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연재 Mar 26. 2023

우리는 모두 너를 좋아해

'카우치 서핑'으로 현지인 만나며 여행하기 (2)

카우치 서핑 (Couch Surfing)
카우치 = 소파, 서핑 = 파도타기

파도를 타듯이 전 세계의 현지인 집에 머물며 현지인을 만나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배낭여행자와 현지인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 단순히 여행만 하는 게 아니라 세계인과 문화를 교류하며 친구도 될 수 있다!
https://www.couchsurfing.com/



에스토니아 탈린, 바샤네 가족

에스토니아는 치안도 좋고 국민의식도 높아 나의 첫 카우치서핑 홈스테이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에스토니아 탈린에 있는 호스트 가족을 검색했다. 내가 선택한 가족은 열세 살 딸이 있는 바샤네 가족이었다. 자기소개에 한국을 좋아하는 따듯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느껴져 요청 메시지를 보냈더니, 흔쾌히 환영해 주었다.


날이 흐렸던 탈린, 그리고 갈매기 한 쌍



핀란드 헬싱키에서 페리를 타고 에스토니아 탈린에 도착했다. 탈린은 모스크바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은은하고 고즈넉하게 예쁜 도시였다.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인 바샤의 가족은 이제는 완전히 에스토니아 스며들어 융화하며 살고 있었다. 제2의 모국인 에스토니아에 대한 애정이 무한히 느껴졌다. 열세 살밖에 안 되었지만 마치 또래 친구와 얘기하는 느낌을 주었던 바샤. 아늑한 집안만큼이나 포근했던 바샤의 가족과 함께 저녁도 먹고, 사우나도 하고, 늦은 밤에는 다 같이 와인도 마시며 에스토니아에 스며들어보는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1박 2일을  보내고 리투아니아로 가는 야간버스에 탑승했다. 터미널까지 배웅해 주며 나보고 탈린에 꼭 다시 오라고 하던, 헤어지기 너무 아쉬웠던 바샤네 가족이었다. 탈린은 그 자체로도 너무나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탈린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이들 덕분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 예뻤을 것 같은, 하지만 그 모습 자체로도 좋았던 탈린




그리스 아테네, 5명의 여행자들과 함께 잤던 D네 집

카우치 서핑을 통한 홈스테이가 마냥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리스에 도착한 첫날 방문한 아테네 D의 집은,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의 집이었다. 돈 안된 좁은 집에 무려 5명의 카우치서핑 여행자를 받은 것이었다! 


자리도 마땅치 않았고, 청소는 안 한 지 꽤 된 것 같았다. 매트리스도 매우 찝찝했다. 두 명의 멕시코인, 한 명의 칠레인, 한 명의 러시아인과 같이 머물렀는데, 그들과 보낸 시간 자체는 즐거웠다. 하지만 너무 불편하고 쾌적하지 못한 환경에 다음날 아침 나는 도망치듯 나왔다. 자기소개에서 집 사진을 제대로 보지 않고 요청을 보낸 나의 실수였다.



아테네 주택가의 모습. 흰 건물이 많다.




그리스 크레타 이라클리오, 엘레나

엘레나의 집에서는 경험은 꽤나 유쾌한 경험이었다. 엘레나의 집에는 총 다섯 명의 여행자가 있었다. 미국인과 이스라엘인 커플, 조지아인 커플, 그리고 나. 이들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재미난 게임도 같이 했다.


이들 중 미국-이스라엘 커플은 본인을 프리건이라고 소개했다. 프리건(freegan)이란 길거리에 버려진 폐기물을 회수하여 재사용하고 길거리에 버려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말한다. 여행 중 숙소도 제대로 예약하고 잔 적은 한 번도 없고, 폐건물에서 주로 잔다고 했다. 실제로 이 둘은 쓰레기통을 함께 뒤지다가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지금도 사실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들과의 인연은 이라클리오를 떠난 뒤 하니아에서까지 이어졌다. 조지아 커플과도 마음이 맞아 이들 덕분에 처음으로 히치하이킹도 도전해 볼 수 있었다. 한 번쯤 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안 났는데, 이들 덕분에 두려움 없이 히치하이킹 해서 무사히 하니아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스 크레타 하니아, 베로니카

베로니카와의 시간은 나의 카우치서핑 경험 중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1박을 예정했던 베로니카의 집에서의 머묾은 이틀이나 연장되어 무려 3박을 그녀와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 크레타의 투명한 물빛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크레타 토박이 베로니카는,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크레타는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인 만큼 관광업과 요식업에 산업이 치중되어 있어,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베로니카가 일할 수 있는 회사가 마땅치 않다고 했다. 옥빛같이 아름다운 휴양지인 이곳을, 베로니카는 감옥 같다고 했다.


베로니카를 통해 그리스인이 그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스는 EU국이지만 다른 EU국과 다르다며,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휴가가 긴 것도 복지가 좋은 것도 아니라고 했다. 시리아 난민의 유럽입성 통로로 이용되기 때문에 홈리스들도 많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대학교를 아테네에서 다닌 것 빼고는 평생을 크레타 하니아에서 살았는데, 유럽의 다른 나라 (특히 프랑스)에서 일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8개월 여행 중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베로니카가 해준 '파스티치오(그리스식 라자냐)'였다. 디자이너인 만큼 예술에 관심이 많은 베로니카와 나는 아크릴화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저녁을 먹은 후에 와인을 한 잔 하며 같이 그림을 그리곤 했다. (종종 그녀의 친구 바고스가 와서 같이 그리기도 했다.)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예술가들이 왜 모여서 작업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베로니카와 함께 그림 그리는 시간은 여행 중 가장 힐링되는 시간 중 하나였다.
왼쪽은 내가 그리다 만 하니아 항구의 풍경, 다른 두 개는 베로니카와 바고스의 작품



베로니카 집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베로니카와 바고스, 그리고 나 셋은 그리스의 밤문화를 신나게 즐겨보기로 했다. 밤에 출발해 새벽까지 서너 군데의 펍과 클럽을 돌아다녔는데, 그렇게 신날수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이들이 맥주를 한두 잔씩 사주었는데, 큰돈은 아니었지만 미안해하는 나에게 베로니카와 바고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너를 정말 좋아해. 그리고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즐거워. 그래서 너에게 그리스에서의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니까 부담 갖지 마!'


베로니카, 바고스와 함께 느껴본 그리스의 젊음의 밤




이 외에도 하루에 두 갑씩 담배를 피우지만 인간미와 애정이 넘치는 그리스의 스피로스, 귀여운 꼬마 두 명이 있는 미국 텍사스 에이미네, 지금 생각해도 멕시코에 가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멕시코 칸쿤 키아라네 등등 카우치서핑을 통해 내가 얻은 경험은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하다.


카우치 서핑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여행은 반 이상이 '사람'이었다. 그 나라의 풍경, 자연, 체험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이 결국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썩 인상적이지 않은 곳도 특별한 사람을 만나면 그곳이 특별한 색깔로 칠해지곤 했다. 내가 여행 중 만난 친구들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였길, 나 덕분에 그 여행지가 더욱 즐겁고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었길, 한번 바라본다.


미국 텍사스 에이미의 둘째 꼬마 아이리스가 그린 그림. 나도 있다!





                     

이전 04화 전 세계에 내 couch(쇼파), 내 가족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