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도 살 수 있나요?

#4. 스댕 밥통

by 무엇이든 씁니다

나는 쓸모없는 물건을 잘 사지 않는 실용주의자이지만, 당근 마켓을 서성이다 보면 그 쓸모의 개념이 흔들리고, 그런 신념 따윈 우습게 무너지곤 한다. 어떤 물건이 어떤 사람, 어떤 그리움을 끌어올릴 때 무장해제된다.


최근에 스댕 밥통이 그랬다. 어느 추운 날 당근에 올라온 스댕 밥통의 단단한 자태와 세월의 때가 묻은 때깔을 보자마자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더 정확히는 할머니가 지켜서 전달하고자 했던 그 온도가 찌릿찌릿 전해져 오는 듯했다.


전기밥솥이 없었던(있었더라도 어려운 가정 형편에 사지 못했던) 시절에는 스댕 밥통이 보온밥솥의 역할을 했다. 할머니는 갓 지은 밥을 빠르게 스댕 밥통에 퍼담고, 뚜껑을 덮고 수건으로 싸고, 담요로 푹 덮어서 아랫목에 묻어두었다. 겨울이면 핫플인 아랫목에 늘 깔려 있던 커다란 장미 꽃무늬 담요를 파고 들 때는 신중해야 했다. 부주의하게 파고들다가 밥통을 들썩거리거나 뒤엎기라도 하는 날엔 할머니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그렇게 이중삼중으로 꽁꽁 싸매서 지키고자 했던 밥의 온도는 갓 지은 밥처럼 호호 불어야 할 정도로 뜨겁지도, 찬밥처럼 식지도 않고 참 적당했다.



당장 사들이기로 했다. 약속한 장소로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뒤 어떤 분이 밥통을 품 안에 꼭 껴안고 나타났다. 마땅한 쇼핑백을 찾지 못해서일 테지만 스댕 밥통에 참으로 합당한 운반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통을 받아 안는 순간 그저 안개처럼 잘 보이지 않으면서 서서히 젖어드는 기체화 된 그리움이 고체화되어 내 손에 쥐어진 느낌이었다.


전기밥솥이 있으니 밥통이 딱히 필요하지 않지만, 밥통은 늘 밥솥 옆에서 대기 중이다. 밥을 새로 지어야 할 때 남은 밥을 이 밥통에 퍼 담아둔다. 그니깐 찬밥통 신세다. 그 밥통은 찬밥은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을 때, 최고의 빛을 발한다. 손님이 왔을 땐 밥통에 밥을 소복하게 담아 식탁에 올려두고 각자 필요한 만큼 퍼갈 수 있게 모둠 밥통으로 쓴다. 손님들은 내가 사들인 어떤 그리움의 언저리에서 각자의 추억을 배회하곤 한다. 대체로 비어있는 밥통 신세이지만, 밥통에는 어떤 그리움이 가득 차 있다. 그것만으로 밥통의 존재감이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