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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20. 2020

우리 집에 우물이 있어요

우물 있는 집의 탄생

우리 땅에 우물이 나왔다. 분명 흥미로운 일이었다. 우물은 지금 시대에는 만들 수도 없는 희귀템인 것만은 분명했다. 구옥을 철거할 때 일단 우물을 살려두기로 했다. 땅을 분할할 때 누구네 땅에 우물이 들어가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설계도상에는 우리집과 2호 집 사이에 걸쳐 있었다.


파란 덮개에 싸여있는 것이 우물


우물이 어느 집 땅에 있건 나는 우물 없애자고 했다. 집 앞에 우물이 있으면 습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 어린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어서 무조건 없애자고 했다. 특히 2호 집에는 다섯 살 여자아이와 갓 태어난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2호 집 아빠이자 시공 소장인 B는 우물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건축가로서 우물의 매력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 실용적으로 간단한 물 세차도 하고, 아이들 수영장 물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2호 집 땅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까.


빨간 말뚝이 우리땅의 경계이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가 있는 우물


그런데 이런! 측량하면서 우물은 우리 땅으로 쏙 들어왔다. 난감했다. 나는 여전히 우물을 없애자고 했지만 2호 집 아빠는 여전히 우물을 애정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상의했다. 정히 쓰고 싶다면 위는 콘크리트 덮개를 만들어 덮고 아래로 관을 따로 빼서 쓰라고 했다.


우물 연결해서 수도로 빼놓았어요. 물 받아봤는데 깨끗해 보여요.


공사가 시작되고, 돈 끌어오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런 카톡이 왔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우리 집은 우물 있는 집이 되고 말았다. 사실 우리 동네 옛 이름이 꽃우물, 찬우물 그랬던 거 보면 우물을 기념으로 놔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없애버리고자 했던 우물이 이렇게 살아나니 기분이 묘하다.


우물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옛 설화에 의하면 우물은 용궁으로 드나드는 통로였다는데, 우물이 나의 새로운 통로가 되어줄까? 예전에 읽었던 포르투칼 신데렐라도 떠올랐다. 물고기를 우물에 풀어준 신데렐라를 우물 속 황금궁전으로 데려가는 이야기다. 혹시 우물 속에서 물고기처럼 초자연적 중개자라도 나타나 내 꿈을 이뤄주기라도 할 것인가?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야겠다. 혹시 모르니 서둘러 꿈도 정비해놓고!


우물과 연결된 수도


밤이 되자 물고기가 막내딸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을 우물에 놓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고기가 원하는 대로 우물에 놓아주었다. 다음 날 막내딸이 물고기를 보려고 우물로 다가가자 물고기가 "아가씨, 우물로 들어와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무서워져서 달아나 버렸다.

이튿날 연회가 있어서 두 언니가 외출하고 없을 때 막내딸이 우물로 다가가자 또다시 물고기가 "아가씨, 우물로 들어와요."라고 몇 번이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고기는 막내딸의 손을 잡고 황금으로 만든 궁전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녀를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해주고, 한 쌍의 구두를 신기고, 아름다운 마차에 태워 연회장으로 가게 해주었다.

포르투갈 민화의 신데렐라 中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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