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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ug 13. 2020

타일

셀프 시공

비로소 우리 집이 되는 순간, 우리 집이구나 실감 나는 때는 언제일까? 누구는 집 열쇠를 받았을 때, 누구는 이사하고 첫날밤에 실감이 났다고도 한다. 나는 직접 주방 타일을 붙였을 때였다. 그만큼 많이 고민했고, 고생스럽기도 했고, 의외로 재미도 있었고, 끝나고 보니 매우 뿌듯했다. 고생한 만큼 기억도 더 깊이 각인되어서 두고두고 생각날 것이다.


우리 집은 모든 서사는 예산으로부터  시작된다. 역시 이번 타일도 그놈의 빠듯한 예산 때문에 시작되었다. 보통 주방 타일은 싱크대 상부 보이는 부분에만 붙이는데 우리는 (또 그놈의 돈 때문에) 싱크대를 오픈 수납장(경첩 달린 문, 서랍이 없는 형태)으로 제작하면서 벽 전체에 타일을 붙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싱크대를 제작해주신 인테리어 사장님이 이왕 직접 타일 붙일 거면 주방과 연결되는 다용도실까지 다 붙이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면서 그만 일이 커지고 말았다.


우리 집이니까 망해도 그만이고, 재미 삼아 한 번 붙여보는 거지 뭐.


용감한 척, 호기롭게 말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에겐 최후의 보루,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내 눈엔 못 하는 게 없는, 말만 하면 척척 해내는 너무나 완벽한 아버지와 그런대로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는 남편이 옆에 있다. 아버지에게 우리의 계획을 얘기하며 도와달라고 했더니 허허, 웃으시면서 한번 해보자, 해보면 되지, 하셨다. 아버지는 늘 그런 식이다. 뭘 한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법이 없다.


타일 붙일 날을 받아놓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망하면 어떡하지, 후회하면 어떡하지, 매일매일 걱정이었다. 겉보기에는 청년 같은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칠순을 훌쩍 넘긴 노인인데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불안했다. 타일 크기를 어떻게 할지, 어떤 식으로 붙일지(가로, 세로, 벽돌식)도 고민이었다.


종이 타일 시뮬레이션, 느낌도 보고 타일 개수도 대략 가늠해볼 수 있다.


타일과 본드뿐만 아니라 모든 장비를 사고 구하는 일도 큰 일이었다. 이틀 전 남편은 동네 타일 가게에 가서 필요한 타일과 도구들을 미리 사 왔고, 타일 절단기도 대여했다. 아버지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도구를 주섬주섬 챙겨서 올라오셨다. 남편은 불안했는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으로 레이저 수평기까지 구입하고야 말았다. 돈 좀 아끼려다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고 구박을 했지만, 막상 해보니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


결전의 그날이 밝았다. 아니 날이 밝기도 전 새벽 5시에 일어났다. 혹시라도 다른 작업자들과 동선이 겹쳐서 피해를 줄까 봐 새벽 일찍 이동하기로 했다. 날씨는 우리 편이 아니었다. 하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새벽 6시에 문을 여는 공구상에서 타일 절단기를 빌려 현장으로 향했다. 타일 20박스와 본드 3통을 하나씩 이고 지고 날랐다.


타일 주방 벽 앞에 섰다. 정말이지 벽이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붙여갈지 막막했다. 핵심은 타일 쪽(온장이 안 들어가는 경우 타일 잘라서 넣기)이 가장 덜 나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붙여갈지 논의했고, 타일이 대략 몇 장이 들어가는지도 계산을 했다. 이렇게 서로 논의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아침 7시쯤 도착하여 9시가 다 되어가도록 타일은 붙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불안했지만, 아빠는 붙이기 전에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이후 붙이는 건 금방이라며 본드를 한 삽 퍼서 벽에 툭! 하고 던져 놓았다. 그리고 옆으로 살살 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첫 장이 붙고, 나란히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레이저 수평기로 수평을 잡고, 스페이서가 간격을 잡아주니 크게 탈이 나지는 않았다. 탄력이 붙으니 재미가 붙었고, 자신감이 생겨났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셀프 시공할만하다.


남편이 야심 차게 구입한 레이저 수평기


그래도 순탄하면 재미없지. 타일이 자꾸 깨져버렸다. 300mm 타일을 세로로 절단하는데 그때마다 타일이 깨져버렸다. 아빠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장 탓도 해보고 기술 탓도 해보다가 나중에 타일 중간 쪽이 살짝 배불러 있어서(평탄하지 않아서) 타일이 자꾸 깨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요령을 터득했고, 겨우 겨우 완성했다. 점심시간 빼고 꼬박 7시간을 붙인 결과 6평 남짓 타일 시공을 마무리했다.


수없이 깨진 타일 조각들


대충 보면 흠잡을 때가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실수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타일 간격을 잡아주는 스페이서가 깊숙이 들아가지 않은 것도 있고 타일에 묻은 본드를 긁어내다가 타일을 긁어놓기도 했다. 무광 타일이라 다루기가 더 까다로웠다. 하지만 처음 붙인 거 치고는 잘했고, 우리가 한 거니까 실수도 사랑스러웠다. 건축시공을 하는 분이 돈 100만 원 아꼈다고 했지만, 우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남겼다. 남편과 아빠와 함께 땀 흘리며, 시행착오를 경험하여 일했던 그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X1000000 좋았다. 주방에 서 있을 때마다 땀 뻘뻘 흘리면서 딸네 집 타일 붙여주던 아빠 얼굴이 떠오를 거 같다. 아버지의 노고도 불구하고 남편은 마치 자기 혼자 다 한 것인 양 동네방네 자랑할 것이다. 그래도 하는 짓이 귀여워서 봐줄 생각이다.  


모두 마무리된 주방 타일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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