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하려면 가장 먼저 채널 계정을 만들어야 한다. 채널 계정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유튜브용 구글 계정만 만들면 사실상 작업 끝이다. 기존에 쓰던 구글 계정을 활용해도 된다.
관건은 채널 이름이다. 빨리 시작하고 싶은데, 방송국 개국하고 싶은데, "맙소사! 간판이 없다!!"
유튜브를 하기로 결심하고, 아니 그 전부터 몇 달은 고민했다. 유튜브를 하게 되면 어떤 영상을 찍을까, 채널 이름은 무엇으로 할지, 무엇을 담을지, 어떻게 찍을지..’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터라 뭔가 '무릎을 탁 칠만한' 이름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초조해졌다. 이러다가 시간만 버릴 것 같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조급해졌다. 이게 뭐라고. 안해도 될 일을 벌여가며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우물쭈물 하다간 아무 것도 못하지. "에라 모르겠다!!" 우선, '연지TV'로 출발하자!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유튜브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맨 땅에 헤딩이었다. 용감했다. 무식해서. 이름이야 뭐, 나중에 바꿔도 되니까. 첫발부터 잘못 내딛었단 걸 알게 된 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었다.
나름 학교 다닐 때 주워들은 건 있어서 ‘타깃 설정’을 했다. IT를 어려워하고, 스마트폰 사거나 요금제 가입할 때 호갱이 되는 2,30대 여성들을 상대로 "언니가 있잖아~ 언니가 IT(전문가) 잖아, 쉽게 알려줄게~" 이런 컨셉으로 잡았다. 롤모델은 캐리언니였다. "오늘 언니랑 한번 재밌게 배워봐요~ 꺄하하" (지금은 도저히 눈뜨고 보기 힘든 영상이다. )
<허리UP 다이어트>는 현대인의 질병이라는 목허리디스크를 앓고 있거나 척추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쉽고, 재밌고, 임팩트 있게" 직장에서, 집에서, 체형 교정하고, 덤으로 살까지 뺄 수 있는 그런 영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건 온전한 내 이야기였다. 만 29살에 목허리디스크 진단받고, 수술이나 시술 대신 운동으로 극복해낸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어릴 때부터 꿈 많은 아이였던지라, 유뷰트 채널을 만든다는 것 만으로도 막 설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연지TV는 "내가 주인공이고 그간 하고 싶었던 것들, 마음에만 품고 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것들 다 할 수 있겠다" 상상하니, 룰루랄라~~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보고, 먹방도 하고, 여행 브이로그도 찍어야지.
"연예인이 아니고서야 이런 구성의 채널은 잘되기 힘들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뒤였다.
# 어라, 이것봐라
2017년 10월 23일, 첫 영상이 올라가며 연지TV 개국을 선포했다. 카카오미니 인공지능(AI) 스피커 사용기였다. 당시 통신사, 네이버 등 포털이 AI 스피커를 잇달아 내놓을 때였다. 카카오미니는 특히 자사의 강력한 음악플랫폼 멜론과, 국민메신저 '카카오톡'을 무기로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에 등장했다. 음성으로 카톡도 보낼 수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IT 출입기자들의 리뷰를 한 기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카카오미니 관련 기사와 블로그는 출시 소식부터 주요 기능, 리뷰 기사까지 족히 100개는 넘는다.
웬걸. 당시 CEO였던 임지훈 카카오 전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영상을 링크했다.
그 많고 많은 기사들을 제치고, 내 영상을 걸었다. 헉.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컸다. 유튜브 도전에는 스스로에게 박수 쳐주고 싶었지만, 첫 영상은, 그 영상은, 진짜 어색과 어설픔 그 자체였다. '정말 이걸 올려도 될까?' 수십 번 고민했던 처녀작이다. 지금도 그 영상은 절대 재생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눈을 뜰 수가 없다. 카카오 측에 유튜브 영상을 찍었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또 카카오미니의 좋은 점만 담긴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없어지는 듯한 민망함으로 점철된 영상이다. (앞서 얘기하지 않았나. 캐리언니 컨셉이었다고. 허허 참. )
신기한 일은 첫 영상인데도, 그렇게 민망하다못해 처참한데도, 단시간에 조회수가 2000회를 넘었다. 구독자라곤 6명뿐이었다. 나, 남편, 엄마, 아빠, 오빠, 동생.
너무 신기해서 관리자 채널에서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실수로 내 영상을 삭제해버리는 그런 바보같은 짓까지 해버렸다. 재업했지만 그때는 늦었다. 임지훈 전 대표의 페북에는 '존재하지 않는 영상입니다' 문구가 떴다.
