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속한 나의 위치
매일 아침 눈 뜨면 제일 먼저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서의 삶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빨래가 가장 그렇다. 물론 주택에 살아도 집안에서 모두 해결되는 건조기가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처럼 건조기 없이 해와 바람에 의지하여 빨래를 말리는 경우에는 날씨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날씨라는 자연에 종속된 삶에 가깝다.
장마철은 우리에게 가장 취약한 시기다. 길게는 한 달 동안 빨래를 할 수 없거나, 하더라도 보송보송하게 말릴 수 없다. 장마 전에 웬만한 빨래들을 미리 다 해서 쟁여놓는다. 장마 직전 마지막 햇빛이 반짝하는 사이 세탁기를 세 번이나 돌려서 이불 빨래 삼모작을 했다.
빨랫감을 줄이는 긴축재정도 시작된다. 딸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샤워할 때 대형 바스 타월, 샤워가운, 머리 말리느라 수건을 두 개씩이나 쓰는 딸에게 장마철에는 수건을 하나씩만 쓰라고 부탁했다. 수건 하나로 어쩌라고, 하는 표정을 짓길래, 장마인데 어쩌라고, 했더니 바로 수긍한다.
절대 권력자에 대한 절대 순종에 가깝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질서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묘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자연에 속해 있는 나의 위치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면, 그 한계가 주는 불편함들도 기꺼이 즐길 수 있게 된다. 지 잘난 맛에 살다가, 밖에서는 오만방자하다가도 자연 앞에서 고분고분, 순종하면서 살다 보면 자연에서 나를 소외시킬 위험, 자연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망각할 위험에서 나를 구할 수 있다. 그러기에 기꺼이 자연에 종속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