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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되자 12월이 특별해졌다.


매년 새해가 오고, 연말이 찾아온다.
승무원이 되면 특별히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 바로 12월 한 달 비행 스케줄이 공지되는 날이다.

그날이 되면 모든 승무원들이 자신의 12월 비행 스케줄을 조회하기 위해 회사 홈페이지 접속한다. 많은 승무원의 접속으로 30분가량 스케줄 조회 페이지에 접속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나 또한 그 많은 승무원 중 한 사람이기에 시간 차이를 둔 10번의 도전 끝에 어렵게 어렵게 나의 12월 스케줄을 확인하게 됐다.

빠르게 두 눈이 향하는 곳은


12월 25일
12월 31일

크리스마스에는 어디 있지?
12월 31일에는 어디 있지?


사랑하는 뉴욕의 크리스마스
로맨틱한 뉴욕의 겨울


12월의 특별한 두 달 중 하루라도 한국에 있으면 선방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런 특별한 날 승무원이 한국에 있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다.

스케줄 확인이 끝나면 동기 카톡 창에 카톡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때 어디가?
12월 31일에는 한국에 있어?"

누구는 크리스마스 때 파리 비행을 간다고 이야기를 했고, 누구는 발리에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을 뉴욕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맞이하는 동기도 있었고, 다름 팀 팀 비행에 자신만 혼자 조인돼서 애틀랜타 비행을 가는 동기도 있었다. 또 신사의 나라 런던에서 새해를 맞는 동기도 있었, 방콕에서 보내는 새해기에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마사지를 받고 올 거라는 동기도 있었다.

그중 모든 이의 부러움을 받는 동기의 카톡이 도착했다.
"나 12월 31일에 한국에 있어"
그러자 진심으로 그 동기를 부러워하는 카톡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승무원에게 스케줄은 "랜덤"이다. 승무원의 한 달 스케줄을 만드는 회사 부서가 따로 있기에 매달 스케줄이 공지되는 날 다음 달 내가 어느 나라들에서 한 달을 보내게 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승무원이 된 후 스케줄 중 특별히 관심 있게 보는 달이 겼다.

첫 번째. 자신의 생일이 속해 있는 달이다. 승무원 각자의 생일이 다르기에 생일만큼은 가족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두 번째. 설날, 추석이 속해 있는 달이다.
이 두 명절이 있는 달은 결혼 한 승무원들이 더욱 긴장해서 조회하는 달이다. 비행을 가느냐 시댁을 가느냐가 달려있기에-
결혼을 하지 않은 승무원들은 이런 명절은 가족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쉬기를 바란다.
하지만 요즘은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 설날과 추석 때 여행을 가는 가족이 많아졌고 대부분의 비행이 만석이다. 그러기에 이 기간에 승무원의 인력은 더 많이 필요해졌고, 우리가 쉴 수 있는 확률은 더욱 낮아졌다.

세 번째 12월이다.
크리스마스, 12월 31일 그리고 1월 1일을 맞이하는 의미 있는 달이기에 12월의 스케줄은 더욱 눈여겨본다.

비행하며 보낸
여러 날의 12월을 돌이켜본다.
마닐라에서 보냈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시즌
30불의 행복이었던 마닐라 호텔뷔페
런던에서 보냈던 크리스마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낸 크리스마스가 좋았다.
파리에서 코끝 시린 유럽 추위를 이겨내며 마주한 에펠탑과 반짝이는 전구들이 가득한 샹젤리제 거리를 보는 게 좋았다.
후덥지근 덥지만 화려한 두바이에서 보냈던 크리스마스와 런던 호텔에 꾸며진 커다란 트리 앞에서 선물을 들고 사진을 찍었던 크리스마스도 기억이 난다. 마닐라 3박 4일 비행 스케줄이 나와 저렴한 가격에 퀄리티 좋은 마사지와 너무 맛있었던 저녁 뷔페까지 먹었던 크리스마스 시즌도  좋았던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홍콩에서 보낸 어느해의 12월31일.
방콕에서 보냈던 12월31일.
하와이에서 보낸 12월31일
뉴질랜드에서 보낸 12월31일


그리고 12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맞았던 새해도 기억이 난다.
홍콩 비행을 가서 크루 호텔에서 사랑하는 팀원들과 맞이한 12월 31일과 1월 1일.
마음 맞는 팀원들과 함께하면 가족과 보내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해외에서도 행복한 연말을 보냈다. 
언젠가는 괌에서 맞이했던 새해.
한국은 추운 겨울인데 이곳은 더운 여름이라는 게 늘 신기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두 번째 식사 서비스를 준비하며 이한 새해. 서로에게 건네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맞는 새해라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실 승무원이 된 후 좋았던 부분이 있다.

첫 번째. 계절의 차이였다.
한국은 추운 겨울인데 괌에서 볼 스치는 기분 좋은 여름 바람을 느끼는 것. 승무원이기에 추운 겨울에도 괌 발리 등 다양한 여름 나라에서 보내는 낯선 여름이 좋았다.

두 번째. 시간의 차이였다.
개인적으로 한국과 내가 머무르는 나라에 시간의 차이가 나는 것이 좋았다.  나는 과거시간에 존재하는데 남편은 미래의 시간에 있다는 것.
또 하나 좋은 건 새해를 두 번 맞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국은 이미 1월 1일이 되었지만 미국에 있는 나는 아직 12월 31일에 존재하는 순간을 좋아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12시가 되면 폭죽이 터지고 누군지도 모르는 외국 사람들이 다정히 서로에게
"해피 뉴이"
라고 외치는걸 호텔 창문으로 보는 게 좋았다.

12년을 근무하며 나에 세계 많은 나라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이 있었다.
언젠가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사랑하는 손자 손녀를 안고 들려줄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과  그런 인생을 살았다는 게 참 감사하게 느껴지는 2020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내년에는 마스크를 벗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 당연했던 일상이 참 그리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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