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와 진득함이 부족한 것이 최약점인 나지만, 이런 나도 십수 년간 꾸준히 사랑해 온 것이 있었다. 일기와 여행.
2018년 당시 나는 첫 직장 입사와 동시에 권태로움을 느낀 지 수개월째, 그럴듯해 보이는 멋진 말로 포장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남들은 몇 년에 한 번씩 겪는다는 번아웃, 나에게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왔다. 분위기도 자유롭고 정시퇴근이 보장되는 회사였는데도 말이다.심지어 입사한 지 1년밖에 안 된 사회 초년생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직장인들이 들으면 혀를 찰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은 항상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욕심, 그리고 체념의 반복이었다.
고소득 전문직에 도전해 볼까, 사업을 해볼까, 한 계단 올라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만 하다가 결국 '나는 그것에 도전할 만큼 명석하지도, 용기 있지도 않다'라고 타협한 뒤 욕망을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이런 마음을 갖고 회사를 다니니 의욕이 생길 리 만무했다. 권태로움에 벗어나기 위해, 몇 년 후에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세계일주를 일찍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좋아하는 비보이가 세계일주를 한다는 유튜브를 보게 된 것도 결심에 한몫했다.
타고나길 느리고 둔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당시 나는 비보잉이나 팝핀, 락킹 댄서들이허공을 날카롭게 찌르며 화려한 파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 손끝이 짜릿해졌다.
가장 좋아하는 황량한 자연과 폭신한 동물의 조합
나는 왜 장기여행을 떠나고 싶었을까?
이십 대 초반에는, 여행을 통해 많은 사색을 하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며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는 그냥 그 순간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나 자신, 그리고 세상과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이든, 회사든. 역마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진득하지 못한 성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항상 변화와 역동적인 것을 원하고, 정적인, 단조로운 삶을 견디지 못한다. 이렇게 진득함이라고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나에게도 십 년 넘게 좋아해 오던 것이 바로 일기와 여행이었다. 이팔청춘 열여섯 살부터 써오던 일기장은 어느덧 붙박이장 한 칸을 가득 채웠다.
내가 좋아하는 일기를 쓰며, 내가 원하던 형태의 보헤미안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직업인으로서의 목표도, 저축을 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도 없으니 퇴사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20대이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 생각해 보면, 괜찮은 나이와 괜찮지 않은 나이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다.그저 떠나고 싶은 정도의 차이와 좀 더 떠나기 조금 수월한 시기가 있을 뿐.
결심하자마자 블라다보스톡으로 떠나는 편도 비행기를 예매했다. 두 달 뒤인 2019년 2월 24일 출발. 기간은 반년 예상, 귀국일은 미정.
세계일주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지만, 절반(1/2) 세계일주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그때 발길 닿는 대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떠돌아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는 탕진으로 보였을 수도, 누구에게는 시간낭비로 보였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도 맞았다.돌아오고 나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지금과는 다르게 대졸 무직자가 되어있을 테지. 평생 소위 말하는 '번듯한 직장인'으로는 살지 못하고 쭉 아웃사이더로 살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걱정도 들었다.하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이 답답한 회사에 갇혀서 이렇게 사는 방법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계여행을 통해 뭘 얻기를 바라는지는 아주 명확하지는 않았다. 그저 세상의 다양한 곳을 느끼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을 보고 싶었다.
나는 떠돌아다닐 때 행복하다. 그냥 그뿐이었다. 매일매일이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하루가 끝나는 순간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운 삶이 아닌,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잠시라도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