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의 죽음이 가져 온 소식
조금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주인공들을 소개하자면, 지난 4월에 새로 이사 온 지금 집의 집주인 요셉과 니키는 사랑스런 친구들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여러번 밥을 같이 먹고, 서로 열린 마음으로 진심으로 대하니 우리 넷은 짧은 시간 안에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요셉은 시골에서 부모님 집에서 36년을 살고 독립한지 1년 된, 호기심 많지만 조심스럽고 부지런한 남자.
니키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의 곁을 일찍 떠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카우치 서핑, 우프, 히치하이킹, 예술마을만들기 등을 하며 사람들과 공유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러나 이제는 정착하고 싶은 29살 여자.
니키는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부모님은 니키가 태어난 시골 마을에서 얌전한 여자로 커서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고, 니키는 조각을 하고 싶어했다. 부모가 바라는 것과 자신이 바라는 것의 잦은 충돌로 인해 믿음과 신뢰는 쌓일 수가 없었고, 가끔 만날 때에도 여전히도 항상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자녀를 비하하고 자신의 힘든 감정을 쏟아내는데에 바빴기에 니키가 요즘 어떤지 이야기를 묻지도 들을 기회조차 염두 해 두지 않았다. 이 슬픈 성장과정은 최근 큰 일이 생겼을 때에도 니키가 부모의 품에서 펑펑 울지도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2달 전, 정원 구석에 튼튼한 닭장을 짓고, 암탉 5마리를 데리고 왔다. 이 중에 한 마리는 너무나 예뻐서 계획했던 4마리 외에 니키가 특별히 추가로 데려온 녀석이였다.
흰색이 Emma(먹보 대장), 갈색이 Rossi (소심한 재채기대장), 검은색이 Sussi(탈출 대장), 얼룩이는 Paula(진짜대장), 작고 예쁜갈색이 Rebeca(예민하고 겁이많은 안대장).
아침에는 가장 일찍 일어나는 내가 사다리를 내려주고, 바깥놀이 구경을 시켜주는 일을 한다. 물도 주고, 밥도 주고, 야채도 주고, 서로 시간이 되는대로 함께 돌보고 있다.
그리고, 한 달 전 부터는 고맙게도 신선한 달걀을 선물로 받고 있다.
슬픔은 갑자기 찾아왔다. 지난 주 월요일 아침에 사다리를 내려주고 문을 열었는데 마지막으로 발차기 하며 내려올 Rebeca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날이 너무 더우니 집안에서 쉬고 싶은 가보다.. 하고 넘겼다.
오후에 요셉이 와서 울먹거린다...
"Rebeca가 구석에서 안움직인다.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어떡하지...?"
"우선 꺼내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보자."
겨우 겨우 꺼내고 살펴보니 눈을 감고 있다...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살이 딱딱하다...털은 여전히 부드러운데.... 한 쪽 눈을 실눈을 뜬 거 같아서 물을 살짝 입에 대 주었는데...
요셉은..우리가 늦은 것 같다고 한다....
왜 일까? 흔히 말하는 아픈 닭처럼 비실비실거리지도 않았었는데...어제도 잘 놀았는데... 이번 주 내내 너무 더워서 더위를 먹은 걸까? 유럽이 폭염으로 35도~40도로 우리도 숨막힐 정도였는데...그래서인가?
아님 파울라가 괴롭혔나?
저녁에 집에 들어온 니키는 소식을 듣고 계속 울었고...우리는 조용히 레베카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 옆으로 덤덤하게 약간은 상기된 표정의 강민이가 걸어왔고, 작은 주먹을 펼쳐 보였다.
작은 씨앗 하나
" 오늘 박물관에 가서 전설이야기 듣고 나오는데, 마법의 씨앗이라고 하나씩 가져가랬어. 다른 애들은 시시하다고 안가져갔는데, 나는 제일 큰 걸로 하나 가져왔어. 이거 레베카 무덤에 심어주자."
"무슨 씨앗일까? 헤이즐넛인가?.."
"아니, 마법의 씨앗! 레베카가 다시 태어날지도 몰라. 아니면 나중에 나무가 자라나면 이름을 레베카나무라고 짓자."
그 자리에서 우리는 울다가 웃다가.. 맑은 영혼의 어린이 덕분에 우리 어른들의 가슴이 토닥토닥 메만져 졌다..
그리고, 그 주의 토요일.................
날씨는 너무나 화창하고 예뻤는데,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니키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시커먼 먹구름에 모래 섞인 회오리가 휘휘 돌고 있는 얼굴이였다..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그제서야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한다.. 아마도 자전거를 끌고 오면서 내내 참았던 눈물이 터진 모양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놀라서 그저 꽈악 안아주었고, 괜찮다고.... 괜찮다고......토닥여 주며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니키는 한참이 지나서야 얼굴을 들었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물을 건넸다....
그리고는 손을 잡고 말하고 싶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오늘 병원에 정기 진료 받으러 갔었는데... 내 뱃속에 아기가 안 보인대...
오늘은 니키가 임신 4개월째 되는 날이였다. 2주후에 공식발표하기 전까지 세 명만 알고 있던 사실이였다..
니키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고, 여자형제가 없어서 내가 언니처럼 엄마처럼 마음을 챙겨주는 역할을 한다. 임신에 대해, 출산에 대해, 생명에 대해.... 한 생명을 잉태하는 여자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예전에 내가 꺼냈던 우스갯소리로 혈액형에 대한 얘기를 꺼낸 이후에, 니키는 혹시 몰라서 임신 전에 혈액형을 확인했었다. 본인이 O형(마이너스) 인걸 처음 알았고, 그래서 임신 기간 중에 특별한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럽사람들은 혈액형에 관심이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모든 경험을 토대로 조언도 해 주고 위로도 해 주는데.... 나는 유산의 경험도....가까이에서 들어 본 적도 없다...
뭐라고 말 해줘야 할지....정말.....세상에 이렇게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우리는 같이 껴안고 울고.....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였다...
너의 탓이 아니야, 너의 탓이 아니야...
아마도 아기가 우주여행을 더 하고 오려나봐.. 자신이 정한 적당한 때가 되면 다시 찾아올거야. 걱정하지마, 너가 엄마인걸 기억하고 분명히 다시 찾아올거야. 너의 품으로....
우리가 다시 펑펑 울 수 밖에 없었던 또 하나는.....
다음 주에 태반을 척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아기의 집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거라는 무서운 사실.... 그 안에 생명의 흔적이 함께 있을텐데....
그게 말이 되나? 말도 안돼! 왜 쓰레기통이야? 그렇게 존엄한 걸?
데리고 오자. 불법이란다....그런게 법으로 정해져있다고? 아닐걸! 말도 안돼!
우리는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부탁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반드시 데려와서 정원에 묻어 주기로 했다.
사랑의 거름과 촉촉한 물과 따스한 햇볕을 줘야지....
그리고 니키는 다시 기다릴 것이다. 아기 별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