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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Feb 01. 2020

여름이와 함께 춤을

반려견을 위한 뒷마당

집 설계할 때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식구는 우리 여름이다. 우리에게 여름이는 처음부터 우선순위였고, 설계하신 정 소장님도 처음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여름이 자리를 그림에 넣어주셨다. 마지막 착공 도면에도 여름이 자리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처음 스케치 단계부터 여름이 집이 그려져 있다.
평면도상 여름이 공간, 처음 스케치대로 여름이의 공간이 남아 있다.


여름이는 우리와 7년째 살고 있는 반려견이다. 한 살에 우리 집에 와서 지금 8살 정도 됐다. 여름이 전에 나는 유기견 봉순이를 입양해 12년째 같이 살다가 떠나보냈다. 그때 하도 울어서 엄마가 그렇게 힘들어할 거면 다시는 짐승(그때 엄마의 표현) 키우지 말라고 했다. 그땐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봉순이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아는 사람으로부터 개 한 마리를 입양해왔다. 마당 있는 집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자 마당이 있는 집을 수소문하여 우리와 연결된 것이다. 나는 펄쩍 뛰었다. 그땐 봉순이 애도기간이었기에 새로운 반려견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남편은 여름이를 잠시 어딘가에 대피시켰다가 내 슬픔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슬그머니 다시 데려왔다.


봉순이 살아 생전 모습
주차장쪽에 자리 잡은 여름이


하얀 백구였다. 나는 얼빠인 건가. 말로는 싫다면서도 말끔하게 잘 생긴 백구에게 눈길이 갔다. 처음엔 오며 가며 흘깃거리다가 금세 정이 들었다. 벚꽃이 필 무렵 우리 집에 온 여름이는 벚꽃이 질 무렵 우리 집에 완벽 적응했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바빠지면서 자주 산책을 시키지 못했고, 밥만 겨우 챙겨줄 뿐 질적으로 잘 케어하지 못했다. 출근할 때도 허겁지겁 나가기 바빴고 이름 한 번 안 불러준 날도 많아졌다. 여름이가 아쉬워하는 소리(아울~~)에 뒤통수가 따가웠다. 우리가 여름이에게 소홀해지는 동안 여름이는 점점 예민해지고 까칠해졌다. 극기야는 목줄을 풀고 탈출한 적도 있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속상하고 미안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우리 잘못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목줄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매일 여름이 산책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즈음 나도 병이 나서 운동이 필요했다. 집 짓는다고, 새로운 공부 한답시고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쓴 탓이다. 나는 운동 삼아 여름이와 매일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가끔 피곤하고 귀찮아서 안 나가면 아울~~ 하고 서러운 늑대울음소리를 내는 통에 다시 나가서 짧게라도 산책시켰다.


지금은 비가 많이 오는 날만 빼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킨다. 주말에는 여름이와 온 식구가 동네 습지공원으로 가서 한두 시간씩 놀다 온다. 하루가 다르게 여름이 표정이 달라지는 게 보였고, 코가 촉촉하고, 털에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다. 요즘은 낯선 사람이나 택배 올 때 빼고는 잘 짖지 않는다. 인간 중심의 생각인지 몰라도 여름이가 한결 편안해진 것 같다.


여름이와 온 가족이 함께 산책하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뭔가에 삐쳐서 뾰로통하고 있다가도 남편이 여름이 산책 가자, 하면 못 이긴 척 따라나선다. 걷다, 뛰다, 백로가 날아가는 하늘을 바라보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여름이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매우 건강한 시간이 되고 있다.  


갑자기 딸아이의 말이 생각났다. 남편은 집 짓자, 난 싫다며 우리 부부가 한참 싸울 때 딸아이는 싸움을 피해 여름이에게 가곤 했단다. 그때 딸아이가 우리 식구 중에서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건 여름이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 딸이 외로울 때 동무가 되어 주고,  내가 아플 때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운동하게 만들고, 절대 뛰지 않는 남편을 뛰게 만드는 여름이가 참 고맙다.


여름이에게 보답하는 심정으로 새 집에 가면 여름이의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 매일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새로운 동네에 서서히 정을 붙여갈 것이다. 여름이도 새로운 동네, 새 집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여름이가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여름아,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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