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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기 예뻐하시면 안 돼요.

고추 달고 태어나면 어쩌지?

by 연하일휘

"뭐 해?"


"밥 먹어."


"엄마 아래층에 있는데."


"벌써 왔어?"


느긋하게 아점을 먹으며 저녁 도시락을 싸는 것이 보통의 일과이건만, 강제로 부지런해진 요즘이다. 하루 세 번, 식후에 먹어야 하는 병원 약 덕분에 세 끼니를 챙기는 일이 이토록 귀찮을 줄이야. 집에 있는 야채들과 비법 수프인 라면 수프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던 와중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조리원에서 퇴소하는 여동생과 손녀를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단다.


옷장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마스크까지 장착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거실에서는 아가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와 사돈어른(여동생의 시어머니)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뺨을 살짝 간질이기도 하며 두 할머니는 손녀 사랑에 잔뜩 빠져 들었다.


소파에 앉은 채, 그 모습을 빤히 구경하니 어머니는 손주 자랑을 시작한다. 봐봐, 첫째보다 손가락도 길고 코도 오똑해- 아들과 딸이 확실히 다르다며 4남매를 키운, 딸만 셋인 어머니가 신기해한다. 여동생네 첫째도 아들, 언니네도 아들. 한동안 아들들만 보다 만난 딸내미라 그런가 보다.



baby-2416718_1280.jpg Pixabay


"제부, 축하해."


임신 소식부터 출산 이후까지 몇 번이나 건넨 인사지만, 늘 제부는 환한 웃음이 걸린다.


"딸 아닐 것 같아. 고추 달고 태어나면 어쩌지?"


여동생에게 몇 번이나 걱정스러운 말을 건넸다던 제부는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서야 딸인 것을 믿을 수 있었단다. 제부도 남동생 하나만 있는 데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딸'이라는 존재가 더 신비롭게 느껴진 듯하다. 나나 여동생은 "아들 하나에 딸 하나니까, 밸런스가 딱 좋다." 정도의 감상평이었건만, 아빠에게는 딸이란 존재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가 보다.


여동생이 조리원에 있을 적에도 끊임없이 집안 정리와 청소를 하던 제부였지만, 막상 아기가 도착한 이후부터 더 바쁘다. 가습기도 새로 청소하고, 아기 침대를 한 번 더 털어내고, 집안 이곳저곳의 강아지 털을 돌돌이로 밀고 다닌다. 아빠도 청소를 열심히 하지만 뭔가 2% 정도 부족하다던 여동생의 말을 보완하려는 듯, 평소보다 더 꼼꼼한 손길이 이어진다.


"제부는 이제 애 둘 키우느라 정신이 없겠다."


쑥쑥 크기 시작하는 조카는 엄마 품에 쏙 안겨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제 눈높이에서 놀아주는 아빠를 제일 좋아한다. 조카를 볼 때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제부는 옹알이 수준의 단어까지도 용케 알아들으며 자동차 하나만으로도 조카의 흥을 최대로 이끌어 낸다. 덕분에 아빠 바라기가 된 아들과 이제 갓 태어난 딸을 돌보며 눈치 싸움을 해야 할 제부를 응원한다.


엄마에 대한 질투가 크게 걱정되지 않는 것은, 조카의 말 덕분이다. 아기를 보여줄 때마다 엄마더러 "아기 안아, 아기 안아"라는 말을 반복한다. 어린이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선생님이 안아주기 때문일까. 여동생의 말에 의하면 "아기는 여자 어른이 안아야 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단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모두 여자인 탓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여동생은 둘째를 안은 채로 첫째를 돌봐도 될 것 같은데, 제부는 첫째의 질투가 생겨날까 걱정이 한가득이다. '질투' 이야기가 나오니 여동생은 시어머니에게 단단히 당부를 한다.


"어머니, 절대로 첫째 앞에서 애기 예뻐하시면 안 돼요."


엄마가 없는 시간 동안 조카는 부족한 사랑을 채우려는 듯, 할머니 품에도 자주 안겼었다. 평소라면 이모 품에서만 놀던 녀석인데, 뛰놀다가도 할머니 무릎에 가서 폭 안겼다가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가서 안아준다거나 하는 행동들이 늘어났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높아진 요즘, 둘째를 예뻐하는 모습에 혹여 첫째의 질투가 폭발할까 걱정하는 여동생의 마음이다.


"첫째가 요즘 어머니한테 자주 안기면서 엄청 좋아한다면서요. 어머니가 둘째 예뻐하는 거 보면 질투해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요. 그러니까 우선 첫째 많이 챙겨주셔야 해요."


"아마 동생 때리거나 괴롭히겠지."


손녀의 뺨을 간질이던 어머니는 담담하게 대꾸한다. 사돈어른의 표정이 복잡하다. 물론 손자도 예쁘다마는, 한참을 기다리다 마주한 손녀를 예뻐하기 위한 눈치싸움이 걱정되는 탓이다. 제부는 남동생과 나이차가 많이 나다 보니, '질투'와 같은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단다. 반면에 연년생 아들딸을 키운 어머니는 질투로 인한 남매의 싸움을 질리도록 본 덕분인지 조언을 건네기까지 한다.


"첫째 놀아주다가, 품에 안고 '동생 한 번 볼까?'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사돈."


두 할머니의 시선은 손녀의 얼굴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할머니들의 사랑과 걱정이 넘쳐나는 오전, 나 홀로 동상이몽이다. 둘째 조카도 너무 예쁘긴 한데, 첫째가 보고 싶다.



baby-2964756_1280.jp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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