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재 Dec 06. 2019

화려한 놀이터와 소박한 놀이

Sik Holz의 테마 놀이터- Siegfried 신화 이야기

베를린 북쪽 Richard-Wagner-Straße에 야심 차게 지어진 놀이터가 있다.

나무 조각팀이 따로 있을 정도로 훌륭한 조각 작품이 많은 Sik-Holz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슬로베니아에서 전설적인 영웅 Dragon Slayer 'Siegfried und die Nibelungen'

이 지역의 담당 구청인 Charlottenburg-Wilmersdorf 은  테마 놀이터 설계에 큰 가치를 두었다. 다양한 놀이 제공 외에도 지식과 가치가 놀이가 섞인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 이야기 배경인 Worms의 집을 짓고 그 외관에는 목판에 드래곤 슬레이어 Siegfried의 이야기를 새겨 놓았다.

두 좌석의 그네에는 창으로 설계된 대형 빔이 있다. 이 창은 Siegfried가 용을 죽이고 보상으로 Nibelungs의 보물을 얻은 전설적인 숲의 방향을 가리킨다. Nibelungs의 보물은 알록달록한 아크릴 유리창으로 표현되어 그 아래의 모래가 화려하게 빛이 난다.

또 하나 특별한 점은 부분적으로 맹인 어린이를 위한 점자 기둥과 가이드 로프를 설치했다.


이 곳은 주변에 많은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수영장과 도서관, 큰 마트 등 생활중심권의 한가운데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서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었다.

야심 차게 지어진 컬러풀하고 멋져 보이는 이 놀이터에서
과연 아이들이 그 신화 이야기를 읽어보고 보물의 형상을 알아보고, 
용을 죽인 Siegfried처럼 신화 속으로 빠져들어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재미있게 놀까? 


 아마도 그것이 어른들의 의도였겠지만, 솔직히 아이들은 신화에 별로 관심이 없다. 신화의 주인공보다 오늘 같이 놀 친구가 더 중요하고 무슨 놀이를 하고 놀지가 궁금할 뿐이다. 

물론 우리만의 놀이터, Siegfried 놀이터라는 의미는 천천히 오랜 시간 새겨질 것이다. 다만 거기에서 고민이 조금만 더 아이들을 향했더라면 더 좋은 놀이터가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우리는 수영을 끝내고 들러서 주 3회, 매번 3시간 정도를 머무른다. 나는 주로 앉아서 책을 읽거나 아이들 놀이를 관찰하는 편이다. 여기도 역시 부모들은 대부분 멀찌감치 앉아서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어린이 관점에서 아쉬운 점;

공들여 만든 흔들 그네는 6세 미만 어린이가 타기에는 안정적이지 못하고, 6세 이상이 타기에는 길이가 짧다일부러 타보려고 시도하다가 뒤로 엉덩방아 찧는 것을 재미로 의도하지 않았다면!
훌륭한 조각의 마녀를 붙잡고 타는 회전놀이대는 작아서 2명 정도 탈 수 있다. 3명 이상일 경우 많이들 떨어져 나갔다. 아쉽게도 그 마녀는 멋있지만, 안정스럽게 붙잡을 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알록달록한 아크릴 창으로 만들어진 보물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햇빛에 비추어 모래가 영롱한 색으로 반짝이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단, 그 보물을 둘러싼 밧줄을 안 떨어지고 건너느라 바쁘다.    (그러니 괜한 비싼 금액으로 만들어 놓은 아크릴 기둥은 무용지물인 격이다-> 많이들 그렇게 설계한다.)
맹인 어린이를 위한 점자 안내판에 감동받았다. 나도 눈을 감고 놀아 보았다. 아쉽게도 너무 짧고 작은 공간이어서 좀 더 많이 다양하게 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난간이나 보행 손잡이 같은 가이드 시설은 한 번 파악하고 나면 놀 때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므로 놀이터에 설치하는 것은 낭비이다. 그보다는 자갈, 나무 조각, 포장석 등으로 바닥구조가 뚜렷한 대조를 이루도록 조성해서 위험을 표시하거나 행동 요령을 알려 주는 것이 좋다.



 어린아이들은 언제나 모래 놀이에 푹 빠져있다. 조금 큰 아이들(5살~8살)은 약간은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무언가 계획을 짜고 노는 걸 좋아한다.

 오늘의 가장 멋지고 재밌는 일은 모래 속에서 조금은 특별한 돌을 주워서 모으는 일인가 보다.  

 한 명, 두 명, 서로 다른 곳에서 줍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느샌가 서로 주운 걸 보여달라고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연히 모두가 오늘 처음 본 사이다.)

미끄럼틀 아래 작고 어두운 공간 속에 모여서 모래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서로 주운 것을 모두 담는다. 점점 많아지는 게 재미있는지, 점점 더 열심히 찾아서 모은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이제는 7명이 되었다. 작은 아이들(2~4살)도 궁금한지 슬쩍 와서 구경하고는 언니 오빠들을 따라서 조금은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다.  


아이들은 숨을 공간이 필요하다. 저 작은 곳에 7명이 옹기종이 들어가 있다.그리고 진지하다.
어른눈에는 깨끗하지 않은 모래=아이눈에는 특별한게 섞여있는 재밌는 모래 / 작은 아이들이 하나 둘 구경오고, 따라한다.
놀이의 확장성, 사회성. 잡기놀이, 곤충발견, 해결회의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나이, 인종, 언어에 상관없이 공통의 관심사로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려지는 이 상황이 놀랍다. 서로에게 칭찬하고 관심과 반응을 보내주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작전을 짜는 이러한 상호작용에 감동을 받는다.

아이들이 놀라운 존재인 것이다.
놀이터는 단지 그런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놀라운 존재의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돌 줍던 그룹의 아이들은 잡기 놀이를 시작했다. 처음엔 수줍고 어색해하더니 공통의 관심사와 열심히 찾아 모은 수고스러운 일을 같이 하고 나더니 아주 돈독해진 모양이다.

놀이터 전체가, 모든 놀이기구와 풀 한 포기까지도 구석구석 모두가 잡기 놀이의 무대가 되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무슨 큰 발견을 한 듯 모든 어른들을 부르길래 가서 우르르 가서 살펴보니, 벌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벌이 아마도 다리에 모래가 붙어서 무거워 날지 못하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은 고민에 빠졌다. 열심히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다가, 행동파인 한 아이가 열매껍질을 주워와서 올려주니 벌은 끙끙대며 일어서려고 노력한다. 또 다른 녀석이 작은 나뭇가지로 다리에 붙은 모래를 털어주고, 또 다른 녀석이 나뭇잎을 주워와서 편히 쉬라고 한다. 

이것이 창의적인 사고와 협력하는 행동,  작은 생명을 아끼고 보호하는 마음을 깨닫게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부모의 가르침도, 책도, 학원도 필요 없는 자연 학습의 터, 놀이터!

너희들 덕분에  벌이 힘을 내서 다시 하늘을 날아서
나중에 맛있는 꿀을 선물해 줄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공공 놀이터의 실태-제주도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