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Jul 28. 2021

에어컨 없이 존버

한여름의 생존법

우리는 에어컨이 없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위한 실천 이런 거 절대 아니다. 그냥 에어컨 바람이 싫다. 잠깐은 몰라도 에어컨 바람에 오래 노출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피부가 아리다. 회사에 다닐 때 사무실과 지하철 에어컨을 못 견뎌서 한여름에도 카디건을 늘 걸치고 다녔다. 차라리 더운 게 낫다는 입장이다.


나는 부모님께 많은 걸 물려받았는데 더위, 추위를 잘 참는? 잘 안 타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나는 이 더위에 선풍기 없이 잔다. 누가 내 딸 아니랄까 봐 딸도 그런대로 잘 참는 편이다. 딸은 더위는 괜찮은데 습한 게 싫다고 한다. 유전적으로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남편은 더위와 습기 모두에 취약하다.


해마다 폭염이 찾아오면 에어컨 사자는 남편과 버티는 나 사이에 기싸움이 팽팽하다. 캐스팅 보터인 딸은 중립이다. 딸이 에어컨 타령에 합세하면 내 마음이 요동치겠지만 딸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랜다. 매년 여름마다 남편이 대략 일주일 정도 에어컨 타령을 하는데, 더위보다 남편의 졸라 댐에 못 이겨 마음이 흔들릴 때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고 에어컨 타령은 조용히 사라진다.


에어컨 없이 살 수 있는 건 도심이 아닌 시골스러운 변두리에 살고 있고, 작년에 지은 새집이라 단열이 잘 되고 맞바람 치는 창문이 있기 때문이다. 맞바람 신봉자인 나는 설계할 때 맞바람이 치도록 마주하는 창을 냈는데 이 창으로 바람이 드나들면 아무리 더워도 크게 덥지 않다. 물론 바람 한 점 없는 날은 집안의 온갖 선풍기를 풀가동 해도 덥다.


에어컨이 없으니 날씨에 맞게 삶의 패턴이 좀 바뀐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아침에 할 일을 해치운다. 나는 요즘 새벽 5시와 6시 사이에 일어나 여름이(반려견)와 산책을 하고, 8시 전까지 집안 일과 필요한 일을 마친 후 샤워를 하고 그 뒤로는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여름에는 집에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내가 워낙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문턱이 낮아 늘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는 우리 집이지만 여름에는 이 모든 인간관계와 사교활동을 일시 중단한다. 의례히 친구들도 여름에는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 한여름에는 우리 세 식구만 단출하게, 조용하게 지낸다.


도서관에 자주 간다. 지난주 37도까지 올라갈 때는 도서관에 있었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마친 우리 동네 도서관은 피서지로 최적이다. 나와 딸은 도서관에 하루 종일도 있을  있지만 에어컨 바람에 머리가 아플 때쯤 일어나서 집에 온다.


부인 잘 못 만나 더위를 감수해야 하는 남편의 소소한 사치를 한시적으로 묵인한다.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냉동실 채워도, TV 앞에 붙박이로 있어도, 영화를 결제해서 봐도 아무 말도 안 한다. 딸에게는 그 비싼 유기농 건오미자로 오미자청을 만들어 수시로 공급하고 있다.


에어컨 없이 사는 게 좋은 점도 있다. 나는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편이다(한의원에 침 맞으러 가면 늘 듣는 소리가 몸에 힘 좀 빼라는 소리다). 근데 더울 땐 몸에 힘이 빠져서 자연히 릴랙스가 된다. 평소엔 낮잠도 잘 안 자는 스타일이지만 여름엔 좀 늘어져 낮잠을 자기도 한다.


난 웬만해서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다. 예전에 검도를 했었는데 대련을 하고 호구를 벗으면 관장님한테 혼나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땀으로 샤워한 것처럼 흠뻑 젖어있는데 나는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정도여서 열심히 안 하고 뺀질거린다고 오해를 산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고집스러운 땀샘과 땀구멍도 한여름에는 땀을 좀 낸다. 아침에 산책하면서 가볍게 뛰기도 하는데 그때 흘리는 땀 속에 몸속에 쌓인 노폐물이 빠져나오는 기분이다. 아침 산책 후 마당 수돗가에서 어푸어푸하고 하는 팔, 다리, 목까지 씻는 반 샤워에 가까운 세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루틴이다. 요즘 아이들은 땀구멍이 거의 없다고 한다. 땀을 흘리며 놀 일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여름엔 적절하게 땀을 흘려야 한다고 믿는 나는 내 몸이 그렇게 진화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고, 적절한 때 적절한 기능을 해주기 바란다.


그래서인가 난 아주 작은 온도차와 아주 미세한 바람도 시원하다고 느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이 솔솔 불고 있다. 자연 바람이 불 땐 선풍기를 끄고 바람이 지나는 길에 앉아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곤 하는데 그렇게 상쾌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주위에선 우리가 에어컨 없이 산다고 걱정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7 8초의 더위가 아직도 한참 남았다. 우리의 한계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일단은 존버 려는데 과연 올해도 존버는 승리할까? 나도 궁금하다.











이전 13화 함께 익어가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