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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ul 19. 2021

토마토 설탕 절임

도마도와 토마토의 차이

토마토 하면 생각나는 할머니가 있다.


우선 K-할머니


지금처럼 더운 한 여름에 밖에서 실컷 놀다 들어오면 할머니가 도마도(할머니는 이렇게 발음했다)를 스댕 대접에 수북하게 담아 포크랑 함께 주셨다. 할머니의 도마도는 토마토를 슬라이스해서  깔고 켜켜이 설탕을 뿌려 재운 것을 말했다. 설탕에 절여진 , 때로는 아직 녹지 않은 설탕 알갱이가 서걱서걱 씹히기도 하는 새콤달콤한 토마토도 맛있었지만, 토마토를 다 먹고 남은 마지막 남은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달달해서 내겐 최고의 생과일 주스였다.


또 한 명의 할머니, 미쿡 할머니


미국에서 노부부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었다. 할머니는 내가 가난한 나라(할머니가 아는 한국은 ‘MASH’라는 미국 드라마의 배경인 한국전쟁 직후)에서 왔다고 한사코 집세를 받지 않으셨다. 이유는 좀 거시기하지만 돈을 안 받으시겠다고 하니 고맙긴 하지만 그게 마냥 편하지는 않아서 늘 할 일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외출하셔서 집에 혼자 있게 되었고, 이때다 싶어서, 집안 청소도 하고, 정원에 잔디를 깎고, 텃밭에 풀을 뽑고, 텃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토마토를 따는 등 눈에 보이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먼 이국 땅이라서 그랬는지 토마토를 보니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도마도가 생각나서 토마토 한 바구니를 죄다 썰어 도마도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집에 돌아온 미국 할머니에게 도마도를 보여드렸는데 기함을 하셨다. 이 맛있는 토메이도에 왜 설탕을 뿌렸냐면서! 토마토에 설탕을 뿌리면 비타민이 파괴된다면서!! 영어로 솰라솰라 뭐라 하셨다. 우리는 토마토를 이렇게 먹는다고(사실 달리 먹는 방법을 몰랐음), 한번 드셔 보라고, 맛이 괜찮을 거라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거절하셨다. 설탕 뿌린 토메이도는 상상도 하기 싫은 눈치였다. 미국에 간지 얼마 안 되어 미국과 우리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할머니의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


토마토를 생으로 과일처럼 먹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익혀 먹었다. 토마토로 파스타 소스를 만들고, 겨울에 먹으려고 캐닝(토마토를 장기 보관하는 방법)을 하고 다른 채소들과 함께 stir fry 해서 먹었다. 살사 소스처럼 생으로 쓰기도 하는데 적어도 토마토에 설탕을 뿌리진 않는다. 토마토에 설탕을 뿌리면 영양이 파괴되고, 불에 익혀 먹어야 영양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서양식 토마토 먹기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요리해서 먹는 게 훨씬 풍미가 좋은 걸 알게 되어 한국에 돌아와서도 토마토를 요리해서 먹었다. 올리브 오일에 볶아먹기도 하고, 파스타 소스도 만들고, 미국에서 배워온 캐닝을 하기도 하고, 중국식으로 시홍쯔지단(토마토 계란 볶음)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할머니의 도마도 설탕절임을 잊고 지냈다.


원격수업으로 집에 있게  딸이 간식을 달라고 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간식거리가 마땅하지 않다. 냉장고 맨 아래 방치된 토마토가 보인다. 문득 할머니의 도마도가 떠올라서, 정말 백만  만에 도마도를 만들었다.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 딸이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는데  번만 먹어보라고 사정을 했다. 한번 먹어보고는 너무 맛있다며 토마토  개치 설탕 절임을 통째 내놓고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이후로 가끔 먹는다. 먹을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비타민은 조금 파괴되었을지 몰라도 가끔은 영양보다 맛으로도 먹고, 추억으로도 먹는  음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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