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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Dec 22. 2020

별을 보는 이유

방구석 1열에서 보는 우주쇼

목성과 토성이 가장 가까워진다고 했다.

저 멀리 산골짝에 있는 천문대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최소 몇십 만원씩 하는 천제 망원경 없이도

육안으로도 두 행성을 볼 수 있는

이번 생에 유일한 기회라는데

딱히 바쁜 것도 없고 심심한데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선 별을 보려면 불빛이 없는 깜깜한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대학 때 천문우주학과에 다니던 남자를 잠깐 만났을 때 별을 본다며 어느 시골 공동묘지에 찾아갔던 기억-별은 못 보고 딴짓만 하고 돌아왔던-기억이 난다.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한여름이어도 쌀쌀한 밤 날씨를 견뎌야 하고,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도 기본이다. 저 아득하게 멀고 높은 곳을 올려다 보느라 목 디스크가 걸릴 것 같은 뻐근한 통증도 참아내야 한다. 그래도 볼까 말까 한 게 별이다. 그 보기 어려운 별을 우리는 보았다!!!

그것도 무려 방구석 1열에서.

충분히 어둡고, 높은 건물이 없는 그린벨트에 살고 있어서, 오늘 목성과 토성 대근접을 보려고 낸 창인 것 같이 정확히 남서향으로 길게 난 고정창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별을 기다리고 있는 딸의 뒤통수


불을 끄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오늘 동지라서 그런지, 그 역사적인 날이라는 것을 아는 건지 해는 서둘러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서쪽 하늘이 빠르게 물들었다 금세 깜깜해졌다. 올해 마지막 초승달을 기점으로 그 근처 남서쪽 하늘을 왔다 갔다 하다가 유독 밝은, 평소 같으면 인공위성이라고 했을 정도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가 동네에서 탐조하려고 산 싸구려 망원경을 들이댔다. 별 기대없이 초점을 맞추다가, 오오~!!! 두 개의 별이 가까이 근접해 있는 게 보였다. 딸이 망원경을 가로챘다. 오오오~!!! 이거 실화? 목성은 사탕처럼 보이고 토성의 띠까지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목성과 토성임에 분명했다. 다른 행성과 달리 매우 멋있어 보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토성의 띠까지 보이는 것 같아 우리는 쫌 흥분했다.

그렇게 소란을 떨며 별을 보고 있노라니, 별이 뭐길래, 눈으로 보면 하나의 점이고, 망원경으로 봐야 두 개의 점이고, 우주에선 먼지일뿐인 별이 뭐길래 이렇게 좋아하고 흥분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보니까 어때?

__좋아. 신기해.

우리는 왜 별 보면서 좋아하는 걸까?

__응?(뭘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로) 엄마, 날 봐봐. 내가 왜 좋아? 여름이는 왜 좋아? 그냥 같이 있으니까 좋잖아. 서로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좋잖아. 별도 그런 거지.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 그런 거.


딸은 내가 뭔가 이유, 의미, 교훈 따위를 찾는 행위를 매우 싫어한다. 그런 낌새라도 보이면 바로 제동을 걸고,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타박을 한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맨 첫 장, “이 이야기에서 주제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고소당할 것이며, 교훈을 찾으려는 사람은 추방당할 것이고, 줄거리를 찾으려는 사람은 총살당하리라”라는 말은 딸이 곧잘 들이대는 레퍼런스다. 그러게, 그냥 좋은 건 좋은 거지.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 그러고 보니 별 보려고 기다리면서 빈 하늘 실컷 봐서 좋았고, 불 끄고 괜히 숨죽이고 소곤대며 별을 기다리는 시간도 좋았고, 올해 마지막 초승달이 나지막이 걸린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목성과 토성이 가까이 만나 하나의 별처럼 밝게 보이는 것도 좋았고, 3만원 짜리 10배율 망원경 생각보다 쓸모 있어서 매우 좋았고, 우주쇼 관람에 돈 안 받아서 좋았고, 무엇보다 구박을 받을지언정 딸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좋았다. 그냥 그렇게 좋았다. (우리와 같이 별을 못 본 남편에겐 쫌 미안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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