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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쩌다 집짓기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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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7. 2020

돈

넘사벽 건축비 견적서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이제 돈이 말을 할 차례다. 허허,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웃을 타이밍이 아닌데,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시공 견적서라는 놈은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예 앞자리가 달랐다. 나도 여러 군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평당 단가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시중에 나도는 평당 단가와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평당 단가는 함정이 있을 수 있고, 어떤 항목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하도 우리 견적서는 넘사벽이었다. 협상과 조정이 불가피했다.

건축설계비(인허가비)
토목설계비
토목공사비
건축공사비***
인테리어 공사비(싱크대, 붙박이장, 주방 인덕션과 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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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조
한전 불입금 및 각종 인입 공사비(도시가스, 수도, 전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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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집 아빠이자 현장소장을 맡게 될 B는 시공 철학이 분명했다. 평생 한번 짓는 집, 이왕 짓는 집, 좋은 자재로 잘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걸 누가 모르나. 돈만 많다면 나도 매우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돈은 없다. 앞으로도 썩 있을 것 같지가 않다. B가 우리의 사정과 나의 계획을 잘 알기에 우리 예산에 맞는 적정 견적을 제시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적정 견적에 대한 생각이 너무 달랐고 품질에 대한 기준도 매우 높았다. 내 마음도 오락가락했다. 평생 한 번 지을까 말까 한 집, 좀 무리를 하더라도 잘 지어야 후회하지 않을 것도 같았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나의 형편에 맞게 적정한 수준으로 지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두 가지 마음이 팽팽했다.

그때 마침 EBS에서 <건축 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는데, 우리 설계를 해주신 정 소장님 인터뷰가 나왔다. 나와 철학이 비슷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인상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내 귀에 딱 꽂힌 말이 있었다. '무리하지 말고 가진 돈만큼 짓자.' 이 말은 나에게 신의 계시만큼이나 강렬한 기준이 되었다.

우리는 설계 계약을 하기 전에 안성 소장님 댁에 방문했었다. 건축가 집 치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집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건축가들이 자기 집을 지을 때 크고 화려하게 지을 것 같지만, 정작 건축가가 자기 집을 지을 때는 매우 단순하게 짓는ㅇ다고 한다. 디자인이 예쁜 집보다는 생활하는 집을 짓기 때문이다. 집짓기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때려넣게 되지만, 결국 쓰이지 않는 공간이 너무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집을 지어본 건축가들이 그런 실용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무리해서 집을 지어야 할까. 우리는 우리 건축가의 기준을 따르기로 했다. 욕심부리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예산에 맞춰 우리에게 딱 필요한 집 말이다.

새로운 기준으로 중무장을 하고 다시 견적서 앞에 앉았다. 줄이고 또 없앴다. 하지만 불쑥 욕심이 올라왔고, 수시로 마음이 흔들렸다. 또 하나의 나의 무기는 아버지다. 여러 면에서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아버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단호했다. 얼마면 충분할 것 같냐고 했다. 집을 짓기에 충분한 예산 같은 건 없다고 했다. 좋은 건 한 없이 많고, 사람 욕심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면 다 될 것 같지만 돈으로 다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욕심을 줄이는 게 답이라고 하셨다. 그래, 욕심을 줄이자. 부족한 것이 있으면, 살면서 더하고 고쳐가며 살면 된다. 그게 좋은 집이고 그게 우리 집이다(라고 세뇌하고 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