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아남기
4. 이유식의 신세계
모유수유가 끝날 때 즈음 독일의 엄마들은 이유식의 스트레스가 시작되지 않는다.
독일 생활의 대부분이 아날로그적이라 불편한 점이 많지만, 이유식 세계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아과 의사도, 유치원 선생님들도 시판하는 이유식을 다양하게 먹일것을 권장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다. 의사의 의견은 이렇다.
"초보 엄마들은 성장 개월수에 필요한 영양소에 맞추어 다양한 재료를 고르기도 어렵고, 조리시간이나 다짐 정도에 대해 정확하지 않아서 제 때에 딱 맞는 식감의 농도를 맞추기 어렵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냉장고 보관 상태도 다 다르기 때문에 안전하고 훌륭한 품질이 검증된 시판 이유식을 먹이는 것이 좋습니다."
마트나 드럭스토에 가면 유리병에 담긴 다양한 이유식이 진열되어 있다. 아주 굉장히 세분화가 되어있어서 선택하기도 편하다.
-연령별: 생후 4개월, 6개월, 8개월, 10개월, 12개월 이후
-종류:
1. 과일 100% (사과, 바나나, 딸기, 망고, 배, 토마토…)
2. 야채 100% (시금치, 호박, 옥수수, 완두콩, 고구마,..)
3. Menü 메인요리 (채소+고기)
4. Zubereitung: 소고기, 닭고기, 생선
5. Früchteallerlei mit Vollkorn: 과일+곡물
6. 차, 쥬스
주로 이 정도에서 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보통 하루에 두 끼 정도를 이유식으로 주고 메인 이유식 다음에 디저트를 주고 잠들기 전엔 가볍게 먹이는 나이트용이 있다. 종류가 어마어마해서 다양한 맛을 보게 해주다 보면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맛과 싫어하는 맛을 알게 된다고 한다. 가격도 600원에서 2000원 정도로 저렴해서 엄마들이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우리 아이 입맛이 변했거나 좋아하지 않으면 남은 병을 엄마들끼리 교환하기도 쉽다. 위생상 외출하기도 좋고 보관하기도 편하다.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엄마가 100% 만들어 먹이기 때문에 슈퍼에서 파는 걸 먹인다는건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강민이 이유식 시절, 요리를 못하는 나는 2시간 걸려서 만든 호박퓨레, 브로콜리닭가슴살 등 열심히 만든걸 딱 한 입 먹고 안먹는 아이를 붙잡고 얼마나 좌절을 하고 괴로웠는지 모른다. 뚝딱뚝딱 만들어서 냉장고, 냉동고에 그득그득 채워놓는 엄마들이 꽤나 부러웠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양념을 제일 못한다. 다른 엄마들이 나물 안해먹여? 야채 적당히 간을 해서 줘야지라고 하는데 나라도 맛없는 건 아무리 영양가가 있어도 안 먹을거란 생각에 몇 번 도전하고 또 좌절하고 포기했다. 그리고는 나만의 방법으로 키우기로 했다.
주로 야채는 데치고, 고기는 굽거나 삶아서 그대로 주었다. 강민이는 아삭한 식감을 좋아했고 고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딱딱한 견과류도, 콩장, 시금치, 콩나물, 브로컬리, 컬리플라워, 당근, 감, 사과 등 거의 다 잘먹었다. 50일즈음에 할머니가 레몬즙을 손에 묻혀 잇몸에 발라준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아닌지 새콤한것도 참 잘먹는다. 레몬을 지금도 귤 먹듯이 씹어 먹는다. 그런데 독일 친구 중에도 레몬을 그냥 막 씹어먹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야채를 잘 먹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해서 시도도 해보지 않은 경우였다. 아이들의 입맛 성향은 어릴때부터 존중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입맛은 자라면서 시시때때로 계속 바뀌기도 한다. 독일 엄마들은 아이가 처음 음식 맛을 보는 이유식 단계에서 최대한 다양한 맛을 느껴보도록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애쓰지 않는다.
음식을 씹어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최소 2살) 식자재를 그대로 준다. 당근이나 오이를 잘라서 도시락에 넣어주고, 사과도 잘라서 주지 않고, 한개씩 통으로 먹게 한다. 우리처럼 예쁘게 껍질까고 자르고 모양내서 싸 오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엄마의 에너지와 시간은 한계가 있다. 이유식을 사서 먹인다고 해서 엄마가 아이를 덜 사랑하거나 노력이 덜 한 것이 아니다. 직접 해 먹이는 것도 사서 먹이는 것도 그저 서로 다른 선택의 모습일 뿐이다. 독일의 이유식 세계는 믿고 선택할 수 있고, 위생적이고, 영양소를 유지하며 에너지와 시간까지 절약해 준다. 만약 내가 아이를 또 낳는다면 당연히 그 세계를 선택할 것이다.
엄마는 모를 수밖에 없다. 모르는게 당연하다. 모두 엄마가 처음이니까. 그리고 좀 더 넓게 보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씩 더 현명한 엄마가 될 거라고 믿는다.
아이도 나도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이다.
(제목 이미지 출처:https://foxingerman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