허탈해할 찰나, 네이버에서 연락이 왔다. "네이버 AI 스피커도 이렇게 리뷰해달라"고. 글로만 리뷰할 땐, 기사만 쓸 땐,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이다. 스마트폰이나 가전기기 등이 나왔을 때 리뷰용으로 대여를 요청하면, "원하는 기자님들이 많아, 좀 기다리셔야 한다"며 한참 뒤에야 받을 수 있었다. '영상의 힘'을 느꼈다.
세번째 영상에서 그야말로 '대박'이 난다. 카카오미니 영상을 올리고 딱 일주일 뒤인 2017년 11월 일 아이폰X이 출시됐다. 그러나 아이폰 3차 출시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아이폰X대신 아이폰8이 나왔다. 아이폰X은 빨라야 연말, 늦으면 해를 넘길 수 있다는 루머들이 쏟아졌다.
아이폰X은 아이폰10주년 기념작이다. 아이폰X이 나오기 전부터 디자인과 작동 방식 등을 싹 바꾼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지문인식 버튼을 없애고, Face ID를 탑재, 애니모지 등 이전에 없던 기능들이 나온다니, 너무너무 궁금하고 빨리 만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언제 출시할지도 모른다니. 기약없는 기다림은 너무 싫었다.
일본으로 날아갔다. 출시날은 금요일. 목요일 퇴근 뒤 밤 비행기 타고 11월 2일 0시 즈음, 도쿄 오모테산도 애플스토어에 도착했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장대같은 비를 마주하면서 놀랐고, 애플스토어 정문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보고 와우. 피곤과 졸음에 무겁게 감기기만 하던 두 눈꺼풀이, 이마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위아래로 쫙 벌어졌다. 헉. 줄은 얼마나 길까, '덜덜덜덜..' 캐리어를 끌고 끝까지 걸어가봤다. 최소 지하철 한 정거장 길이는 되는 듯 했다. 휴대용 의자에서 비옷을 입고 우산을 들고 꾸벅꾸벅 졸거나, 건물 지붕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줄에서 이탈해도 그 줄을 인정해주는 것에서 일본 사람들의 질서(?)도 함께 봤다.
현장 열기는 엄청났다. 일본 사람들은 스마트폰은 애플, 노트북은 맥북밖에 안 쓴다더니 진짜로 그런 것 같았다. 아이폰X 구매 대기자에게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지, 아이폰X을 사려는 이유가 뭔지" 등을 물어봤다. 물론, 일본어를 못하기에, 파파고 번역기를 이용해서 인터뷰했다.
이 모든 것들을 카메라로 찍었다. 아이폰 10주년 기념작 아이폰X을 기다리는 대기 행렬, 마니아들의 열기, 파파고 인터뷰 등. 기사 쓰듯 뭘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렌즈에 담았다. 그날 처음 알았다. 새로운 아이폰이 출시되는 날, 애플스토어는 문을 열기 전 10초 카운트 다운을 외치며 함성과 함께 대기자들을 들여보낸다. 그리고 파란 옷을 입은 애플스토어 직원들은 줄서서 기다려준 충성고객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그때까지만해도 우리나라엔 애플스토어가 없었기에, 열심히 해외 애플스토어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풍경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것 역시 카메라로 찍었다. 내가 글로 쓰는 것보다 단 몇분의 영상이 현장의 열기를, 대기자들의 설렘을 반영하기 쉬웠다.
운좋게 아이폰X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맞은 편 조용한 골목에서 아이폰X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이 영상은 지금의 '기자 김연지'를 만들어준 가장 큰 발판이 됐다. 당시 조회수가 50명?도 안됐을 땐데, 이 영상 조회수는 일주일 정도만에 약 2만회를 기록한다. '아이폰X Face ID가 물속에서도 될까?' 실험한 영상은 4만회를 넘겼다. (간도 크지) 구독자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1월에 영상 몇 개만으로 구독자 1000명을 돌파했으니.
하면서도 신기했다. 사람들이 진짜 봐주는구나. '댓글'도 남겨주고 '좋아요'도 눌러주고 '구독' 버튼까지 눌러주다니. 솔직히 필자는 댓글을 남겨본 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로그인부터 귀찮고, 굳이 내가 여길 들렸다간다는 흔적을 남기는 게 좀 찝찝했다. 날 처음보는데도, 영상 감사하고 앞으로도 응원하겠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가슴이 벅차, 읽었던 댓글을 읽고 또 읽고 또또또 읽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막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결혼 뒤 심장이 이렇게 뛰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결혼식장 들어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서방님 쏘리) "심장이 있었구나" 평소 아프지 않으면 위가 있는지, 뇌가 있는지 등을 수시로 느끼며 살진 않는다. 평소에 사람들이 손을 가슴에 대면서 "심장이 잘 뛰는군" 확인하지는 않으니.
그렇게 연지TV는 순조롭게 출발했다. 이대로만 가면 1만, 10만, 100만 구독자 모으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몰라서 순수했던(?) 채널에 욕심이라는 때가 끼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