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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20. 2020

내가 저지른 사랑

어느 개인주의자의 집짓기

앞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지만, 난 집 짓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다. 문자 그대로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럴 엄두가 안 났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가장 큰 문제였다.


지역에 따라, 크기에 따라,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수도권에서 집 짓기는 수억은 우습게 들어간다. 그동안 돈을 열심히 모았거나, 앞으로 많이 벌 예정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우리는 정 반대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큰돈을 번 적도 없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여행이 남는 거라며 놀러 다녔다. 그러니 집을 지으려면 당연히 대출이 필요한데, 나는 빚지는 게 너무 두려웠다. 빚도 자산이라는 말도 있건만, 나에겐 그런 배포가 없다. 나에게 빚은 좋아하는 것들의 포기를 의미하기도 했다. 대출 갚으려면 그 좋아하는 여행도 못 가고, 부지런히 벌고 갚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근면성실과는 거리가 먼 난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그 이유가 가장 컸다.


둘째,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내 변덕도 두려웠다.  


나는 정주성이 부족하다. 직업이던, 취미생활이던 한 우물 파는 성격도 아니다. 직장도 수시로 바꾸며 살았고, 금세 싫증이 나서 한 곳에 진득하게 눌러살지 못한다. 어디 가면 '여기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고, 또 그 횟수만큼이나 '이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했다. 실제로 구체적으로 여행 갔다가 눌러앉아야지 했던 나라가 2개나 잇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발길 가는 대로 부유(浮遊)하면서 살고 싶었다.


셋째, 10년이나 먼저 늙기 싫었다.

집을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있다. 동안은 못 만들지언정, 10년이나 먼저 늙기 싫었다. 직접 해보니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돈 문제로, 사람 문제로, 무엇보다 욕심과 오락가락하는 마음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미친다. 신경 쓰는 일은 일상이고, 마음 상하는 일도 다반사다. 얼마 전에 미용실 갔다가 나에게도 흰머리도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당에서 우리가 만든 눈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을 짓고 있다. 하기 싫었던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하고 있는 지금이 중요하다. 지난 12월에 착공하여 벌써 2층 슬라브가 쳐졌고, 2층 벽체 거푸집을 세우고 있다. 그렇게 싫다면서, 나는 왜 집을 짓게 되었을까? 어떤 마음이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들었을까?


땅 밟으며 바람 맞고 비 소리 들으며 살고 싶었다.

나는 아파트, 특히 고층 아파트에 대한 어마 무시한 거부감, 공포심이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몸에서 오는 거부반응이다. 지금도 고층 아파트를 보면 초등학교 때 서울 구경 왔을 때가 생각난다. 63 빌딩 현관에 내려 얼마나 높은가 위로 올려다봤다가 토하고 말았다. 멀미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나는 고층빌딩에 대한 현기증, 거부감, 공포심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 선입견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아파트에만 가면 답답하다. 밀봉된 공간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특히 요즘 단열 잘 되고, 잘 지어진 아파트 들일수록 더 그렇다. 날 닮아 그런지, 시원하게 키워서 그런지 아파트에만 가면 덥고 가렵다고 10분을 못 앉아 있는다. 그래서 애초에 우리 가족의 주거지는 아파트일 수 없었다. 감각적으로 땅 가까이에서 바람 불면 바람 맞고 비 오면 빗소리 들어가며 계절과 날씨에 민감하게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느꼈다. 다만 엄두를 못 냈을 뿐, 그 운명의 종착지는 집짓기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겟다.


마당에서 딸아이와 반려견 여름이가 함께 뛰어놀고 있다


반려견 여름이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이제 8년 된 우리 집 반려견 여름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요즘은 산책을 자주 시키지만 예전에 바쁠 때는 못 시킬 때가 훨씬 많았다. 처음에 왔을 땐 순했던 여름이가 점점 사나워지고 예민해지더니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어른과 아이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다. 다 묶여 있던 탓이었다. 저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이후 뒤늦게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산책도 자주 시켜주고 있지만, 지금 우리 집에서는 안정적인 여름이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어서 늘 마음에 걸렸다. 사람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반려동물은 그럴 수가 없다. 사람과 살아가는 이상, 여전히 울타리 안에 묶여 있는 신세다. 하지만 우리와 자주 만나고 자주 소통할 수 있는 환경, 조금은 더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뒷마당에 자리한 여름이


개인주의자, 이웃과 더불어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최근까지도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를 고민했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공동체보다 개인이 중요하고, 함께 하는 시간보다 개인적인 시간이 중요한 개인주의자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웃과 단절된 채 혼자 살아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혼자 살아갈 수도 없고, 혼자 사는 것은 재미가 없다. 또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서 살기로 한 이상, 서로 신세 지고 서로 도와가며 함께 살아갈 이웃은 꼭 필요하다. 이런 삶이 안전하기도 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믿고 딸아이에게도 그런 삶의 조건을 형성해주고 싶었다. (막상 살아보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고민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고 놀린다. 속사정은 그렇지는 않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권력자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거나 더 힘이 세서가 아니라 나란 사람이 워낙 내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 그래서 많은 결정을 내가 해왔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이 목소리를 높인다. 내 옆에서 조용하게 살던 남편이 집을 짓고 싶어 한다. 처음엔 개무시했다. 하지만 친정 엄마의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에 힘입어 한 번쯤은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보자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우리에게 권태기가 찾아온 것 같다. 같이 산지 10년이 넘어가니 같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헤어질 이유도 못 찾겠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혼은 절대 안 된다던 딸아이가 이제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했는데, 막상 헤어질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그러면 같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게 집 짓 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 결심했어.
(또는 에라, 모르겠다)


남편은 오랜 꿈이었지만, 나는 충동적이었다. 홧김에 결정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내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오랜 욕망과 희망이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두렵기도 하고, 설렘도 있다. 어쩌면 좋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결정했고,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집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을 지으면서 든 생각은 집 짓기는 내 능력과 의지를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우주적 도움을 기다리면서 이런 기도를 하고 있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me!


Luke : Ok... I'll try.
Yoda : "Do or do not. There is no try."(하거나, 안 하느냐다. '해본다'는 것은 없어.)

- 제국의 역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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