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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하지 않아

마지막을 배웅하는, 손을 잡는.

by 연하일휘

녹아내리는 눈 위로, 새로운 눈이 내려앉는다. 한올씩 떨어지는 눈송이는 하얀 더미 위에 안착하거나, 눈의 흔적과 함께 녹아내린다. 작은 악기를 빠르게 연주하듯 눈앞을 가득 메울 듯 내리고 있지만, 남아있는 눈의 양은 점차 줄어든다. 녹아내리는 속도가 더 빠른 탓이다. 운전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게 된다. 눈발이 휘날릴 때면, 오늘 혹은 내일의 출퇴근을 걱정하였는데, 찰팍거리는 물웅덩이의 크기가 커질수록 추위가 가시고 있음을 느낀다. 걱정도, 더 이상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되는 무의미한 눈발이 되어버렸다.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던데, 내리고 있는 이 눈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추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가적인 존재일까. 결국 별다른 의미 없이 스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남아있는 눈들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내려오는 것일 수도 있지.


작고 따스한 손가락이 검지 손가락을 감싼다. 손의 한기가 조카에게 옮아갈까 놀라며 고개를 돌리니, 방긋거리며 웃는 낯을 마주한다. 기분 좋았어? 웃음과 함께 말을 건네니 기분이 좋은 듯 이모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댄다. 그러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에 시선이 꽂히며 슬그머니 손을 놓는다. 아빠! 아빠! 제가 본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운전을 하는 제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얘 정말 기억력도 좋아."



아빠와 길을 지나가다 마주친 로드롤러, 엄마와 부두에서 구경한 큰 배, 이모 품에서 마트 앞에서 보았던 지게차. 그 장소를 지나갈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무엇을 보았는지 열심히 설명을 한다. 아빠, 아빠! 롤러. 롤러.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8-90% 정도가 사라진다던데, 이 조그마한 아가의 이 기억들은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주말이면 조금 먼 곳으로 다 같이 가족 나들이를 나가곤 한다. 아쿠아리움, 목장, 여러 종류의 콘셉트를 지닌 키즈카페,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을 파는 카페 등. 가족들 간의 나들이를 다녀올 때면, 여러 장의 사진과 동영상들이 여동생에게서 전달된다. 내가 보지 못한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며, 즐거웠을 조카의 웃음을 상상한다.


어린아이들의 기억의 소실은 양면적이다. 아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란 감정과 함께, 보이지 않아도 아이에게 남아 정서발달이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의 기쁨. 제부는 하나의 의미를 더 더한다.



"그래도 제 기억 속에는 남아 있으니까요."



이모를 사랑하고 때론 집착하던, 그리고 이모와 책을 읽고 놀이를 하다 외출을 하던. 그 모든 기억들도 어느샌가 슬그머니 네 기억 깊은 곳으로 들어갈 테다. 이모라도 그 기억들을 간직한 채 너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전할 거야. 언젠가 이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기더라도, 그 시간의 간극을 깊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감정들이 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으면서. 아쉬움보다는 따뜻함만을 남긴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


짧은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도착하니, 눈발이 잦아든다. 신발 아래로 찰팍거리던 물웅덩이는 넘쳐흐르듯 작은 물줄기들을 이룬다. 군데군데, 가장자리에 남아있는 눈더미 위로 내려앉은 눈들이 흰빛을 더한다. 내려앉는 눈들이 남아있는 눈들의 손을 잡아준다. 녹아 사라질 마지막을 배웅하는 듯, 혹은 외롭지 않게 마지막을 함께 하려는 듯. 무의미한 것은 없다.



dandelion-5010861_1280.jp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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