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활을 하며 요가를 시작했다. 평소에 허리가 좋지 않았던 나는 30분만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파오곤 했는데, 공부를 하려면 하루 10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있어야 했으므로 운동을 등록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일주일에 3번, 1시간씩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정통 요가원을 찾아다니는 나이지만, 처음 등록했던 센터는 다양한 요가프로그램이 섞여있는 곳이었다. 아쉬탕가, 빈야사, 하타요가는 물론 힐링요가, 볼테라피, 인사이드플로우, 비트요가, 아딜리브리아, 아디다스요가와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특히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플라잉요가 수업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한 나는 이제 6년차 요가인이 되었다.
요가는 재밌었다. 한시간을 집중해서 해내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플라잉요가 수업을 들으면 해먹이 몸을 조일 때 아프긴 했지만, 하루종일 앉아있어 굳어 있던 내 몸에 피가 제대로 도는 것 같았다. 어려운 동작을 어느 순간 성공할 때에는 성취감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쉬탕가, 빈야사 수업을 들을 때는 전신에 근육이 붙는 것 같았다. 몸에 점점 열이 오르고 동작에 힘이 붙을 때 쯤에 어려운 자세를 시도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집중하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자아도취가 되기도 했다. 몸이 무거운 날에는 힐링요가를 들었고, 근력 운동을 하고 싶을 때는 필라테스 수업을, 정적인 요가가 지루할 때는 인사이드 플로우를 들었다.
몸이 점점 탄탄해지는 것 같았고,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체력이 더 좋아졌고, 쉽게 피곤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요가를 할 때 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요가수업에서는 다른 운동들과는 달리, 시작하기 전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는 시간이 있다. 가부좌를 틀고 양 손등을 무릎 위에 가볍게 올려 놓고 척추를 곧게 편 상태에서 눈을 감는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호흡을 고른다. 그 순간,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눈을 감는 순간, 짧으면 1분, 길게는 5분 정도 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바쁜 일상을 멈출 수 있었다. 내가 계획한 공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쁘고 정신없었던 하루가 일시정지되는 것 같았다. 아무생각없이 그저 주어진 것을 처리하고 치워내던 일상을 잠시 멈추고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내가 왜 여기 앉아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매트 위에 올라와 있는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잠깐이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 나를 바라볼 수 있었고 보듬어 줄 수 있었다. "오늘 힘들었지? 오늘도 하루 잘 보내느라 고생했어"하며 나를 다독였고,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지? 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땀 쫙 흘리고 스트레스 풀어버리자"며 나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으며,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생각해보자.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 항상 기억하자"며 정신을 다잡기도 했다.
짧은 명상이 끝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힘든 자세들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요가를 한다"고 하면 "아, 그 여자들이 하는 정적이고 별로 힘들지 않고 스트레칭 위주의 몸매 뽐낼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누가 요가는 쉽고 정적인 운동이라 했는가? 요가동작이 쉬워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의 근력과 유연성이 뛰어나다는 말일 것이다. 간단한 요가 동작 하나라도 정확하게 취하려면 유연성은 물론, 몸에 근육이 충분히 붙어 있어야 한다. 흔히 우리가 아는 팔굽혀펴기, 스쿼트, 플랭크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어야 하고, 같은 자세로 긴 호흡을 버텨낼 수 있는 지구력도 있어야 한다. 하체는 후들거리고 팔과 어깨는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주저 앉지 말고 버티라는 선생님의 말에 정신줄을 간신히 붙들고 있다 보면, 온갖 잡생각은 없어지고 그저 선생님의 카운트가 끝나기만을 바라게 된다. 현실에 대한 불안함, 자신에 대한 불신, 인생에 대한 막막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매트에 땀이 뚝뚝 떨어져도, 다리와 배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도, 그저 선생님이 "하나"를 외치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집중한다. 그런 시간들이 좋았다. 매트 위의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다른 도구 하나 없이 그저 맨 몸으로 나를 위해 사용하는 그 시간.
