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 되자마자 회사를 빠져나온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버스에 몸을 맡긴다. 하루가 끝나고 해가 저무는 즈음이 되면 피곤함이 온몸을 덮쳐 온다. 하루 종일 업무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던 날도, 업무가 여유로워서 근무시간 동안 자리만 지켰던 날도 그렇다. 할 일이 많지 않아도, 사무실에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진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빨리 밖으로 뛰쳐나가서 달릴 생각뿐이다.
집에 가자마자 가방을 던져 놓고 화장을 지운다. 불편한 외출복을 벗어 버리고 활동하기 좋은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에어팟과 핸드폰을 힙색에 넣어 챙기고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 밖을 나가면 시원한 저녁 바람이 나를 간질간질하게 스쳐 지나간다. 더운 기색이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조금은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맞이하는 요즘은 달리기에 딱 좋은 날씨다. 무슨 노래를 들으면서 달릴지 핸드폰으로 재생목록을 주르륵 훑다 보면 어느새 집 근처 천을 따라서 나있는 트랙에 도착한다. 러닝 어플을 켜고 위치가 잘 잡히고 있는지 확인한 후 음악을 재생한다. 달리기 직전의 순간에는 매번, 언제 한 바퀴를 돌고 오나 막막한 기분이 든다. 오늘도 힘들겠지, 숨이 차겠지, 중간에 그만두고 싶겠지, 생각한다. 그래도 나왔으니 뛰어야 한다. 주변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파워 워킹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오늘도 의지를 다져본다. 러닝 어플에서 시작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힙색에 넣은 후 탁, 탁,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기는 온몸의 군살과 부기를 빼는 데 최고의 운동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어 다리가 퉁퉁 부었어도, 저녁에 달리기를 한 후 개운하고 씻고 나서 스트레칭으로 다리 근육을 풀어주면 다음 날 몸이 한결 가볍다. 한창 다이어트를 열심히 할 때에는 일주일에 4~5번씩 꾸준히 달리곤 했는데, 식이 조절과 함께 달리기를 병행했을 때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몸무게를 줄이는 데 효과가 좋았다. 다이어트를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흘렀고, 중간중간 10킬로 마라톤에 몇 번 도전하여 완주를 했으며, 이제는 나만의 안정적인 페이스도 생겼다. 지금은 코로나로 많은 마라톤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하프 마라톤 그리고 풀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다.
우리 집 근처의 하천을 따라 걸어가면 한강이 나온다. 나는 보통 집에서 한강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러닝을 하는데, 그렇게 한 바퀴를 돌면 4킬로가 조금 안 되는 거리로, 내 페이스로는 20분 정도가 걸린다.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기본 5킬로는 뛴다고 하는데, 아직 내 역량으로는 최대 4킬로가 딱 적당하다. 가끔은 컨디션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조금 더 멀리 반환점을 마음속으로 설정해 놓고 돌아오기도 한다.
달리기는 매번 힘들다. 이렇게 꾸준히 했으면 4킬로쯤은 가뿐히 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출발한 후 1킬로까지는 오늘의 몸 상태를 확인하면서 다리를 풀어주고, 2킬로까지는 속도를 조금 낸다. 사람 마음이참 신기한 것이, 2킬로 즈음에서 돌아오는 지점이 나오는데, 일단 저기까지만 열심히 뛰자, 속도를 내보자, 생각하고 열심히 뛰다 보면 반환점에 도착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힘이 쭉 빠져버린다. 머리 속으로만 반환점을 목표로 잡은 것인데, 그 생각이 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신기하다.
2킬로를 넘어서 3킬로까지의 구간이 가장 힘들다. 여기까지도 힘들었는데 뛰어 온 만큼을 더 가야 한다. 가끔 남편과 같이 달리기를 할 때, 이 지점에서 남편은 힘들어서 걷기를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숨이 차도 절대 걷지는 않는다. 페이스가 느리거나 기록이 엉망이 되더라도 걷지 않고 뛰어서 완주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금방이라도 멈추고 싶을 때는 속도를 조금 늦추거나 호흡을 고르면서 정신을 가다듬는다. 달리기가 힘들 때는 몸이 움츠러들고 경직되며, 어깨가 올라가고 하체보다는 상체에 힘을 더 많이 주게 되는데, 이럴 때 나는 더욱 자세를 가다듬는다. 등근육을 이용해서 어깨를 내리고 복부에도 힘을 주어 코어를 안정시킨다. 팔을 많이 휘두르는 것보다 복부와 하체에 힘이 가게 하려고 노력한다. 갈비뼈를 크게 팽창시키며 숨을 고른다. 그러면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고 다시 힘을 내어 뛸 수 있게 된다.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올 쯤에는 숨이 턱 끝까지 찬다. 가끔은 내 역량보다 더 속도를 내어 헛구역질이 날 때도 있다.
도착하자마자 귀에서 쿵쿵 울리는 음악을 끄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바로 기록을 확인한다. 나는 보통 1킬로를 5분 30초~40초의 속도로 뛰려고 한다. 5분 50초대가 나오거나, 가끔 6분대가 나올 때는 조금 아쉽다. 정기적으로 달리는 데도 페이스는 항상 그대로인 것이 의욕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깐 뿐이다. 그럴 때는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걷지 않고 완주를 한 것에 만족해한다. 숨을 고르고 조금 정신이 돌아오면 인증 사진을 찍고 사진에 기록을 표시한다. 기록이 나오는 사진을 찍기 위해 달린 것이므로 사진은 꼭 찍어야 한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오면 그렇게 뿌듯하고 개운할 수가 없다. 퇴근하고 녹초가 되었어도, 밖에 나가기 너무 귀찮아도, 달리는 그 순간 고통이 느껴져도, 내가 언제나 달리러 나가는 이유이다. 뛰고 난 후의 이 기분을 알기에.
태생이 생각이 많고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나는, 가끔씩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아니, 주기적으로 그렇다 하는 것이 맞겠다. 출퇴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그 사이에 또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시기가 온다. "이게 다 무슨 의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고 하루종일 누워만 있고 싶은 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때, 모든 것을 삐뚫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때, 누군가 "요즘 어때?"라는 물음에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버릴 때. 멀리 가지 않고 하루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를 생각해봐도 그렇다. 아무것도 없이 하루가 가버린 것 같을 때. 그럴 때.
그럴 때, 나는 달린다. 억지로라도 달리러 나간다. 달리는 것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바닥으로 침잠해버리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준다. 달리는 것이, 나를 갉아먹는 부정적인 생각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발을 내딛는 것에만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숨을 이어가기 위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우울감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고 이를 악문다. 걷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나 둘, 하나 둘, 속으로 외치며 앞으로 나가는 것만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금방이라도 멈춰버리고 싶은 순간을 버텨냈을 때 나를 만지는 가벼운 바람, 숨이 턱 끝까지 찼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숨이 탁 트이는 것 같던 순간, 걷지 않고 끝까지 달리고 난 후 바닥에 주저 앉아 힘든 숨을 고를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 나를 버티게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이만큼은 걷지 않고 달렸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문득문득 나를 사로잡는 감정들을 꾹 삼킨채 몇 번을 달리다 보면 다시 일어나볼까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달리는 것이 나를 일상으로 되돌려 보내준다.
찬 바람이 얼굴을 칼로 베는 듯한 겨울이 오기 전까지 또 다시 열심히 달려보려 한다.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휴대폰으로 재생 목록을 검색한다. 숨을 고르고 발을 내딛고 자세를 고쳐잡고, 달린다. 완주를 하고 나서는 또 생각한다. 오늘도 잘 견뎌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