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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내쉴까, 혹은 한(恨)을 내쉴까.

한숨을 내쉬다, 혹은 듣다

by 연하일휘

두툼한 이불 너머로도 한기가 배어든다. 잔뜩 움츠러든 채, 이불을 여미다 흠칫. 차가운 것이 코 끝에 닿는 것이 느껴진다. 늦잠을 자는 누나를 촉촉한 코로 깨워주는 강아지다. 팔을 뻗어 쓰다듬어주다 이불을 들어주니 그 안으로 쏙 들어선다. 토닥이는 손길 몇 번에 금세 제 자리를 잡는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포근해지는 하루라지만, 오늘 아침은 더 차게 느껴진다.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온다. 부모님을 모시고 외출을 하는 일요일 오전, 식당 앞에 내려드리고 경사진 골목 어귀에 주차를 한다. 오전의 햇빛이 적당한 열기와 밝기로 차 안을 내리쬔다. 차창 너머의 찬 기운이 차 안으로 쉬이 스며들지는 않는다. 들고 온 책 한 권을 펼치고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이유 있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날이다.


조금 갑갑해진 공기에 창문을 조금 내린다. 냉기가 천천히 차 안을 침범하지만, 따스한 햇살 덕에 기분 좋은 선선함으로 다가온다. 귓가에 '에효-'하는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클린하우스를 정리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걸음을 옮기며 내뱉으신 소리였다. 경사진 골목길이 힘들어 새어 나온 소리였을까, 단지 몸의 힘겨움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쫓은 아주머니의 뒷모습은 삶의 힘겨움이 어깨에 얹어진 듯하다.




한동안 잦은 한숨에 원장선생님이 한 마디를 건넸었다.


"무슨 일 있어요? 쌤 요새 한숨이 늘었어."



별일 없어요- 짧게 미소 지으며 대답을 했었지만, 별 일이 없는 상황은 아니었었다. 집안의 우환이 지속되며 꽤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과 우울감에 짓눌리던, 그때의 나는 인지하지 못한 한숨을 계속 내보냈었다.



한숨.


'하다'라는 표현이 있다. 중세시대에 '크다, 많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하다'라는 단어는 제주도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기에 꽤나 익숙하다. '한숨'은 크게 내쉬는 숨, 길게 내쉬는 숨이란다. 그런데 가끔은 '크다, 많다'라는 뜻이 아닌, 가슴에 맺힌 한(恨)에서 온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곤 한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내려 내뱉는 숨, 그것이 한숨은 아닐까.


답답함에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한숨을 쉬어도,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와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한숨 한 번에 어깨가 조금씩 움츠러들었을 뿐, 답답함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는 것이 힘들었다. 때론 작은 한숨들 사이로 눈물이 함께 배어 나왔다. 눈물 역시도 가슴을 뜨겁게 달굴 뿐, 나의 힘듦을 덜어내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힘듦을 누군가가 알아주는 하나의 신호가 되더라.


나 홀로 속으로 꾹 눌러놓은 힘듦을 지나가듯 '괜찮냐'고 묻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로가 되곤 했었다. 거짓이라 할지라도, 괜찮다는 말을 반복해서 내뱉는 것이 괜찮아지는 시작이 되곤 했었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혼자 남겨진 것은 아닐 테니까.




나의 한숨을 뱉는다. 가슴속의 한(恨)을 뱉는다.

누군가의 한숨을 듣는다. 그 속에 배어든 한(恨)을 듣는다.



어깨가 짓눌리고 삶의 무게에 숨을 쉬기 힘들어질 때, 배어 나온 한(恨)의 소리를 듣고 작은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그리고 그 작은 말 한마디가 숨겨진 눈물을 닦아낼 때가 있다.


가끔은 힘들면 한숨을 내쉬자, 그리고 누군가의 한(恨)에 위로의 말을 건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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