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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모순적이야.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릴 지도 모르지.

by 연하일휘

하나 둘 내려앉는 눈송이의 자리에는 검은 흔적이 남는다. 내려앉길 기다리며 응시하던 한 녀석은 바람에 휩쓸려 허공으로 흩날린다. 그 뒤를 따른 시선의 끝에 색이 옅은, 파란 하늘이 놓여 있다. 이토록 추운 날씨에, 피부를 에이는 바람에도 흰 구름을 걷어내는 파란 하늘이 어색한 날이다.


눈송이들의 향연에 빨래를 걷기 위해 옥상으로 향한다. 잠깐의 시간 동안 이미 차게 식은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이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아직 젖어있는 것인지, 혹은 말랐음에도 손에 달라붙은 냉기 탓인지. 차가운 옷들을 더듬으며 가늠해 보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만 만든다. 거실에라도 잠깐 널어둘 수밖에. 잔뜩 움츠러드는 몸으로 해야 할 일이 늘었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다.


며칠 뒤면 봄이 찾아온다던데, 따스한 바람이 찾아온다 하던데. 여전히 스며드는 냉기는 겨울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두꺼운 구름이 물러나며 보이는 하늘빛만은 봄으로 성큼 다가선 듯하다. 역설적인 날씨다. 마치 금세 꽃봉오리들이 제 빛을 발하며 피어나는 풍경에 어울릴 법한 고운 하늘빛인데, 여전히 얼어붙을 것만 같은 바람을 지니고 있다니. 시각과 촉각의 불일치가 조금은 서글퍼진다.


조금 이른 퇴근 시간, 낮이 되어 차창으로 잔뜩 들이부어진 햇빛은 포근하다. 바깥의 찬 공기가 차단된 공간에 온전히 햇빛 하나만이 존재한 탓일까. 선선한 바람을 벗 삼아 꽃길을 걷던 일 년 전의 풍경이 금세라도 펼쳐질 것만 같은 날씨다. 아마도, 모든 계절 중에서 겨울은 가장 모순적인 계절일지도 모른다. 가을과 봄의 하늘빛을 훔쳐다 비쳐 보이면서도, 제 본질에 맞는 찬 공기를 잔뜩 품고 있으니 말이다. 파랗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움츠러드는 추위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짝이다.


아닌가. 하늘빛과 온기의 관계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겨울일지도 모른다. 물감이 부족해 옅게 칠해진 하늘빛에는 옅은 온기가, 여러 번 덧칠한 듯 진한 푸른색을 지닌 날에는 조금 더 진한 온기가 느껴지곤 하니까. 짙어지는 하늘색만큼, 햇빛이 전해주는 온기의 양이 더 많게 느껴지는 것은 내 착각만은 아니겠지.


차가운 공기가 머물러 있다. 옷 속으로 파고들지 않은 채, 내가 지나쳐 갈 때마다 스쳐 지나가듯이 냉기가 닿았다 떨어진다. 햇빛 아래에선 그 냉기들이 땅 속으로, 혹은 하늘 위로 숨어버린다. 더 이상 입김이 새어 나오지 않는 낮의 따스함에 움츠렸던 몸을 조금 펼쳐본다. 겨울이 천천히 물러나는 날. 혹시 미리 맺힌 꽃망울이 있을까 기대하게 되는 날.



flower-7697547_1280.jp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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