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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연재 Apr 10. 2023

호스텔, 세계 여행자들과 필연적 교차점

여행 중 호스텔(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 것의 장점

나는 혼자 여행을 할 때 호스텔을 이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라고 왜 호텔이 편한 걸 모르겠는가! 물론 호스텔은 '저렴하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내가 호스텔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친구를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장점을 예상하고 호스텔을 이용했던 것은 아니다. 그전까지는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호스텔(게스트하우스)에서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방에 누가 있어도 굳이 말을 붙이려고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반년이 될지 일 년이 될지 모르는 장기 여행에서 매번 호텔에 묵는 것은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 테였고, 깔끔하고 예쁜 호스텔을 찾아다니는 것도 여행의 또 하나의 재미이자 선물 같은 이벤트가 되었다. 그리고 호스텔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그에 따라오는 '본품보다 멋진 사은품'같은 존재였다.



그리스 크레타 섬의 'Kumba Hostel'의 작은 라운지. 그리스 스럽고, 깔끔하고, 예쁜 호스텔.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왕왕 찾아온다. 산행을 하다가 모르는 행인과 말을 섞기도 하고, 같은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장거리 이동하는 버스나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길에서 만난 친구'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여행 중 만난 한 친구는 조지아에서 탄 10시간짜리 버스 옆자리에 앉은 독일인 연하남과 친해져 연인이 되었고, 지금은 결혼해 예쁜 딸 낳고 잘 살고 있다. 나도 이런 로맨스를 조금은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아쉬운 건 아니다. ^^)


호스텔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그 도시를 걸으며 탐험하고, 역사적 명소에 대해 설명해 주는 워킹투어, 그 나라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쿠킹클래스 등이 운영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면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만나게 되고, 같은 여행자 신분이다 보니 더 허물없이, 경계심 없이 다가가고 친해질 수 있다. 이 또한 여행의 또 다른 재미 아니겠는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울키친 호스텔'에서의 쿠킹 클래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예쁜 호스텔'에 선정되기도 했다.




꼭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라운지에 앉아서 티비를 보다가,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조식을 먹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혹은 옆자리 침대라는 이유로, 심지어는 세수를 하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예를 들면, 호스텔 옥상에서 나쵸와 맥주 한 잔 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뻘쭘하게 '하이' 하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슬쩍 권해 본다. '나쵸 좀 먹을래?'... (학창 시절 친구사귐의 물꼬를 트는 첫 문장도 '지우개 좀 빌려줄래?'이지 않는가!)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한다. 여자 혼자 과테말라 다니는 거 안 위험하냐, 한국인들은 피부가 하얗데 넌 까매서 당연히 한국인은 아닐 줄 알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되기도 했다.


특별히 진지한 대화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툭툭 던지는 대화. 그 대화를 시작으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진지한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하고, 다음날의 여행동행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인생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스 크레타의 'Kumba Hostel'에서 자몽 먹기.. 이걸 먹다가 캐나다인 이사벨을 만났다.



캐나다 동부에서 온 이사벨은 혼자 2주간 크레타를 여행 중이었고, 본인이 차를 렌트했으니 원한다면 같이 외곽의 해변에 놀러 가자고 나에게 제안했다. 바다는 거절할 리가 없었던 나였기에, 10분 만에 짐을 싸서 이사벨과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특별한 것을 하진 않았다. 태닝 하고, 수영하고, 사진 찍고, 그게 다였다. 하지만 특별했다. 자기애가 넘치지만 거만하지 않고, 남을 편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이사벨은, 나의 첫 캐나다인 친구가 되었다.




호스텔에서 연결된 짧은 인연이 다른 나라에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어떤 애가 한국 라면을 사와서 한강라면을 끓이고 있길래 그렇게 끓이면 맛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네덜란드와 이집트 혼혈인 오마르였는데, 유쾌하고 너무 성격이 좋아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 아침에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었다.


오마르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3년 후였다. 여자친구, 엄마와 함께 한국 여행을 하던 그는 바쁜 일정 속에도 시간을 내 나를 만나러 왔고, 가족도 소개해 주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잊지 않고 날 찾아준 것, 내 나라를 좋아해 주는 것이 감사했다.


키르기즈스탄 카라콜에서 만난 캐나다인 앤드류는 나를 따라 비슈케크까지 왔다가, 몇 달 후에 내가 캐나다에 갔을 때 밴쿠버 일정을 동행해주기도 했다.




물가가 저렴한 나라의 호스텔을 이용하다 보면, '엥, 이게 정말 만 원도 안 하는 방이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이런 나도 8개월 내내 주야장천 호스텔만 이용했던 것은 아니다. 남과 같이 방을 쓰는 것이 지겹고,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가 주기적으로 찾아왔는데, 이럴 때는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기도 했다. 역시 뭐든 균형이 중요한 것 같다.


