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인 나는, 늘 마지막 비행이 그립다.
비행의 쉼표, 그리움의 시작.
늘 그래 왔다.
쉼 없이 12년을 비행을 했었다.
매일 짐을 챙기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짐을 풀고 그곳을 즐기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짐을 풀고 며칠 안 되는 한국에서의 삶을 즐기고 또다시 짐을 챙기고 비행기를 타는 삶은 연속.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 속에서 감사했던 건 내 눈에 담을 수 있던 다양한 나라들이 존재했다는 것. 12년이 1년처럼 느껴지는 시간의 비약을 승무원을 하며 느낄 수 있었다.
나는 12년을 비행을 하며, 두 번의 임신을 했다.
2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비행의 쉼표를 맞이 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11년 만에 처음 비행을 쉬는 것이기에 마냥 신이 났었다. 지상에서의 삶은 오랜만이라 늦게까지 낮잠을 자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며, 스케줄 근무로 참여하지 못한 문화센터도 규칙적으로 다녀보았다.
승무원의 특성상 임신을 아는 순간부터는 태아의 안전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기에 우리는 다른 직업보다 임신 휴직이 길다. 사실 임신을 해보니 초기에는 유산 때문에 조심해야 하고, 막달에는 조산 때문에 조심했어야 했다. 거기에 초기에는 입덧으로 힘이 들고, 막달에는 무거워진 몸 때문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되고 힘들었다. 그러기에 임신 초기부터 10개월 동안 쉴 수 있는 직업적 혜택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두 번의 휴직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늘 휴직 전 마지막 비행이 그립다.
첫째를 임신하기 전, 나는 내 인생의 최고의 팀을 만났다. 승무원은 특성상 1년 동안 14명 정도의 팀원이 한 팀을 이루어서 비행을 다니는데, 팀장님 부팀장님부터 선배님과 후배님까지 완벽하게 좋았던 팀을 만난 건 그때였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팀이 된다는 건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1년 동안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나 또한 시니어 그룹에 속하게 되었고, 세계 어디든 이미 다녀와본 곳이기도 하고, 나와 함께하는 그룹은 호텔에서 머무르기를 좋아하는 특성이 있어 거의 투어를 나가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회사에 들어와 상대적으로 어린 시니어에 속한 나로서는 늘 투어가 그리웠다. 그렇다고 후배들과 같이 투어를 가기에는 그들이 시니어인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걸 알기에 내 자리에 맞게 호텔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반갑게도 이 팀에서는 부팀장님과 선배님이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시니어인 우리들은 갓 입사한 승무원들처럼 신나게 투어를 다녔다. LA 디즈니랜드를 시작으로, 오클랜드의 와이너리 투어,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몰디브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까지.
좋은 사람들과 전세계의 아름다운 곳에서 추억 만들기.
그들과의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팀이 바뀐지는 어느새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며 시간을 보낼 정도로 돈독한 사이가 됐다. 그 사이 팀원 중 두 명은 아기 엄마가 됐고,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첫째를 임신했을 때도 그렇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좋은 팀과 좋은 곳을 다녀왔던것이 휴직 전 마지막 비행이었다. 그래서 난 늘 그때가 그리웠다.
첫째 임신 전 마지막 비행은 치앙마이 4박 5일 스케줄이었다. 개인적으로 4박 5일 스케줄을 좋아한다. 스테이션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태국인 치앙마이는 마사지도 시원하고, 음식도 입맛에 잘 맞기에 휴향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가기 전 예약해 놓은 쿠킹 클래스에 팀원들이 같이 참여해 모닝글로리, 똠얌꿍, 팟타이를 배웠다. 현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에서 요리를 배우는 경험은 이색적이었다. 즐거운 요리시간이 끝나고 좋아하는 현지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야경이 예쁜 야외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분 좋은 여름 바람과 함께 웃었던 시간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음날은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고,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저녁은 한식당에 찾아가 맛있는 한식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하늘을 걸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날 스테이션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좋았던지 꿈에서도 나올 정도로 그 시간을 그리워했다.
내가 좋아하는 20년을 비행한 선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비행은 중독이야. 그리고 언젠가 네가 비행을 그만두었을 때 전 세계의 모든 곳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
사실 선배의 그 말이 그때는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휴직으로 2년을 쉬게 되었을 때 선배가 말한 그리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첫째 아이를 낳고, 다시 복직 후 세계 여러 나라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란.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금.
나는 지금도 행복했던 임신 전 마지막 비행을 그리워하고 있다.
비행 그 행복한 중독.
그렇게 승무원인 나는,
늘 마지막 비행이 그립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