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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건네다,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아나간다는 것

by 연하일휘

묵직한 찬 공기가 집안을 메웠습니다. 날카로운 차가움이 아닌, 조금 뭉툭해진 듯한 공기의 밀도는 커튼을 걷기 전에 이미 바깥의 날씨를 가늠하게 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아침을 맞이하는 빗방울들을 만나게 되었네요. 어제부터 흐린 날씨이기에 예상은 했었지만, 외출을 해야 할 때 내리는 비는 조금 심통이 나게 합니다. 아버지 병원 진료가 있는 날,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이동합니다. 허리통증으로 걷는 것이 힘들다 하시던 아버지는 동네 정형외과에서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지병이 있으셔서, 다니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조금 긴 기다림 끝에 '신경외과' 예약에 성공하였습니다.


병원 앞에서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주차장으로 차를 이동합니다. '인지장애'로 인해, 한때는 어머니가 수납을 하시는 동안 갑작스레 아버지가 사라지시기도 하는 통에 함께 병원 진료를 따라 들어갔었습니다. 하지만 걷는 것이 힘들어지신 이후부터는 주차장에서 멍하니 나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차창 너머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다, 마실 것을 사러 걷기 시작합니다. 읽을 책도 가져갔지만, 오늘은 집중이 힘든 날이네요. 처음 진료를 받는 과라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어 카페 대신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실 음료를 고르려다, 1+1이 붙은 라떼를 집어 들고, 아버지가 드실 물을 하나 구입합니다. 카페인을 섭취하면 안 되는데, 달콤한 음료를 싫어하셔서 언제나 아버지를 위한 음료는 '물'이 되어버리네요.


잠시 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부모님을 기다립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진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 방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요. 수술이나 시술까지 갈 정도는 아니지만, 섣부르게 다른 물리치료를 시도하기에는 무리인가 봅니다. 결국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고, 집에서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빠, 약 먹으면서 좀 걸어야겠다. 걷는 게 허리에 제일 좋잖아."


"응"


"매일 앞에 있는 놀이터까지만이라도 5분씩 걸어보자."


"응"



한동안 허리가 아프다며 걷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셨던 아버지이셨습니다. 그런데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에 조금은 '운동'을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으신 것일까요? '걷자'라는 말에 별다른 거부감을 표하시지 않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좀 걸어야 허리가 나아질 텐데...'라는 말과 함께 산책이라도 나가려 했었지만, 매번 아버지의 거절로 실패하신 탓에 많이 속상해하셨었거든요. 그리고 아버지의 '허리 디스크'는 지금 처음으로 오신 게 아니었기에, 어머니의 걱정이 더 깊으셨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시면서 어머니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었습니다. 통증이 심하다 하여, 약초를 구해다가 찜질팩을 만들거나, 소금 찜질팩을 만들어선 늘 커다란 찜통으로 데우시곤 하셨어요.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의 단편 속에는, 커다란 찜통 앞에 서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가부장적이면서, 폭력적이기도 한. 그런 아버지의 옆에서 어머니는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었습니다. 살아오며 제가 어머니께 받은 상처들이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네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아내로서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을 떠올릴 때면. 잠시 그 상처들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게 되곤 합니다. 어느 날엔가, 어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나서 결혼한 거야?"


"그건 왜 궁금해?"


"진짜 끝과 끝에서 살았었잖아. 그러니까 궁금하지."


"너라면 다시 생각하고 싶겠냐? 엄마 사는 거 보면서? 다신 물어보지도 마."



힘들었던 삶을 다시 떠올리기가 많이 힘드신 어머니. 그리고 그 힘든 삶의 끄트머리로 나아가며 편찮으신 아버지.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아 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점점 더 어린아이가 되어가시는 아버지, 고집이 세지시며 어머니의 속앓이를 종종 듣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지금 상태만으로라도 안정되었다는 것에 안도를 하고 있지만요.



Pixabay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아버지께서 차 안을 둘러보시더니, 제가 마시던 커피를 들어 올리십니다.



"그거 단 거라서 아빠 못 마실 텐데."


"여보"



제가 마시던 커피를 들어 그대로 뒷좌석의 어머니께 건네드립니다. 어머니는 마실 것 있다며, 그냥 두라고 하시구요. 당황한 제가 한마디를 외치자 두 분이 웃는 소리가 차 안을 울립니다.



"아니, 마누라 챙긴다고 딸내미 꺼 뺏어가는 아빠가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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