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걷기왕>
남들은 다들 무언가를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남들은 다들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나만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지는 않나요? 강화도에 살고 있는 만복이처럼 말이죠. 친구들과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에 불안해하며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빠르게 걸어가다가 넘어지게 되는 그 만복이처럼요.
이야기는 강화도에 사는 7살 만복이가 비닐도 벗기지 않은 아빠의 새 차에 토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학교에 들어가 첫 소풍을 갈 때는 멀미가 더 심해져서 토쟁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죠. 병원에서 검사를 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만복이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차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을 타도 멀미를 하는 만복이, 아빠는 만복이의 정신력이 문제라고 합니다.
어쨌거나 고등학생이 되어도 멀미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만복이는 왕복 4 시간이나 걸리는 학교를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 만복이가 가끔 하늘을 쳐다보며 멈출 때가 있습니다. 비행기를 바라보느라고요. 비행기가 지나갈 때 손으로 모양을 만들어 100번 찍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요. 혹시 만복이의 소원은 멀미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만복이의 소원은 멀미가 아닌 다른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요. 거기서 어처구니없는 반전이 일어난다지요.
늘 2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복이는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수업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일상이었지요.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담임선생님은 걷기를 잘하는 만복이에게 육상을 추천합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지요? 그렇게 선생님의 추천으로 육상부에 들어가게 된 만복이, 경보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만복이가 경보를 하게 됩니다. '꿈을 향한 열정과 간절함'이 있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담임선생님,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도 꿈을 향한 열정과 간절함을 이야기합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참고 이겨내야만 할 것처럼 말이죠.
선생님의 모습은 뭐랄까,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을 뿐 정작 중요한 건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느낌이랄까요. 아이들의 꿈을 선생님이 대신 꾸는 건 아니잖아요? 혹시 선생님의 모습이 “내 모습?”하며 뜨끔해하고 있지는 않나요?
어쨌든 만복이는 육상을 하게 되면서 생활 습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경보로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만복은 전국체전 선발전에 나가지만 극복할 수 없었던 멀미로 인해 실격을 당하며 탈락하게 됩니다. 그 일로 경보를 그만두고 예전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만복이는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왠지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합니다.
그런 만복이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인천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는데요. 정말 우주가 도와주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만복이는 어떻게 서울까지 가야 할까요? 그냥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내가 왜 그렇게 빨리 걸었지?
가끔은 천천히 걸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냥...조금 느려도...괜찮지 않을까?
영화 '걷기왕' 중~
영화는 까칠한 선배 수지, 짝꿍 지현이, 늘 만복이 편이었던 육상부 정돈이, 그리고 육상부 코치가 자기가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에필로그로 전하며 끝이 납니다. 그럼 걷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만복이는 무얼 하고 있을까요?
자막이 올라가며 나오는 OST마저 영화 같았던 '걷기왕', 내레이션을 담당하며 만복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소순이(만복이네 집에서 기르는 숯소)가 깜짝 놀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만복이가 간절히 원했던 그 일, 소순이에게 일어난 깜짝 놀랄만한 일은 무엇일까요?
정말 유쾌한 코믹 영화 같지만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영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속도로 걸어가며 힘들어하고 있는 분들에게 추전 하고픈 영화, 지금까지 '걷기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