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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7. 2020

비움

문 없는 집의 탄생

우리 예산을 한참 넘어선 견적서에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예산에 맞춰 대폭 줄이고 없애야 했다. 뭘 줄이고, 뭘 없앨까? 그런 얘기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빨리 줄여야 하는데, 한가롭게도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었다. 수년 전에 우리 모두 해보지 않았나? 원 페이지 프로젝트. 줄이려면 핵심과 본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부터 줄이고 없애기로 했다.


없애자


견적에서 가장 큰 금액을 차지하는 것이 창호였다. 창과 문이 총예산의 1/6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줄이여야 했다. 창호를 알루미늄에서 PVC로 다운그레이드하고, 문과 창을 줄여가기로 했다. 아쉬운 대로 커튼을 사용하고, 정 필요하면 나중에 문을 달면 된다. 어차피 나는 문을 싫어한다. 문이 있어도 잘 닫지 않는다. 막힌 공간을 싫어하는 탓이다. 그 결과 일단 모든 방의 미닫이문을 다 없앴다. 드레스 룸의 미닫이 문도 다 날려버리고, 딸 방의 문 하나만 달랑 남기고, 여닫이로 바꿨다. 방 하나에 두 개씩 있던 창도 하나로 줄였다. 통풍을 위해 꼭 필요한 창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창은 하나씩 줄이고, 채광을 위해서 고정창을 3개 선택했다.


네가 이효리인 줄 아냐?


돈 때문에 문을 다 떼 버렸다고 하니, 친구가 말했다. 작년에 효리 민박에 나왔던 제주도 집에 방문은커녕 화장실에도 문이 없었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가 이효리일 수는 없지만, 과감함 만큼은 이효리였다. 이효리는 개방성을 위해서 문을 달지 않았겠지만, 나는 돈 때문에 개방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처음 시작할 때 노말(normal)이니 기본적인 게 가장 좋다더니 불과 몇 개월 만에 미쳐가고 있었다. 내 안의 숨죽이고 있던 미친놈 유전자가 활성화된 듯했다. 며칠 전 현장에 갔다가 만난 토목 사장님의 한마디 말에서 벽 하나도 가뿐하게 없앴으니까. 결산하면 벽이 하나 사라졌고, 화장실 문과 딸의 방문 하나만 남기고 모든 문이 사라졌고, 창의 개수는 줄거나 고정창이 되었다.


마구 수정한 흔적이 남아있는 1층 평면도
화장실 위치가 바뀌고 있는 2층 도면


그다음 큰 비용인 지붕과 외장재도 바꿨다. 지붕은 이중 그림자 슁글로, 외장은 국산 페인트로 바꿨다. 창호만큼 큰 비중은 아니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도 줄여나갔다. 인테리어적 요소가 있었던 복도 널마루와 가족실의 우드데크도 없앴다. 마당 데크도 살면서 직접 설치하기로 했다. 거의 쓰지 않는 욕조도 없앴다. 집을 한번 지었다가 죄다 부수고 다시 짓는 느낌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우리 집을 설계한 정 소장님이 동조해주었기에 가능하다. 용기와 위로를 주려고 하신 말이겠지만, 이처럼 생산적인 회의는 오랜만이라고 하셨다. 아주 개방적이고 유연하고 재미있는 집이 될 것 같다고 용기를 주셨다. 아무나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니까 가능할 것 같다고 하셨다. 사람이 궁하면 잔머리를 굴리게 되고, 잔머리를 쓰면 창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적절한 결핍이 오히려 풍요를 부르기도 한다. 내가 오래전부터 주창하던 결핍의 미학이다. 이번에도 우리는 그 길로 간다.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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