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첫 포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쏴아-하고 내리던 어제저녁, 저녁을 먹고 야구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1회부터 홈런을 치고, 5:1로 앞서가는 상황, 남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포도 한 송이를 따오겠다고 했다. 이 비에? 우리가 봄에 심은 포도나무에 포도가 몇 송이 달렸는데 한참 포도 특유의 보라 빛으로 영글어가고 있는 중이다.
왜 아직 익지고 않은 포도에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냐며 나는 성급한 남편을 타박했고, 남편은 빛깔만 봐도 안 다며 딱 한 송이만 따 보자고 했다. 사실 오늘 처음 그러는 게 아니라 일주일 전쯤부터 벼르고 있었다. 며칠 전에 못 참고 한 알 따먹더니 아직은 시다고 뱉어냈으면서, 엊그제도 또 따고 싶어 했고 나는 뜯어말렸었다. 오늘도 말렸으나 기어이 전지가위를 들고나가서는 아주 엉성한 포도 한 송이를 들고 나타났다.
보나 마나 신 포도일 거야
본체만체했다. 이미 양치질까지 마쳐서 안 먹을 생각이었다. 남편은 내 앞에서 보란 듯이 한 알을 따먹고서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땡그랗게 뜨고 엄청 맛있다며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딸도 포도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진짜 맛있네, 하며 나를 약 올리듯 쳐다보았다. 양치질한 게 아까워서 안 먹으려고 했는데 안 먹으면 나만 손해라서 냉큼 따서 입에 넣었다. 우와! 이게 보기엔 엉성해도 싱싱하고 새콤달콤 꽤 맛있더란 말이다. 뜨거운 여름, 태양 빛을 이 작은 포도 알에 부지런히도 담았구나, 한 알 한 알 지난여름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농약은커녕 거름도 제대로 못 해주었으니 포도 알이 믿는 건 해와 바람과 비였을 것이다.
우리 먹성은 두당 한 송이도 모자라지만 세 식구가 겨우 한 송이를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따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난다. 이런 소소한 재미라도 있으니 집콕 생활이 덜 지루한 것 같고. 저렇게 엉성한 포도가 열 송이 남짓 되려나 있으니까 앞으로 한 열흘간은 포도 한 송이에 우리 세 식구가 모여 앉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