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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엔 당신만의 오아시스가 있으신가요?


당신의 삶엔 당신만의 오아시스가 있으신가요?




 

여긴 2020년 1월 10일 목요일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와있다.

바스락거리는 새하얀 침구를 덮고 푹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1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번 비행은 유달리 힘이 들었다.

승객이 많은 비행이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았던 비행이기도 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비행은 업무 강도가 높은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2년 동안

즐겁게 비행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호텔에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을 거쳐

내가 얻은 답은

힘든 비행 속엔 내가  만든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비행의 특성상 승객 탑승부터  

첫 번째 서비스가 끝나기 전까지 쉴 수가 없다.

승객들의 탑승이 시작되면 안전 규정에 맞게

짐 보관, 모든 승객의 착석 상태. 유동물 고정 등 많은 안전 업무를 마치면 비행기는 이륙한다.

     

20000피트에 도달하면

벨트 싸인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서비스는 시작된다.


장거리 기준 이코노미클래스는

세 가지의 식사 선택과 음료 서비스를 한다.

퍼스트클래스와 비즈니스클래스는 코스별로

 카트 차림으로 나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상위클래스는 특성상 코스의 흐름이  끊기면

안 되기에 정확함과 스피드가 생명이다. *겔리에서는 정신없이 바쁘게 준비하지만 승객에게 서비스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미소와 우아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길게는 16시간 비행 동안 앉아있는 시간이 5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날을 새고, 계속  서있는 직업이다 보니

힘든 부분이 많지만,

그 속에서 내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단연 내가 비행 속에서 만든

 오아시스 덕분이라 생각한다.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숨 가쁘게 첫 번째 서비스가 끝나면

한숨 돌리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럼 나는 제일 먼저

투명한 컵에 얼음을 가득 넣은 후

사이다를 따르고, 레몬 슬라이스 두 개를 띄운다.

그리고 한입 가득 마신다.

목 끝에 느껴지는 탄산의 톡 쏘는 맛과 달달한 맛이 레몬의 상큼한 맛과 어울려 목을 타고 넘어가면 이제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디움 15'

오븐 타이머를 맞추고,

스테이크를 구우며 기다리는 동안

선배님들에게 배운 마법의 소스

A1 소스와 홀스래디쉬 소스의

완벽한 조합을 만들고,

오븐에서 힛팅이 끝났다는 반가운 소리가 나면

갓 구운 스테이크를 오븐 장갑을 끼고  

조심조심 꺼낸다.

앙뜨레 뚜껑을 열면 아직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스테이크를 썰어

미리 만들어 놓은 마법에 소스에 찍어 먹는 이 순간을 좋아한다.

입안에 퍼지는 미디움 스테이크의

육즙 가득 고소한 맛과

마법의 소스의 달콤 알싸한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교대로 쉬는 시간이 찾아오면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 *벙커에 눕는다.

바로 잠들지 않고,

우선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이나 여행 사진,

 내 아이사진을 본다.

그 순간

몸만 누일 수 있는 작은 침대에 낮은 천장

 그리고 커튼이 쳐져있는 이 작은 공간이

나에게 힐링을 주는 공간으로 바뀐다,

     

레스트 다녀온 후,

드라이아이스로 꽁꽁 얼려져 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갓 내린 커피로 녹여 만든 기내 표 아포가토 먹기.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 쌉싸름한 맛이

기분을 좋게 한다.

     

승객들이 쉬는 동안

기내 적정 온도 24+-1도가 유지되기에

기내가 다소 춥게 느껴지면 뜨거운 물을 내려 마시는 고소한 향의 녹차 한.

     

포도와 곁들여 먹는 카망베르 치즈의 단짠의 맛.

     

비행이 길어도, 비행이 힘들어도-

내가 계속해서 미소 지으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곳곳에 만들어 놓은 나만의 오아시스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내라는 한정된 공간, 업무강도가 높은 업무들,

날을 새야 하는 직업의 특성 상,

 내 생각에 따라 내가 있는 이곳이

사막이 될 수도 있고,

시원한 오아시스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나만의 오아시스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이 비행기라는 공간은

나에게 오아시스가 되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생각 하나로 내가 사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어려워진 가정환경과,

승무원이 된 마지막 과정에서 떨어지는 좌절을 맛보았다. 그리곤 깨달았다.

인생은 늘 행복한 일들만 있을 수 없다는 걸-


가끔은 숨이 안 쉬어지는 듯 한

 힘든 상황을 마주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찾아오곤 한다. 그때 나는 그 절망의 나락 아래

아주 푹신하고 커다란 쿠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쿠션이 있기에 나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도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 쿠션이 햇빛 좋은 날 카페로 나와 마시는

달달한 카라멜마끼야또가 될 수 도 있고,

예쁜 노을이 지는 한강을 걷는 일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루마의 ‘flower’

 듣는 걸 수 도 있고,

달리는 차 안에서 모모랜드의 뿜뿜을 크게 틀고, 미친 듯이 따라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달달하고 색이 예쁜 마카롱을

 사는 일일 수 도 있고,

지금같이 타닥타닥타자 치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일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좋아하는 그 모든 것이

절망의 나락 방지 쿠션이 될 수 있다.

절망의 나락 방지 쿠션에서 조금 쉬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씩 절망과 맞서다 보면 어느새 못 이길것 같았던 절망의 시간은 지나가고

절망의 시간을 이겨내며 깨닫는

지혜가 남게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어린 시절 그 힘든 상황을 겪고,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게 된

지금과 같이-

 

요즘은 캄캄한 밤이 찾아오면

 아이와 함께 잠이 든다.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3살 아기는

 자기 위해 방에 불을 끄면 나에게 말한다.

엄마 무서워요.”

그럼 나는 대답한다.

엄마가 지켜줄게. 무서울 필요 없단다.

 엄마가 옆에 있어.”

그리곤 아기를 토닥이며,

좋아하는 자장가를 불러 준다.

엄마가 지켜줄 거야. 무섭지 않아요.

엄마 고마워요.”

그리곤 내 품에 파고 들어와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다.

아직 말하는 것도 어색한 이 아이가 나에게 건낸

고맙다는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어느새 나는 지킬 아이가 생겼고,

내 부모도 내가 지켜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무섭다고 피할 수 있는 보호막이

 어는 순간 내가 되었다.

피하는 게 답이 될 수 없다.

나에게 찾아온 좌절이 순간.

당신에게 만든 그 절망 방지 쿠션이

 당신의 삶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삶 속에 오아시스가 있나요?

혹시 오아시스가 없다면 만들어보세요.

언젠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나를 절망에서 일으켜 세워

지혜와 만나게 해 줄 버팀목이 될 테니깐요.

     


*겔리: 항공기의 조리실 (주방)

*벙커: (비행기)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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