멕시코 바깔라르의 호스텔에서 바라본 전경. 다시 가도 이곳에 묵고 싶다.



친구를 사귈 기회가 스스로 찾아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세계여행 한두 달의 나는, '누군가 먼저 걸어주기를 기다리사람'이었다. 바로 앞에 사람이 있어도 그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거는 자체를 귀찮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키르기즈스탄 카라콜의 호스텔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시안이었으나 한국인 같지는 않았다. 그도 나에게 말을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냥 단순히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궁금해서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싱가포르에서 왔어! 너는 어디에서 왔어?'라며 신나 하며 대답을 했다. 감춰왔던 그의 수다스러움이 꽃봉오리가 터지듯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그와 나는 카라콜에서의 절친이 되었고, 그 호스텔에 머무는 3박 4일 동안 아주 친하게 지냈다.


친구가 되고 싶지만 먼저 말을 걸기는 용기가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친구가 되고 싶은 상대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꽤 많은 여행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대화가 별로 안 이어지는 것 같다면, 걱정할 것 없다! 친구 안 하면 그만이다. 세상은 넓고 여행자는 많으니.


과테말라 안티구아의 'Adra Hostel'. 예쁜 정원과 옥상, 그리고 깨끗한 방까지 완벽한 호스텔이었다.



안티구아에서도 열 시간 가까이 떨어진 셰묵 참페이. 당시 나는 오랫동안 한국말을 하지 못해 한국인이 만나고 싶었다. 아니면 아시아인이라도. 동족이 당기는 느낌이랄까?


셰묵 참페이의 호스텔에 도착해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데, 맞은편에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아시안이 있길래, 성큼성큼 달려가서 물었다. '너도 혼자 왔냐? 나도 혼자 왔다! 이 외딴곳에서 아시안을 만나니 반갑다!'


그는 중국인 '쑨'이었는데, 나이도 내 또래고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아시아인이라 더욱 반가웠다. 그는 직장이 중국의 '닝보'에 있는데, 과테말라로 파견근무를 온 아이였다. 멕시코에서 2년 정도 파견근무를 하다가 과테말라로 옮겨온 상황이었다. 영어는 잘 못하는데 스페인어는 거의 원어민처럼 해서 신기했다. 동질감에 친해진 우리는 다음날 셰묵 참페이에 함께 올라왔고, 그 후로도 몇 년간 꾸준히 연락할 정도로 친한 친구가 되었다.


산속의 예쁜 롯지, 과테말라 셰묵참페이 '파차마야 호스텔'. 예쁜 자연과의 조화가 완벽한 호스텔이었다.
해먹과 강이 멋진 파차마야 호스텔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시끌벅적한 파티는 좋아하지 않는다. 도란도란 모여서 이야기하는 소수정예 모임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일부러 호스텔을 정할 때 '시끌벅적한 파티가 펼쳐지는 곳이다'라는 후기가 있으면 일단 걸렀다. 취향에 맞는 호스텔에 가는 것도 즐거움에 한몫하는 듯하다.


알틴 아라샨에 올라가기 위해 갔던 키르기즈스탄 카라콜의 한 호스텔은 말 그대로 카라콜 여행자들의 베이스먼트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한국인 민희언니를 만나기도 했고, 스코틀랜드, 싱가포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여행자들은 짧으면 사흘, 보통 일주일정도를 그 호스텔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며 얼굴도 익숙해지고, 한 번씩 말도 섞게 되고, 저녁에는 맥주도 한 잔씩 같이 하고, 장도 같이 봐오고, 그러면서 두루두루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내가 대단히 사교성이 좋거나, 유머러스하거나, 말발이 세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이 주는 특별한 감성이 있듯이, 여행자들끼리 하는 대화는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그냥 즐겁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도 그냥 신기하고, 모두가 나랑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시 나는 20대였지만, 호스텔에서 사귈 있는 친구는 연령제한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또래와 친해질 수밖에 없고, 직장에서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상사나 후배보다는 또래와 친해지기가 훨씬 편한데, 여행에서는 그런 없었다. 혼자 여행하는 50대 이상의 유럽인 아주머니들도 생각보다 많았고, 부부도 친구가 되고, 할아버지도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동년배다'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친구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내향형과 외향형을 둘 다 갖고 있는 나지만, 여행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데는 '열린 마음'이 한몫했다. 선을 긋지 말고, 먼저 다가가는 것. 그 인연이 하루의 인연으로 끝날지 몇 년의 인연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세계인과 친해지고 소통하고 싶은 그 마음 하나에 충실하여 다가가는 그 마음.


30대가 된 지금도, 가끔 이런 여행자 감성이 그리울 때면 호스텔을 찾는다.



요정의 호수라 불리는 과테말라 '셰묵 참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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