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외부세계가 그를 들쑤시지 않는 한, 스스로 이동하지 않는다. 거리를 관조하는 이파리.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린 놈은 용을 쓰는 것인가, 마음이 가벼운 것인가. 푸름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자연의 색을 닮았다. ‘푸르다’는 하늘도 푸르고, 잔디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이렇게 대지와 발 없는 것을 잇는 말이다. 푸른 꿈을 껴안고 볼을 부풀리면서 하얗고, 노랗고, 빨간, 온갖 빛깔을 피우는 생떼 같은 고집. 나, 울어도 될까. 하늘거리며 세상을 채우는 푸름 앞에 조아려도 될까. 우리가 함께 해서 애처로워도 기쁜 나날을 씨앗에 새겨도 될까. 내가 자족을 말할 때 결핍을 떠올리고, 내가 희망을 기대할 때 절망을 예견하고, 내가 죽은 이를 기억할 때 산 사람을 회상하는 네가 미울 때가 있어. 나는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잎에 감탄할 준비를 마쳤지만 이내 눈치를 보지. 덤덤한 눈길. 나를 통해 세상을 보니? 네 몫까지 더해서 방정맞게 아름답다 말하는 내가, 나는 싫을 때가 있어. 나무가 자리를 지키면서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지는 이파리를 떨구고, 조금씩 말라가는 데엔 아무 의미가 없고, 나라고 그걸 모르겠니. 의미는 인간이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것. 인간이 억지로 틔운 싹이라도, 흙 속에서 영원히 잠든 낱알이라도, 아름답다 말하며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 인간의 힘. 연두빛 내음에 취해 눈 감으며, 우리는 이미 충만하다고. 엄마 손 잡고 오르던 산길에서 제비꽃 만났던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