에 새겨진 것마냥, 한 장의 판화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월요일 아침은 그 이름만으로도 무거운 출근길이건만, 구름마저 그 무게를 더한다. 주말동안 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하지 못한 불만족도 한몫을 하겠지만.
이를 위로하듯 한 잔의 커피를 선물 받았다. 조금 부족한 잠과 짓누르는 침울함을 보다 가볍게 만들어주는 기분 좋은 선물이다. 라디오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활기찬 아침을 선사하려는 듯, 대중적인 신나는 음악들로 플레이 리스트가 구성되어 있다. 작은 흥얼거림으로 손끝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한동안 푹 빠져있던 악뮤의 노래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신기해
팔다리가 앞뒤로 막 움 움 움 움직이는 게
숨 크게 들이쉬면 갈비뼈
모양이 드러나는 것도
내쉬면 앞사람이 인상
팍쓰며 코를 쥐어 막는 것도
놀라와 놀라와 놀라와
가사를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중간중간 아는 단어들만 따라 흥얼거린다. 작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정글숲 노래를 부를 때면, 마지막 후렴구 '악어떼!'만은 크게 따라 부르던 조카의 모습이 겹쳐진 탓이다. 언제 단어들이 이리도 늘었는지, 노래를 들려줄 때면 아는 단어들을 함께 따라 부르곤 한다. 하긴, 가장 첫 노래를 따라 했던 것이 10개월쯤이던가. '멋쟁이 토마토' 노래를 좋아하던 조카가 노래를 틀어 줄 때면, '토', '토'라며 단어를 내뱉으며 웃곤 했었지.
조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보다 6개월이 지난 후에, 종종 이런 말을 내뱉곤 했었다.
"신생아라는 종족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진짜 사람이 되어가네."
품 안에 안는 것조차 조심스럽던 조카가 하루하루 커 가면서, 옹알이를 하고 제 몸을 조금씩 움직이던 모습을 보며 내뱉었던 순수한 감탄이었다. 이 말에 제부는 "원래 사람이었어요."라며 웃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부도 같은 말을 내뱉었더란다. 이제 진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악뮤의 노래처럼,
팔다리를 앞뒤로 막 움직이고.
숨도 호-하고 내쉬기도 하고.
다양한 표정을 짓기도 하는.
그 모든 모습들이 참 놀랍다. 그저 여동생 품 안에서 꼬물거리던, 제부의 한 팔 안에도 쏙 들어가던 그 작은 생명체가 기어 다니고, 말을 하고, 장난감까지 가지고 놀다니. 조카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다 신기했더랬다. 그리고 여전히 그 모습들이 신기하다.
어느샌가 키가 쑥 커버렸다.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줄 때면, 가슴팍에 동그란 머리가 톡 닿았었는데, 이제는 이모의 얼굴까지 머리가 쏙 올라온다. 조카를 앉히고 몸을 비스듬히 세우거나, 혹은 뒤로 몸을 빼 살짝 누울 듯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자동차 그림만 찾아 헤매던 시기도 이젠 안녕, 동화책 내용에도 귀를 기울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요즘에는 '00에게 변기통이 생겼어요' 책에 푹 빠져있다. 또. 또. 를 외치는 조카의 호응에 보통 3번 정도 읽어주고 나면, 그제야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슬슬 배변훈련을 시작할 시기가 되어가니 관심이 생긴 걸까.
조산방지제를 먹고 방에서 쉬고 있던 여동생에게 조카가 '엄마, 엄마'를 외치며 손을 잡아 내린다. 엄마 좀 쉬어야 해-라며 할머니가 품에 안고 나갔지만, 평소와 다른 느낌에 여동생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여동생 손을 꼭 잡더니, "엄마. 응아. 응아." 이야기를 했다던데. 슬슬 배변훈련을 위해 아기 변기통을 찾아보고 있는 여동생과 제부다.
이미 사람이 된 조카가 도도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이젠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젠 어린이네. 어린이 다 되었네."
아직도 여전히 조카의 성장은 놀랍다. 그리고 여전히 신기하다. 천천히 커도 되련만, 너무 빨리 크니 아쉬움마저 느껴진다. 주차를 하고 어두운 하늘을 바라본다. 저 먼 곳에 작은 틈새로 파란 하늘이 빼꼼, 얼굴을 내민다. 조카 생각에 웃음 짓는, 커피 한 모금을 넘기며 힘을 내는, 나쁘지 않은 월요일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