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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Oct 06. 2020

조금씩 천천히 크겠습니다

집에 나무심기 2 : 주목

집에 주목은 한 그루 있어야지!"


마당에 배롱나무 한 그루 심었다고 자랑했더니 아빠는 주목을 말했다. 주목? 고산지대에서도 끄떡없다는 그 주목? 수천 년을 산다는 주목? 나무 도감을 찾아보니 주목은 추운 데서 강하고 매우 더디 자란다고 한다. 주목이라는 이름은 나무 기둥이 붉어서, 붉을 주(朱)를 쓴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참 내가 좋아하는 책, 몬스터 콜스에서 몬스터이자 주인공을 성장으로 이끌게 하는 것도 주목이다. 뭐, 어쨌든 멋있는 나무인 건 알겠는데 더디 자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목을 사줄 친구를 찾고 있었다. (자랄 때 부모님 속을 뒤집어 놓고선 집 짓고 나서는 부모님 말을 듣게 되는 건 무슨 조화 속인지..) 본질은 친구지만, 나이론 언니, 사회적으론 직장 동료였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맘 때만 먹을 수 있는, 시장에서도 팔지 않는 귀하고 맛있는 것을 먹여 주겠다며 꼬셨다.


먼 길을 달려와준 친구를 데리고 오늘의 본론인 나무 가게로 곧장 데리고 갔다. 우리는 서론 이런 거 필요없는 사이다. 나의 무례한 태도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친구도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였다. 근데 나무 가게에 가서 막상 주목을 사려니 망설여졌다. 워낙 더디 자라서 그런가 비싸기도 했고, 빨리 크는 나무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 불쑥불쑥 치솟았다. 다른 나무들도 구경해보았지만 처음 보았던 주목이 이미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착한 호구 내 친구는 이왕 사는 거 크리스마스트리도 할 수 있게 큰 나무를 사자고 했고 나는 키워가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며 아담한 나무를 고집했다. 오랜 망설임 끝에 1m가량의 아담한 주목을 선택했다. 친구는 물망에 올랐던 에메랄드그린과 라일락도 한 그루씩 사자고 했다. 집을 지으면 뻔뻔해지는가. 왠지 나무는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자라는 거니까 사주는 사람도 보람 있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고맙단 흔한 인사도 없이 덥석 받았다.


고구마 줄기와 고구마 순 따다가 맞이한 일출


집에 돌아와서 당초 약속했던 음식을 내놓았다. 비주얼이 산뜻한 편은 아니어서 그런지 친구는 젓가락으로 겨우 한 가닥 건져내서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동그란 친구의 눈은 점점 더 커졌다. 도대체 이거 뭐야? 묻는데도 알려주지 않고 애를 태우다가 정체를 밝혔다. 고구마순이라고?(고구마 줄기 아님!!!) 친구는 신기해했고, 좋아했다. 친구는 다른 반찬은 다 필요 없다며 고구마순 무침과 뒷산에서 주운 알밤만 먹고 배부르다고 했다. 결국 멀리서 온 친구에게 나무 세 주나 받아내고 맛있긴 하지만 결국 풀떼기에 지나지 않는 고구마 새순만 먹여 보내고 말았다. 그 친구 앞에서 난 늘 일관되게 싸가지가 없다.



친구는 갔다. 주목이 남았다. 우리 집 입구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고, 계속 그럴 것이다. 딸아이는 주목을 주몽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1차원적이고 유치한 감도 있지만 주몽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 오다가다 주몽이를 마주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문득 생각날 때마다 주몽이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친구와 주목이 닮았다. 내가 변덕을 부리고 싸가지 없게 굴어도 친구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어주었다. 친구처럼 주몽이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친구는 주목이 천천히 조금씩 자라는 게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도 주몽이와 함께 천천히 조금씩 자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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