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어떤 날이었던 내일은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이정은, 김상호 <용길이네 집>

by 꿈꾸는미운오리


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인 재일 한국인 정의신 감독이 만든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은 1969년 일본 고도성장기 오사카 공항 근처 판자촌에 살던 재일 한국인의 고단한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원제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연극으로 먼저 선보인 작품으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지만 약간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1969년 봄부터 1971년 봄까지 , 판자촌에 위치한 용길이네 곱창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용길이는 일제강점기 말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가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용길이네는 아내를 잃고 두 딸을 데리고 살던 용길이와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영순이 딸을 데리고 일본에 와서 살다가 재혼한 가정으로 막내 토키오를 낳고 곱창집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영화는 막내아들 토키오의 내레이션으로 판자촌과 용길이네 곱창집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이곳은 내가 살던 동네입니다.

나는 이곳이 싫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세상은 고도성장이라는 특급열차를 타고

모든 것이 마구 내달리며

번쩍번쩍하게 변해갔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만은 옛날 그대로였죠.

골목길에는 아이들이 웃고 우는 소리가 가득하고

아저씨, 아줌마의 고함 소리가 울리고

거기다 비행기까지 지나서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시끌시끌했습니다.

그 골목 한 구석에

우리 가게 '용길이네 곱창집'이 있습니다.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중~


큰 딸 시즈카는 어린 시절 사고로 다리를 절고, 둘째 딸 리카는 언니를 좋아하던 데츠오와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클럽에서 일하며 가수의 꿈을 꾸는 막내딸 미카는 같이 일하는 유부남인 남자를 사귀고 있고 막둥이 토키오는 왕따로 인해 실어증에 걸렸습니다. 아버지의 손수레에 타고 공항 옆을 지나가면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듯한 토키오, 영화에서 토키오가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은 이 장면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 좋은 봄날 저녁이다.

기분 좋다!

이런 날은 내일을 믿을 수가 있지.

어제가 어떤 날이었든

내일은 분명히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중~


1969년 어느 봄날, 지붕 위에 올라간 아들 토키오와 함께 저녁노을 아래 벚꽃 잎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용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낭송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실의 삶은 고단하지만 이렇게 아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판자촌 끝자락에 위치한 용길이네 곱창집은 찾아오는 손님들 또한 모두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외상을 밥 먹듯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렇게 해서 어떻게 곱창집을 유지할 수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안주인 영숙은 정한수 떠놓고 천지신명께 용길이네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잘 되기를 바라고 막내아들 토키오가 학교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고 마지막으로 외상 좀 갚으라고 빌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한결같이 가족처럼 대합니다. 나중에 세 딸은 각자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지만, 막둥이 토키오는 끝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놓아버리고 맙니다.


중학생인 토키오는 유명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구타까지 당합니다. 그래서 늘 학교에 가지만 교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고 급기야 유급을 당할 처지가 됩니다. 학교로 불려 간 아버지 용길은 유급을 받아들이겠다면서 꼭 그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엄마 영숙은 밝게 자라던 토키오가 사립중학교에 다니면서 왕따와 폭행을 당하고 그 일로 실어증에 걸린 것을 언급하여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고 학교를 옮기자고 합니다. 하지만 용길은 일본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지 말고 이겨내야 한다며 끝내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분노를 어쩌지 못하는 토키오, 끝내는 자신이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토키오, 아버지마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토키오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놓아버리고 맙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다음 해 봄에는 일본 고도성장의 상징인 만국 박람회가 열렸으며 용길이네 곱창집은 퇴거 명령을 받게 됩니다. 국유지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돈을 주고 집을 산 용길이는 절대 집을 떠날 수 없다고 했지만 다음 해 봄인 1971년에 마지막으로 판자촌을 떠나게 됩니다.


막내 사위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딸들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며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용길이, 끝내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일만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온 용길이, 그럼에도 '내일은 분명히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내일이 꼭 좋은 날일 필요는 없지만,

내일이 좋은 날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내일은 좋은 날이 될 거라는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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