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Sep 23. 2020

우연을 기다리는 집

우연의 서재

영화 취향이 맞지 않는 남편과 나는 같이 영화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딸과 남편은 종종 같이 보지만 나와 남편은 주로 각자 본다. 그런데 집이란 걸 지으면서 우리는 같은 영화 앞에 나란히 앉게 되었는데, 그 영화 제목은 바로 '나비잠'.


'러브레터'의 그녀 '나카야마 미호'를 오랜만에 보는 것도 좋고,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감독의 로맨스 영화도 궁금하고, 아름다운 미장센도 끌리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은 영화의 배경인 그 집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배경이 아닌 주연이나 다름없는 영화 속 그 집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아베 츠토무가 짓고 실제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한다. 외벽부터가 내가 애정 하는 노출 콘크리트 형식에, 나비잠에 딱 어울리는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예산에 쫓겨 많은 선택지가 없었던 우리에게 대부분이 그림의 떡이었다. 우리가 눈여겨보고 참고가 되었던 것은 찬해가 료코의 부탁으로 정리한 서재다. 유명작가인 료코는 연대별, 작가별 등으로 정리된 틀에 박힌 서재가 싫다. 눈을 감고도 이쯤이면 이 작가의 이 책이 있겠지. 하고 눈을 떠보면 항상 그 책인 게 싫었던 그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책을 정리하고 싶다. 료코의 부탁에 따라 찬해는 색깔과 음영에 따라 책을 정리한다. 그라데이션으로 춤추는 듯한 파란 책장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어떤 책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우연히 어떤 책을 마주치게 되는 서재에 매료된 나는 우리 서재도 저렇게 정리하자고 남편을 졸랐다. 남편은 시큰둥했다. 우리나라 책, 특히 우리 책은 무채색이 많아서 저런 느낌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그러더니 갑자기 딸의 그림책 책장으로 가서는 색깔별로 책을 정리했다. 짜잔, 바로 요런 느낌 되시겠다.


색깔별로 정리한 그램책들


하지만 우리 서재는 사회과학 책이 많아서 그런가 무채색이 압도적이다. 우리 서재는 색깔별 정리가 무의미하다는 남편의 말에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의 마주침을 기대하는 낭만은 사라지고 값싸게 많이 꽂을 수 있는 실용적인 목적만 남게 되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우리는 찬넬 선반을 선택했다. 벽에 직접 찬넬 선반을 튼튼하게 설치하기 위해 시공팀에 석고보드 마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왜 찬넬 선반이었나?


찬넬 선반 설치 직후, 집이 아니라 매장 같은 느낌


많이 꽂힐 것

무거운 책을 2층으로 가져 올라갈 엄두가 안 나기도 했고, 책을 한 곳에 다 모아 두고 싶었다. 이사 오기 전에 버리기도 많이 버렸지만, 여전히 책이 많았다. 내 책 만큼이나 딸의 책도 불어나고 있었다. 칸막이가 있는 책장보다 찬넬 선반이 압도적으로 많이 꽂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막상 해보니 전에 사용하던 칸막이형 책꽂이보다 책이 대략 1.5배 이상 많이 꽂힌다는 결론.


값쌀 것

4800mm나 되는 벽 전체에 들어갈 책장을 제작하려면 기백만원은 우습게 들 테지만 찬넬 선반은 재료비만 50만 원 남짓 들었다. 나무 선반은 물푸레나무로 이미 제단 된 것을 주문했고, 찬넬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설치는 남편과 아빠가 직접 했다.



잘 보일 것

보통 기성품 책장이 깊이가 30cm 정도 된다. 하지만 단행본의 폭은 15cm~20cm 이다. 일반 책장에 책을 꽂으면 깊숙이 들어가 책이 잘 보이지 않고 책을 넣고 빼기가 쉽지 않다. 쓸데없이 깊어서 생기는 여유 공간이는 잡동사니가 올라 앉거나 먼지가 쌓이게 된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선반 폭을 단행본 크기에 맞춰 20cm로 하자고 했더니 남편이 그래도 좀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25cm로 제작했다. 책 제목이 잘 드러나다 보니 놀러 온 동네 아이들이 오다가다 책을 자주 빼내고 이리저리 들춰보다가 곧잘 빌려간다. 대여 횟수가 많아지면서 최근 대출장부를 만들었고, 우리 서재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이 되었다.


우리 집 책 대출장부


애어른 구별 없을 것

딸의 방에 책을 꽂아주면 딸은 자기 방에 콕 처박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딸이 방으로 쏙 들어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거실에서 같이 책을 봤으면 하는 욕심과 크면서 자연스럽게 내 책으로 손길이 옮겨가길 바라는 더 큰 꿍꿍이로 애어른 책 구별 없이 나란히 꽂았다. 딸의 책은 접근하기 좋은 가장자리에 모아두긴 했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내 책과 자유롭게 섞이고 있다. 그랬더니 이웃집 중학생 아이가 책 빌리러 와서 '모모'를 빌려가더니 그다음에 '총균쇠'를 빌려갔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아저씨가 아들과 함께 읽을 거라며 딸이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 원숭이'라는 책을 빌려갔다. 물론 가져가서 몇 장 넘겨보다가 덮어두었다지만 애어른 경계를 넘나들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인다. 방금 딸 아이가 넷플릭스에서 한다는 그 책 아니야? 하길래 한 번 읽어보라고 '보건교사 안은영'을 꺼내주었더니 읽기 시작했다. 딸은 어떻게 읽을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딸과 같이 읽을 수 있다는 건 매우 흥분된 일이다.


가까이 보면 여러 가지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책장이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북카페 같다고들 한다. 친구들이 농담으로 커피랑 책 팔아서 대출 갚으라고 한다. 애초 꿈꾸었던 컬러가 만들어내는 우연은 아니지만 또 다른 우연의 마주침이 발생하고 있다. 나는 그 우연의 마주침을 한동안 즐기게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 잘 날 없는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