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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May 31. 2021

파랑새를 보았다.

뻐꾸기도 보았고

엄마, 일어나 봐! 엄마가 좋아할 만한 걸 가져왔어!


아침부터 이 세상 텐션이 아니다. 딸이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을 내 코에 가져다 대며 간지럼을 태운다. 응, 예쁘네, 부스스 일어나 영혼없는 대답을 했다.


있잖아, 엄마! 파랑새를 봤어!


얘가 꿈을 꿨나?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우리가 동네에서 탐조한 지 1년이 넘어가지만 파랑새는 아예 우리의 위시 리스트에도 없다. 파랑새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귀한 새님이시다. 파랑새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좀 낭만적인 면은 있어도 파랑새나 기다리는, 그런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아니란 말씀.


엄마, 파랑새는 뻥이고, 이거 봐봐!


아빠 휴대폰을 내 코 앞에 들이밀고 play! 앗, 이것은? 우리가 매일 듣지만 한번도 본 적은 없는, 그 뻐꾸기?


https://youtube.com/shorts/ptHYdl0fsuE?feature=share


이거 어디 유튜브에서 돌아다니는 동영상 아냐? 하지만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 딸과 남편의 대화였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뻐꾸기가 이렇게 팬 서비스가 좋다고? 보란 듯이, 찍어보란 듯이 이렇게 잘 보이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운다고? 5월에 짝짓기 시즌이라 잘 보이는데서 구애를 하는 건가? 아쭈, 빙그르르 돌면서 춤을 추네.


망원경에 휴대폰을 대고 찍은 뻐꾸기


엄마, 그리고 진짜 파랑새도 봤어!


손가락으로 쓰윽 넘긴 다음 사진에는 진짜 파랑새가 있었다. 어디 꿈에서나, 동화, 만화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파랑새, 이름이 정말 파랑새. 파란 깃털이 예쁜 파랑새였다. 우와! 횡재했네.



나 자는 사이, 남편과 딸만 나가서 파랑새를 보고 오다니! 역시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 새를 보는구나, 역시 나가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파랑새를 보는구나. 그동안 나물 캐느라 고되기도 하고 남편이랑 싸운 뒤 같이 나가기 싫어서 침대에서 뭉갠 것도 있는데 나만 손해였네. 파랑새는 있다. 깊은 산 속이 아닌 은근히 우리 가까이에 있다. 나도 이제 일찍 일어나서 파랑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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