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알콜 무노동
2022. 07. 06(수)
J 역시 다른 모든 술꾼들이 그러하듯 폭주, 블랙아웃, 잇아웃(토), 샤우팅, 타박상 등을 섭렵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들도 많다.
너무 치명적이라 바로 기억에서 지워버린 사건들도 있을 것이다.
술로 인한 수많은 내상과 외상들을 뒤로 하고 현재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상태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돌아왔다'는 것이 음주에서 비음주도 돌아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밖에서 안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아주 오래전부터 20여 년 동안 밖에서 남들과 어울리면서 부어라마셔라 하다가
최근 10여 년 동안에는 집 안에서 마셨다는 것이다.
(도합 30년이 넘는다. 참으로 장구한 음주의 세월이여!)
이유는 가사노동이다.
J는 술 없이 집안일을 할 수 없다.
요리, 빨래, 청소, 정리정돈을 할 때 언제나 늘 술을 마셨다.
J에게 있어서 가사노동의 시작은 장수 막걸리 흰 뚜껑을 냉장고에 비치해두는 것부터다.
될 수 있음 살짝 빈속이어야 한다. 그래야 첫잔부터 술기운이 확 퍼진다. 배가 부르면 술이 안 들어가고 효과도 떨어진다. 너무 빈속에 마시면 진짜 알코홀릭스러우니 과일이나 된장국 두어 스푼으로 속을 약간 채운 후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다. 이어 이어폰을 장착하고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튼다.
목으로는 알콜이, 귀로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흘러 들어간다.
긴장이 살짝 풀리면서 기분이 조금 올라간 이 상태가 일하기에 딱 좋은 상태다.
지난주에는 금, 토, 일 사흘 연속 마셨다.
사흘 내내 집안일을 꽤 많이 했다는 말이다.
금요일.
청소하느라 맥주 1000cc정도 마셨다.
토요일.
장보기, 요리, 옷장 정리 등을 하느라 오후 1시경부터 계속 마셨다.
일하면서 한 병을 비웠고,
종일 많은 일을 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느라 저녁에 쉬면서 한 병을 더 비웠다.
막걸리 2병은 블랙아웃을 부른다. 언제인지 모르게 잠들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둘째 면회를 가야했다.
면회를 간다는 것은, 그냥 일어나서 차를 몰고 나가면 되는 일이 아니란 것을 아들을 군대 보내 본 엄마들은 안다.
최소 1시간 전에 일어나 볶음밥, 제육볶음을 만들어 보온통에 담고, 된장국도 데워 담고, 수박과 과일 등도 썰어서 통에 담고, 얼음물과 커피도 준비하여 바리바리 싸들고 차에 올라 부랴부랴 달려가서, 부대 근처 김밥집을 수배하여 김밥 두어 줄도 추가로 사가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때 이른 무더위에 새벽부터 땀이 줄줄 났지만 5시 반에 일어나 이 모든 과정을 차질없이 해냈다.
준비해간 음식을 둘째와 함께 싹싹 비워먹으며 노닥노닥 세 시간.
다시 차를 몰아 집에 도착하니 오후 3시.
청소와 빨래가 보인다.
빨래감을 세탁기에 넣기 전 막걸리를 내 입에 먼저 넣어야 한다.
주말을 대비하여 미리 장전해둔 장수막걸리 흰 뚜껑.
일단 하나 따자!
이렇게 주말 3일을 알차게 마시며 많은 일들을 했다.
술기운 없이는 다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J에게 있어서 집안일은 너무 지루하고 힘이 드는 일생의 과업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하다.
이러니 술을 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한 달 전부터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주중에
집안일이 별로 없을 때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주 가사노동이 거의 없었던 월,화,수,목에는 마시지 않았다.
그녀 음주의 기본 베이스는 가사노동주의 성격이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저녁 반주가 습관이었다.
1일 1병의 세월이 어언 10년이다.
그런데 뭔가 달라졌다.
필시 달리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부터 술 생각이,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망이 줄었다.
소망한 바도 아니고 기대한 바도 아닌데, 저절로 그렇게 됐다.
월, 수, 금 요가 전후에 달린다.
지난 월요일, 그 더운 날에도 달렸다.
오늘도 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