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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엄마 승무원 4명이 만나면 벌어지는 일.

픽업 요정과 승무원 그 사이


오전 10시 30분.

오늘의 약속 시간이다.

아침부터 첫째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둘째는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9시 50분에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다소 차가운 가을바람과 눈부신 가을 햇살이 오랜만인 나의 외출을 반기는 것만 같았다. 다들 오늘의 약속을 위해 아침 일찍 바쁘게 아이를 어린이 집에 등원시키고 어렵게 어렵게 만나러 오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시간 오전 10시 30분보다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쇼핑몰을 돌아보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많은 식당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팀 언니였다. 세상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언니. 아직 문도 열지 않는 식당이 이렇게 많아. 우리가 아기 엄마들이긴 한가 봐. 식당 문 열기 전부터 만나고."


우리가 아가씨 때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간에 만나 저녁 늦게까지 수다 떨고 헤어지곤 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우리가 아기 엄마가 된 것을 실감했다. 하나 둘 언니들이 오고 마침내 넷이 되었다. 아직 쇼핑몰에 식당도 문을 열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첫째 아이 유치원 버스 픽업 시간이 3시라 일분일초도 아깝다며 수다가 시작되었다.


세명의 휴직자와 한 명의 복직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비행하는 분위기와 바뀐 것들을 공유했다. 곧 복직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자격을 갱신해야 하기에 요즘 핫하다는 유명 영어 강사 정보도 얻었다. 아가씨 승무원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남편들을 꼭 닮은 아기들을 가진 엄마 승무원이 되었다. 그래도 아가들을 데리고 오지 않고 자유부인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들을 보는 중 아기 엄마 승무원들의 특징들이 눈에 보여 정리해보았다.


1. 아이 이야기를 한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 이야기를 한다. 아기들의 발달 상황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감기와 수족구가 돌고 있는 요즘 상황, 육아의 마무리인 저녁 시간이 되면 방전된다는 이야기와 그래도 자는 아이는 천사같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한다.


2. 몸매와 뷰티 관련 이야기를 한다.


아이를 낳다 보니 엄마 승무원의 주된 관심사는 산후 몸매 관리이다. 다시 승무원으로 복직하려면 유니폼을 착용해야 하기에 몸매 관리 관련 식단과 운동을 공유한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기에 피부 탄력을 위한 리프팅 정보와 윤기 나는 피부관리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3. 여전히 예쁘다.


아기를 낳아도 여전히 예쁘다. 승무원들은 단아한 이미지의 사람들이 많다. 아이를 낳아도 아기를 낳기 전 기본적인 이미지가 있기에 그 모습이 유지가 된다. 식사를 하고 간 카페에서 넷이 같이 셀카를 찍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계신 어머님 두 분이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어머님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사진을 찍으시다가 우리를 빤히 보시더니 다들 예뻐서 같이 충무로에서 왔다 갔다 하면 케스팅 당하겠다는 말씀이었다. 모르는 어머님의 칭찬에 우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웃었다.


4. 비행과 사직을 고민한다.


아기를 낳고 비행을 할 수 있다는 건 누군가 아이를 대신 돌봐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내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를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건 많은 고민을 요하는 일이다. 오늘 만난 네 명 중 세명은 친정 엄마와 아줌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한 명은 상황 상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사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언니의 사직에 관한 이슈에 우리도 많은 생각을 모아 언니가 좋은 판단을 내리기를 응원했다. 비행을 하디보면 아기 엄마 승무원들은 비행과 사직 사이에서 고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5.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아기가 있으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아기가 하원하기 전까지 우리의 만남은 정해져 있다. 아가씨 승무원들을 만나며 언니 더 있다가 갈 수 없냐며 애정 어린 투정을 부리곤 한다. 하지만 엄마 승무원들을 만나고 있는 중 알람이 울리고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고 하면 어서 가보라며, 오늘 나오느라 고생했다고 토닥여준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반응에 경험의 차이를 느낀다. 이 약속을 위해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둘째 이유식을 챙기고 바쁘게 바쁘게 나오는 과정을 해본 엄마 승무원들과 해본 적 없는 아가씨 승무원 사이에서의 차이를 인정한다.


내가 인생을 살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아기를 낳은 것이었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 처음엔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그로 인한 행복함도 컸다. 이번 생에 엄마는 처음이라 만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나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그녀들이 있어 행복했다.


하늘 길에서도 그녀들이 있어 웃었다.

뒷 갤리에서 밀 세팅하며 뭐가 웃겼는지 하하호호 웃으며 식사 준비했던 시간과 비행기 어딘가 숨어 있다 생일 주인공을 서프라이즈로 축하해주던 시간 덕분에 타지에서의 생일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새벽 비행을 하며 날을 새야 하는 상황에서 면세품 판매를 실수 없이 했는지 물건과 영수증을 맞추는 인벤토리라는 고된 작업을 할 때도 갓 구워준 쿠키를 겔리 커튼으로 쓱하고 내밀고 가는 언니가 있어서 웃었다. 마닐라 비행에서 만난 맛있는 뷔페어서 맛있다, 맛있다 백번 하고, 고급스러운 마사지샵 가서는 행복하다, 행복하다를 외쳤다.


언젠가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비행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검은 옷을 입고 달려와 나를 위로해주던 손길과 밥 잘 챙겨 먹어야지 아버지 잘 모실 수 있다며 국에 밥을 말아 내 입에 떠먹여 줬던 따뜻했던 손길을 기억한다. 덕분에 전날 한숨도 못 잔 내가 그녀들 곁에서는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가장 슬픈 시간과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생명 탄생의 기쁨을
그녀들과 나눴다.

그녀들과 함께했던
 전 세계 여러 나라와
 잠시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지금'이라는 시간대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그녀들이 있어
감사하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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