수험생활이 끝나고 취직하고 나서도 나는 요가를 계속 했다. 센터에서 듣는 수업시간으로는 모자라서 집에서도 동작을 연습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동작을 해내고 싶어서 근력운동을 병행했다. 평소에 부족했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스트레칭도 열심히 했다. 아치자세를 성공했고, 멋있어 보였던 머리서기도 끊임없는 도전 끝에 해냈다. 팔 근육과 복근이 잘 단련되어 있어야 할 수 있는 까마귀자세도 몇 번 땅바닥에 코를 박고 나서 성공해냈다. 요가가 너무 좋아 결국 나는 요가지도자 과정을 등록해 자격증까지 땄으며, 그 이후에도 나를 더 성장시켜줄 수 있는 수련을 하기 위해 정통 요가원을 찾아 다니며 나를 단련했다.
그러다 문득 요가가 지겨워지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동작은 늘지가 않고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내 유연성과 근력은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요가지도자 수업을 들을 때, 요가는 고난이도 동작을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되면 안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조금씩 늘어야 재미도 붙는 것 아니겠는가. 성공하고 싶은 동작을 수련할 때마다 시도해도 실패했다. 매트 위에 주저앉았고, 매트 위로 떨어졌다. 머리서기도 안 되던 내가 지금은 거뜬하게 내 몸을 거꾸로 들어올리고 있는데도, 나는 매일 똑같은 자세만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태생적으로 유연성이 좋아 내가 어렵게 성공한 자세들을 쉽게 해버리는 사람을 보면 조금 허탈했다. 재미가 없어졌다. 수련하러 가는 길이 즐겁지가 않고 스트레스가 되었다.
요가로 운동에 재미를 붙인 나는 다른 운동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살 빼는 데는 달리기가 좋다 하여 열심히 달렸다. 하나에 꽂히면 열심히 파는 것이 취미인 나는, 마라톤도 열심히 나갔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집 근처 트랙이나 공원을 찾아 달렸다. 폴댄스도 재미있어 보였다. 전신근육을 만드는 데 좋다 하여 1회 체험을 해 보았다. 폴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특수한 액체를 바른 후 그 위에서 포즈를 잡거나 춤을 추는 운동이었다. 그것은 금방 그만두었다. 필라테스를 많이 하는 듯 해 등록해보았다. 기구를 이용해서 몸의 정렬을 바로 잡고 속근육을 기르는 운동이었다. 좋은 운동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그만두었다. 계속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결국은 다시 요가로 돌아온다. 지금도 다양한 운동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나에겐 어쨌든 답은 요가였다. 폴댄스, 필라테스 등 내가 발을 찔끔 들여본 운동들은 신체적 변화에 주로 집중한다는 것이 요가와 달랐다. 요가를 할 때 내가 느꼈던 해방감 혹은 내면의 충만함이 다른 운동을 할 때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요가의 목표는 누가 더 기이한 동작들을 잘 해내느냐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요가는 몸의 고통을 통해서 정신을 해방시킨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 아주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요가수련 중 했던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명상들, 매트 위에 몸이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도 나 자신을,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믿고 발을 던져 보던 순간들, 눈을 감고 한 동작 한 동작을 이어가며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 순간들은 요가를 함으로써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잘하는 축에 속하는지 확인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수업을 잘 따라가면 뿌듯했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는 것 같으면 위축되고 오기가 생겼다. 몸이 굳어 수련이 잘 안 될 때는 속상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수련에 임하고 있다. 매트 위에 올라서는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변화가 없어도 건강하게 수련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기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요가는 그저 스트레스를 푸는 운동이 아니기에. 나를 사랑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사랑을 주변에 흘려 보낼 수 있도록 연습하는 과정이기에. 복싱도, 암벽등반도, 피겨도, 다른 운동도 다 해보고 싶지만 어쨌든, 결국엔 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