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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Feb 24. 2020

물성

콘크리트에 대한 애정

콘크리트 집을 짓기로 했지만, 콘크리트에 대한 특별한 선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콘크리트로 바닥을 치고, 그 위에 콘크리트로 벽이 서면서 콘크리트에 대한 애정이 몽글몽글 생겨나기 시작했다. 콘크리트라면 차가운 회색 도시의 대명사 아닌가. 이토록 차갑고 딱딱하고,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오명을 가진 콘크리트가 왜 갑자기 좋아지는 걸까? 우리 집이라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건축물 중에 콘크리트 건물이 꽤 있긴 하다. 오로지 콘크리트로만 지어진 로마 '판테온',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어머니를 위한 작은 집',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모두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리고 혹시 내 고향 제천이 시멘트산업의 중심지여서 아는 사람 중에 시멘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도 콘크리트에 친숙함을 느끼는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지붕이 없어 바닥에 물이 그대로 고여있다


어제 현장에 가서 내가 콘크리트를 애정 하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거푸집을 떼어내고 나니 드러난 콘크리트 벽면은 매우 거칠다. 새집인데 헌 집 같다. 나는 그 매끈하지 않고 거친 면모가 마음에 든다. 여기저기 곰보와 상처를 드러내면서 스스로 완벽하지 않음을 내보이는 당당함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의외의 숨겨진 매력도 발견했는데, 얼핏 보면 차가운 회색 빛으로 삭막해 보이지만, 빛에 따라 다른 색감을 보여준다. 츤데레 같은 매력이랄까.  


떡가베라고 쓰여있다. 떡가베는 깨끗하고 매끄러운 표면을 위해서 콘크리트 벽면에 석고보드를 붙이는 작업이다


어느 한 부분 정도는 노출로 남기고 싶었다. 한때 유행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니 빈티지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포장(마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콘크리트라는 물성, 건축의 과정, 고민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콘셉트를 설정하고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 곧 우리 집의 개성이자 정체성이 된다면 멋질 것 같았다.



후보로는 계단실 벽면과 거실 벽면이다. 계단실 벽면은 디자인적으로 포인트가 될 만한 자리여서 그렇고, 1층 거실 벽면은 어차피 전면을 책장으로 짜넣은 거라서 실용적인 차원에서 마감을 안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이 지어지는 동안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결정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편은 동의했고, 건축가들도 한 면 정도는 시도해볼 만하다고 동의했고, 현장소장님도 한번 연구해보자고 했다.



노출 콘크리트를 하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걱정을 한다. 카페도 아니고 일반 가정집에 노출 콘크리트는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새집인데 헌 집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둡고 칙칙하고 차갑고 습할 수 있다, 가루가 날릴 수도 있다 등등. 웬만하면 훈수를 두지 않는 우리 부모님도 이 사실을 알면 펄쩍 뛰실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난 누구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반대의 말쯤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상호 소통할 수 있는 현장소장님을 만나면 이런 점이 좋다. 흔쾌하게 한번 해보자면서도 솔직히 잘 살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했다. 계속 연구해보고 너무 아니다 싶으면 마지막에 석고보드로 마감을 하자고 했다. 솔직하게 말해주니 오히려 믿음직스러웠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시도의 과정만으로 충분히 흥미롭다. 슬슬 집 짓는 것이 재미있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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