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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는다.

나이 듦의 어리광

by 연하일휘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그 끝이 발바닥을 향한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다면, 상처가 났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마주하는 날, 산책이란 이름으로 동물병원을 향한다. 누나가 신경을 못 써준 사이에 강아지의 발톱이 너무 길게 자라나 있었다.


군데군데 뭉게구름이 파란 하늘을 장식한다. 겨울의 햇빛은 미지근하게 공기를 데워 기분 좋은 산책길을 마련해 준다. 바람도 적은 따스한 날을 마주한 강아지는 잔뜩 꼬리를 흔들며 동네 곳곳을 탐방한다. 평소와는 다른 산책길에 신이 났던 녀석은 동물병원으로 가는 어귀부터 발걸음이 느려진다. 간간히 누나의 얼굴을 보다가도 다른 길로 빠지려 떼를 쓴다. 아가를 달래 가며 들어선 동물 병원은 간만에 대기 없이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자주 와서 원장님한테 관리 부탁하지~"



카운터를 지키는 사모님은 진료대 위에서 달달 떨고 있는 강아지를 함께 쓰다듬어 주신다. 강아지에게 약한 주인과, 약한 주인에게 잔뜩 어리광을 부리는 강아지. 유독 발톱을 다듬을 때마다 아프다며 깨갱거리는 통에 직접 강아지 발톱을 다듬지를 못한다. 덕분에 주기적으로 동네 동물병원 원장님께 부탁을 드리는 중이다.



톡,

톡,

톡,

톡.



몇 번의 반복적인 절단음으로 발톱 정리가 끝이 났다. 잘 다듬어졌는지 할머니가 살펴봐줄게- 사모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가의 발톱을 꼼꼼히 살펴 주신다. 지난번에 귀가 불편해 진료를 받았었기에, 오늘 추가적으로 진료를 받는다.



귀 안쪽에 나 있는 털들을 정리하기 위해 파우더를 뿌린다. 귀를 문지르고 아가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품 안에 꼭 껴안는다.



"이제 귀가 어두워져서 제 목소리도 못 듣더라구요."


"아휴, 이제 나이가......."



11년도 3월에 데려온,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들과 동갑인 우리 아가. 나에게는 영원히 아가이겠지만, 이젠 노견. 아니 장수견이라는 이름이 붙어버렸다.


털을 정리하고 귀를 닦아낸다. 약을 바르면서, 강아지는 불편한지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려 한다. 어허, 가만히- 원장님이 아가에게 말을 걸지만, 닿지 않을 목소리는 나에게만 전해진다. 너는 들리지 않을 텐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그저 무서운 시간일 텐데. 가슴의 욱신거림이 눈가로 전해진다.




아가를 부른다. 몇 번이나 큰 소리로 아가의 이름을 불러도 반응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으로 나는 너에게 나의 사랑을 건넨다. 때론 나의 손길에 깜짝 놀라는 너를 바라보며, 전해줄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듦이 서러워진다. 다정히 너를 부르지만, 그 사랑만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


췌장이, 그리고 신장이 안 좋아진다. 어린 시절부터 약했던 심장에 대한 걱정이 더해진다. 줄 수 있는 간식에 제한이 생긴다. 오랜 산책을 하지 못한다. 길어진 산책이 이젠 아가의 아픔으로 돌아온다. 나는 너의 나이 듦에 아픈 것일까, 너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 줄어든다는 사실에 아픈 것일까.


점점 어리광이 늘어간다. 품 안에 안겨있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듯, 부드러운 손길을 갈구한다. 털을 다듬고 귀를 청소하고 항문을 정리하는 기본적인 것들조차 아가의 어리광에 쉬이 밀려난다. 결국 나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너를 돌본다. 나와의 시간이 스트레스가 되어버릴까, 그 두려움이 어리광을 받아준다는 선택지만이 남아버린다.


아니, 그것들은 어리광을 받아준다는 핑계였을까. 혹은 나의 편안함을 위한 핑계였을까. 무심했던 시간들이 나이 듦의 모습에 하나씩 죄책감으로 박혀간다.


짧은 진료를 끝내고 동물병원을 나서는 아가는 잔뜩 꼬리를 세운 채 누나의 발걸음을 이끈다. 산책이란 이름으로 동물병원을 향한 것에 대한 서운함도 없는 듯, 밝은 웃음을 보여준다. 밝은 햇살이 아가의 위로 내리쬔다.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잔뜩 신이 난 꼬리를 잠시 응시한다. 아가가 걸음을 줄을 끌어당긴다. 그래, 집에 가자. 집에 가서 누나가 맛있는 거 줄게- 아가는 토닥거리는 발걸음으로 앞서나간다.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더라도, 그 마음을 전해 들었다는 듯이.



조금만 더 아프지 말자. 조금만 더 나랑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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