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을 주었고
작년 여름 마당에 수돗가를 만들고 주변에 뭘 좀 심었으면 좋겠어서 고민할 때 누군가 물 좋아하는 수국을 심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그때 수국이 물水자를 쓴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올봄에 수돗가 옆에 목수국 한 그루를 심었다. 성질머리도 급하지, 어제 심었다면 오늘부터 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다. 주위에 산수국(나중에 알고 보니 불두화, 산당화였음)이 풍성하게 피었을 때도 우리 집 목수국은 잎만 무성하고 꽃은 무소식이었다. 여느 나무들처럼 심은 첫 해에는 꽃을 피우지 않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더웠던 7말 8초에 수국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수국은 둥글고 풍성한 꽃이 특징이지만 첫 해라 그런지 풍성하게 부풀어 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국은 수국이라 기품 있게 피어 우리의 볼품없는 정원을 밝혀주었다. 신기한 것은 수국을 보면 좀 덜 더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수국이 물과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무더운 날은 꽃이 숨통을 트여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여름 내내 그랬듯이 오늘 아침에도 산책을 끝내고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그 물을 수국에 뿌려주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수국이 공손하게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듯했다. 아침 바람에 흔들린 탓인지, 수국 꽃 머리가 물을 빨아들이느라 기를 써서 그런 건지, 꽃이 무거워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 건지 모르겠지만, 꽃 머리를 흔들거리는 그 모습이 나에게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쉽게 수돗가를 떠나지 못하고 괜히 마당을 서성였다. 괜히 마당에 풀을 뽑고 손에 흙을 묻혔기에 다시 손발을 씻으며 그 물을 수국에 뿌려주었다. 나는 수국에 물을 주고 수국이 나에게 꽃을 흔들어줄 때마다 나는 성경에 나온 우물가의 여인이 된 기분이었다. 제일 뜨거웠던 때 나는 수국에게 물을 주었고, 수국은 나에게 꽃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서로의 갈증을 잠시나마 해소해주었다. 수국 하나에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집콕 생활이 길어진 덕분일까. 반복되는 일상의 어느 순간에 볼록렌즈를 댄 것처럼 오늘따라 수국과 나의 관계가 크고 또렷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