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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Apr 18. 2022

억울하지 않은 삶


  요즘엔 억울하지가 않다.

  '이렇게 몇십 년을 살다가 죽어야 한다니, 억울해'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난 내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어서, 오늘 잠이 들어 내일 눈을 뜨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아쉽거나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살 거면 사는 의미가 뭘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간은 꽤 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가 부적응자 같고, 찌질해 보이고, 한심해 보이고, 약해 보였으므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찝찝함을 무시하고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미친 듯이 취미를 찾고 여러 가지를 배워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많이 다녀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 순간뿐. 근본적인 삶의 형태가 변화하지 않는 한, 그 많은 시도들은 어떻게든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보려는 몸부림일 뿐이었다.


  한국은 다양한 인생의 형태를 경험하기 쉬운 나라는 아니다. 이 점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삶의 형태가 맞지 않아, 하고 그 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과 손가락의 타깃이 된다. 멘탈이 약한 사람,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런 분위기에서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니, 애초에 다른 형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왜 나는 남들처럼 살아내지 못하는 걸까'하고 자책하기 바쁘다.


  그래서 한 때는 이민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 나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강한 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철저히 삭제되는 적자생존의 사회, 돈이 되는 것이 최고인 사회, 변질된 유교 사상만이 남은 사회, 죽을 때까지 경쟁해야 하는 사회,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는 사회, 남들과의 비교가 일상인 사회, 갑질이 판치는 사회, 군대 문화에서 비롯된 수직적 문화가 뿌리내린 사회, 여성이 매일 죽어나가는 사회. 나라를 잘못 골라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이런 걸 한번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 귀신같이 사람들은 그 시도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이 나라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다 같이 힘들고 고통받아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 같았다. 다 잘 살아보자고 하는 건데도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왜 너네만 편하게 살려고 하느냐',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하고 끌어내렸다. 근무시간을 좀 줄여봅시다,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최저임금을 좀 올려봅시다, 해도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모든 논리는 경제와 효율성으로 귀결됐다. 경제 성장에 방해되는 것은 나쁜 것, 비효율적인 것은 나쁜 것. 한 사람의 인생도 돈을 많이 버는 인생이 좋은 인생이고, 방황 한 번 하지 않고 탄탄대로로 달려가서 목표를 이루는 효율적인 인생이 좋은 인생이었다. 한 때는,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이민을 갈 수는 없었다. 그만큼의 용기가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아무리 적응을 잘한다고 해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내 삶의 형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아니, 결정했다기보다는 살기 위해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까라면 까야하는 조직 문화, 개인 시간이라고는 없는 일상, 칼퇴를 한다고 해도 너무나도 긴 근무시간, 비효율적인 업무 시스템, 보람도 성취감도 없는 의미 없는 하루들. 이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이렇게 살 바에야 그냥 모래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그 트랙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죽어도 망해보고 죽어야 덜 억울할 것 같아서. 웃기지 않은가. 그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로 결정하는 것일 뿐인데, 이 트랙을 벗어나면 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러나 난 망하지 않았다. 망한 인생, 낙오한 인생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망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 건 아니다. 참고 사는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분명히 나에게 맞는 삶의 형태가 있다. 힘들어도 스트레스를 받아도 내가 기꺼이 감당할 수 있고 또 감당해내려는 의지가 생기는 삶의 형태가 있다. 나는 매일 같은 정해진 시간에 일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남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여러 사람과 일하는 것보다 혼자 일하면서 모든 과정을 내가 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더 좋다. 나는 누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보다 필요한 일을 내가 찾아서 하는 것이 더 좋다. 나는 내 자유시간에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동태눈을 하고 하루하루를 보냈던 예전과 다르게 일상을 완전히 바꿔버린 지금, 나는 인생을 혐오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 거면 왜 사는 걸까, 하고 매일매일 분노를 뿜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맞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며, 그에 부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억울하지 않다.


  억울하지 않은 삶을 위해 나는 오늘 또 용기를 낸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선택일지라도 눈 딱 감고 실행해버린다. 그러면 또 깨닫는다. '아, 이렇게 해도 어떻게든 다 살아지는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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