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연재 Mar 07. 2023

엄마 왈, '가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갈 거잖아...'

여자 혼자 세계일주 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

혼자 세계일주를 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우와 멋지다! 부럽다!'

'혼자? 안 위험해? 부모님이 허락하셔?'

(+ 돈 얼마 드냐?)





워낙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겁도 없어서 원래부터 혼자 국내든 해외든 많이 다녔던 터라, '언젠간 할 줄 알았다'는 것이 주위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겁 없는 나라도, 왜소하고 (보기에는) 연약한 나름 여자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중남미, 중앙아시아(~스탄 국가들), 러시아가 여행의 메인이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우려는 더더욱 컸다. 다들 '부모님이 허락하셔?'라고 물었다.


퇴사를 하고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엄마는 살짝 애원하듯 말씀하셨다. '친구 하나 구해서 같이 가면 안돼?'


몇 달 내내 친구랑 붙어서 여행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고, 정 그렇다면 처음 일주일정도는 친구랑 동행을 해보겠다고 했다.


'가지 말라고 해도 넌 어차피 갈 거잖아..'


체념한 엄마.

역시나 30년 가까이 키워오셔서 그런지 딸을 너무 잘 아신다.



엄마가 사주신 세계지도. 어릴 때는 지구본을 사주셨었는데, 이번엔 예쁜 캔버스 지도를 사주셨다. 나의 세계여행 경로를 스티커로 붙여보았다.





회사 인사팀장님과 퇴사면담을 했다. 네 살배기 딸이 있 그분은, '내 딸이 혼자 세계일주 한다고 했으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말렸을 거다 허허'라고 푸근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부모님도 참 골치 아프시겠다'며.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엄마는 맘 편하게 주무신 날이 얼마 없다고 하셨다.


10년 만에 만난 폴란드 친구와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노느라 엄마의 보이스톡을 네 시간 넘게 못 받았을 때,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산속으로 트래킹을 간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었을 때,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지금 생각해도 철렁한다.




키르기즈스탄의 '촐폰아타'라는 시골 마을에서는, 식당을 찾아 헤매고 있는 나에게 어떤 현지인들이 차를 태워주겠다고 해서 덥석 탔다.


신부 보쌈 문화가 남아있는 그 나라에서 참 겁도 없었다 싶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그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고, 주위에 갈 만한 몇 개의 식당을 직접 데려가서 보여준 뒤 나에게 편하게 고르라고 한 뒤,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식당으로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이런 일을 겪고 어떻게 인류애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락 두절되어 엄마를 걱정시켰던 키르기즈스탄 알틴 아라샨



그래도 조금 으슥한 곳으로 갈 때면 휴대폰을 손에 꼭 쥐긴 했다. 여차하면 휴대폰 모서리로 괴한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내 주먹보다는 휴대폰이 딱딱할 테니까.


내가 유난히 겁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며 '여긴 좀 위험하겠다' 내지는 '여기선 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딱 한 군데, 미국 LA밖에 없었다.


'카우치 서핑'이라는 어플을 통해 현지인을 만나기도 하고, 현지인 집에서 며칠 묵기도 했다.

히치하이킹도 겁없이 했다.


남편은 이 얘기를 들으면 '그러다 꼬꼬무나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다'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한다. 필리핀 여행 가서 오픈채팅방으로 만난 사람에게 납치당한 얘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며.


처음 만나는 모르는 외국인의 집에 묵는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 철저히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쳤다. ('카우치 서핑'에 대해서는 추후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위험을 감수한 보답으로, 나는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고, 귀중한 평생의 친구를 얻었다. (물론 이런 나의 경계심 없는 행동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나는 운명론자인가 보다.


'사고 날 사람은 조심해도 나고, 안 날 사람은 어디서도 멀쩡하다'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다녔다.

사실 옳지 않은 발상이다. 안전은 백 번 주의를 기해도 넘치지 않고, 사고 날 운명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좋고, 사람을 믿고,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며 정말 나쁜 사람들은 극소수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경계심 없이 행동하는 나지만, 사실 옳은 짓은 아니다.


너무나 운이 좋게도 여덟 달 내내 험한 일은커녕 그 흔한 소매치기조차 당한 적 없는 나는, 이 믿음과 인류애가 더욱 돈독해지게 되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이전 01화 아직은 내 멋대로 살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