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비행 그 행복한 중독
당신의 삶엔 당신만의 오아시스가 있으신가요?
by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Sep 11. 2020
당신의 삶엔 당신만의 오아시스가 있으신가요?
여긴
2020년 1월 10일
목요일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와있다.
바스락거리는 새하얀 침구를 덮고 푹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1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번 비행은 유달리 힘이 들었다.
승객이 많은 비행이기도 했고
,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았던 비행이기도 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비행은 업무 강도가 높은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2
년 동안
즐겁게 비행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호텔에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을 거쳐
내가 얻은 답은
힘든 비행 속엔
내가 만든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비행의
특성상 승객 탑승부터
첫 번째 서비스가 끝나기 전까지 쉴 수가 없다.
승객들의 탑승이 시작되면 안전 규정에 맞게
짐 보관, 모든 승객의 착석 상태. 유동물 고정 등 많은 안전 업무를 마치면 비행기는 이륙한다.
20000피트
에 도달하면
벨트 싸인이 꺼지는
'띵'소리와 함께 우리의 서비스는 시작된다
.
장거리 기준 이코노미클래스는
세 가지의
식사 선택과 음료 서비스를 한다.
퍼스트클래스와 비즈니스클래스는 코스별로
카트 차림으로 나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
상위클래스는 특성상 코스의 흐름이 끊기면
안 되기에 정확함과 스피드가 생명이다. *
겔리에서는 정신없이 바쁘게 준비하지만 승객에게 서비스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미소와 우아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길게는 16시간 비행 동안 앉아있는 시간이 5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날을 새고,
계속 서있는 직업이다 보니
힘든 부분이 많지만,
그 속에서 내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단연 내가 비행 속에서 만든
오아시스 덕분이라 생각한다
.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숨 가쁘게 첫 번째 서비스가 끝나면
한숨 돌리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럼 나는 제일 먼저
투명한 컵에 얼음을 가득 넣은 후
사이다를 따르고, 레몬 슬라이스 두 개를 띄운다.
그리고 한입 가득 마신다.
목 끝에 느껴지는 탄산의 톡 쏘는 맛과 달달한 맛이 레몬의 상큼한 맛과 어울려 목을 타고 넘어가면 이제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디움 15분'
오븐
의
타이머를 맞추고
,
스테이크를 구우며 기다리는 동안
선배님들에게 배운 마법의 소스
인
A1 소스와 홀스래디쉬 소스의
완벽한 조합을 만들고,
오븐에서 힛팅이 끝났다는 반가운 ‘띵’ 소리가 나면
갓 구운 스테이크를 오븐 장갑을 끼고
조심조심 꺼낸다.
앙뜨레 뚜껑을 열면 아직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스테이크를 썰어
미리 만들어 놓은 마법에 소스에 찍어 먹는 이 순간을 좋아한다.
입안에 퍼지는 미디움 스테이크의
육즙 가득 고소한 맛과
마법의 소스의 달콤 알싸한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교대로 쉬는 시간이 찾아오면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 *벙커에 눕는다.
바로 잠들지 않고
,
우선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이나 여행 사진
,
내 아이
의 사진을 본다
.
그 순간
몸만 누일 수 있는 작은 침대에 낮은 천장
그리고 커튼이 쳐져있는 이
작은
공간이
나에게 힐링을 주는 공간으로 바뀐다,
레스트 다녀온 후
,
드라이아이스로 꽁꽁 얼려져 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갓 내린 커피로 녹여 만든 기내 표 아포가토 먹기
.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 쌉싸름한 맛이
기분을 좋게 한다.
승객들이 쉬는 동안
기내 적정 온도 24+-1
도가 유지되기에
기내가 다소 춥게 느껴지면 뜨거운 물을 내려 마시는 고소한 향의 녹차 한
잔
.
포도와 곁들여 먹는 카망베르 치즈의 단짠의 맛.
비행이 길어도, 비행이 힘들어도-
내가 계속해서 미소 지으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곳곳에 만들어 놓은 나만의 오아시스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내라는 한정된 공간, 업무강도가 높은
업무들,
날을 새야 하는 직업의 특성 상,
내 생각에 따라 내가 있는 이곳이
사막이 될 수도 있고,
시원한 오아시스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나만의 오아시스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이 비행기라는 공간은
나에게 ‘오아시스’가 되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생각 하나로 내가 사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어려워진 가정환경과,
승무원이 된 마지막 과정에서 떨어지는 좌절을 맛보았다. 그리곤 깨달았다
.
인생은 늘 행복한 일들만 있을 수 없다는 걸
-
가끔은 숨이 안 쉬어지는 듯 한
힘든 상황을 마주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찾아오곤 한다.
그때 나는 그 절망의 나락 아래
아주 푹신하고 커다란 쿠션이 있다고 생각한다
.
그 쿠션이 있기에 나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도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 쿠션이
햇빛 좋은 날 카페로 나와 마시는
달달한 카라멜마끼야또가 될 수 도 있고,
예쁜 노을이 지는 한강을 걷는 일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루마의 ‘flower’
를
듣는 걸 수 도 있고,
달리는 차 안에서 모모랜드의 ‘뿜뿜’을 크게 틀고, 미친 듯이 따라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달달하고 색이 예쁜 마카롱을
사는 일일 수 도 있고,
지금같이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일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좋아하는 그 모든 것이
절망의 나락 방지 쿠션이 될 수 있다
.
절망의 나락 방지 쿠션에서 조금 쉬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씩
절망과 맞서다 보면 어느새 못 이길것 같았던 절망의 시간은 지나가고
절망의 시간을 이겨내며 깨닫는
지혜가 남게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어린 시절 그 힘든 상황을 겪고
,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게 된
지금과 같이-
요즘은 캄캄한 밤이 찾아오면
아이와 함께 잠이 든다.
이제
갓 말을 하기 시작한
3
살 아기는
자기 위해 방에 불을 끄면 나에게 말한다.
“엄마 무서워요.”
그럼 나는 대답한다.
“엄마가 지켜줄게. 무서울 필요 없단다
.
엄마가 옆에 있어.”
그리곤 아기를 토닥이며
,
좋아하는 자장가를 불러 준다.
“엄마가 지켜줄 거야. 무섭지 않아요
.
엄마 고마워요
.”
그리곤 내 품에 파고 들어와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다.
아직 말하는 것도 어색한 이 아이가 나에게 건낸
고맙다는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어느새 나는 지킬 아이가 생겼고
,
내 부모도 내가 지켜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무섭다고 피할 수 있는 보호막이
어는 순간 내가 되었다.
피하는 게 답이 될 수 없다
.
나에게 찾아온 좌절이 순간.
당신에게 만든 그
절망 방지 쿠션이
당신의 삶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삶 속에 오아시스가 있나요?
혹시 오아시스가 없다면 만들어보세요.
언젠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나를
절망에서 일으켜 세워
지혜와 만나게 해 줄 버팀목이 될 테니깐요.
*
겔리: 항공기의 조리실 (주방)
*벙커: (비행기) 침대
keyword
힐링
위로
비행
14
댓글
2
댓글
2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소속
항공사승무원
지구별에서 비행하고, 공부하고, 육아하며, 글 쓰는 '반짝임'이 있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저글링 하는 삶 속에서 지혜롭게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과정을 담았습니다.
팔로워
878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에서 여유를 즐기는 그를 보다.
이스탄불에서 설렘을 맛보다.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