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문명인 만들기

초딩 생활 독립운동 3__아침밥 스스로 차려먹기

by 무엇이든 씁니다

유연근무로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딸의 아침은 남편이 책임지게 되었다. 다행히 딸아이는 아침에 스스로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아침에 아이를 깨우면서 시작되는 전쟁은 없었다. 스스로 옷도 찾아 입고 알아서 준비물도 챙기고, 남은 건 아침밥 챙겨주는 일이었다.


따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침밥 예찬론자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아침밥을 드신다. 그것도 아침부터 고봉밥을. 아침에 아메리카노 투샷이 다인 남편과 나에게 아침 안 먹는다고 잔소리를 한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건데 왜 안 먹느냐, 자꾸 몸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변비에 걸리는 건 아침밥을 든든하게 안 먹어서 그렇다며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할 정도다. 그래, 알았고! 우린 안 먹더라도 따님 아침밥은 챙겨주는 것이 부모된 도리겠지. 난 따님이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것을 전날 저녁에 챙겨놓았고, 다음날 아침에 남편이 아침밥을 차려주는 게 지난 3년간 딸 아침밥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남편도 딸보다 먼저 출근하게 되면서 딸아이는 11년만에 혼자만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따님은 혼자 차려먹을 수 있게 가르쳐 달라고 했다.


우선 난이도 1부터. 밥을 좋아하지만 빵도 좋아해서 그냥 먹기만 하면 되는 빵과 우유를 매일 사다 놓았다. 그러면 혼자서 빵을 토스터에 굽고, 우유나 주스를 꺼내 함께 먹으면 간단한 아침이 된다. 하지만 천하의 빵순이도 매일 빵만 먹을 순 없는 법, 난이도 2로 완전식품이자 딸의 기호식품인 계란요리로 정했다. 따님은 계란 후라이를 제일 좋아하지만 문제는 그냥 계란 후라이가 아니라 계란 노른자가 터지지 않고 봉긋한 반숙의 써니 사이드 업 계란 후라이만 드신다는 점이다. 그런 계란 후라이는 난이도가 있어서 스크램블 에그부터 시작했다.



우선 계란 깨기. 이거 의외로 어렵다. 잘못하면 세로로 쪼개지기도 하고, 터지면서 부서지기도 하고, 껍질 속 막이 갈라지지 않고 남아있기도 하고, 껍질이 섞여 들어가기도 한다. 계란 깨트리는 걸 보니 너무 자신이 다. 팍, 깨질까봐 겁이 나서 살살 부딪히다보니 늘 애매하게 깨졌다. 망쳐봤자, 계란이다. 과감하게 팍! 깨 보라고 했다. 한두 번 픽, 픽하며 삑사리를 내더니 계란 대여섯 개 정도 깨니 이제 능숙하게 계란을 깰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뭐라고 감격스럽다ㅎㅎ


그다음 가스불 켜기. 아이들이 불을 다루는 일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칼질은 일찌감치 가르쳤지만, 불 사용법은 최대한 유예시켰었다. 칼질은 위험해도 손을 베는 게 다이지만, 불은 훨씬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열두 살이면 불 사용법을 배울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가스불은 위험하니 안전하게 가스레인지를 쿡탑으로 바꾸라고 했지만 나는 불이 보이는 게 훨씬 덜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불꽃이 눈으로 보이면 몇 배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기질 자체가 워낙 신중한 따님을 믿고 가스불 켜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인간에게 금지된 불을 훔쳐다준 프로메테우스라도 되는 듯 나름대로는 비장한 마음으로...


시범을 보이고 해보라고 했다. 작은 손이 벌벌 떠는 게 보였다. 불에 대한 공포가 있으니 힘주어 돌리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가스만 새어나온다고, 힘을 주고 꾹 눌러서 돌려보라고 했다. 한두 번 삑사리가 나더니 몇번 만에 능숙하게 불을 켰고, 불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뭐라고 또 감격스럽다. 불을 사용할 줄 아는 문명인이 되는 순간이라니...ㅎ



이제 혼자서 스크램블 에그를 아침으로 해 먹고, 간식으로도 해 먹는다. 자기 식량이다보니 계란이 떨어지면 계란을 사오라고 주문을 넣는 자가발주시스템도 가동되고 있다. 역시 다 자기 먹고 살 궁리는 하게 되어 있나보다. 아빠는 열심히 계란, 우유, 빵을 사다 나르고(그야말로 bread earner), 딸은 열심히 해먹는다. 초반의 우려와 달리 초딩 따님은 의연하고 꿋꿋하게 혼밥을 하고 있다. 이제 슬슬 난이도를 높이려는 욕심을 보인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 하나둘씩 자립하는 걸 보니 이제 곧 우리를 떠나 손수 밥을 지어 먹는 자취인이 될 날도 머지않았음을 직감한다.


아빠(아뿌)에게 식량 발주하는 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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