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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잊었던 나를 찾다

딸, 기자, 아내, 엄마 말고 나는 대체 누구?

by 기자김연지


"정말 욕심이 앞섰구나"


성공한 유튜버들의 채널을 보고 나니, '욕심'이 보였다. IT 뉴스를 쉽게 전달하고, 유튜브를 보는 뉴스 소비자에게 다가겠다는 유튜브 채널 개설의 취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먹방 조회수가 그렇게 잘 나온다며?, 장난감 언박싱하면 애들 난리나~, 살빼고 건강해지는 법 알려주면 잘 되지 않을까?" 이른바 '대박'난다는, 요즘엔 이게 '대세~'라는 그런 주제들을 찾아다녔다. 나 역시 잘되고 싶어서 유튜브를 시작한 건 맞으니까. 이왕 시작한 거, 더구나 일하면서 잠도 못자고 하는데 인정도 받고 싶고, 인기도 얻고 싶고 돈도 벌면 좋은 거잖아.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해봤다.


"연지TV를 10초간 홍보하세요"라고 할 때, 나는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음..


눈동자가 굴러가고 바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정체성이 없는 거다. '연지TV'라는 채널 브랜드 또한 잘못된 것이란 걸 금방 깨달았다. 연지TV는 김연지라는 사람이 연예인이 아닌 이상, 이름 들었을 때 알만한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채널에서 전하려는 메시지가 뭔지, 보여주고픈 영상이 뭔지, 연지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다. 일단 브랜드를 바꿔야 했다. 채널을 재정비하자. 브랜드 구축의 출발점을 여기로 찾았다.

그럼, 정체성을 찾아야하는데.. 난 뭐지? 난 어떤 사람이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나의 정체성이라..

여성이고, 결혼했고, 기자고, IT 출입하고 있고... 10년 만에 자기소개서 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직업, 역할 같은 것이다. 김연지 말고 그 누구나 대체될 수 있는 분류같은 것이다.


그럼 "나는 누구지?" 김연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지, 나는 유튜브에서 뭘 보여주고 싶은 거야?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학생으로, 취준생으로, 기자로, 딸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사는 거 말고


"김연지는 도대체 누구야?" 그동안 나를 잊고 살았다. 연지TV를 홍보하기 전에, 김연지라는 사람도 소개하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 나 자신인데도.

종이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긍정적이고 잘 웃고 에너지 넘치고, 한 때 아팠지만 잘 극복했고, 잘난 사람은 아니어도 어디가도 미움받는 성격은 절대 아니지..


내가 잘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이건 '꾸준한 업로드'를 위함이다. 일주일에 2~3개의 영상을, 아무리 못해도 최소 1개의 영상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올리는 것, 다시 말하면 평균 일주일에 2번은 촬영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아이폰X 언박싱에서 관심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매번 스마트폰을 사서 그렇게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유명한 테크 유튜브들은 실제로 그렇게 한다. 협찬 받으니까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협찬을 받지 않고, 스마트폰 전문가도 아니다. 스마트폰이 매주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것만 하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CES, 평창올림픽? 이건 정말 1년마다, 4년마다 오는 이벤트다. 내가 자주 또 잘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무엇보다, 기자라는 일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현실적으로, 스트레스 덜 받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을 따져봤다.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일까?

그제야 답을 찾았다. '취재 현장'에 가고 '기사를 쓰는 것', 그래, 펜과 노트북에 카메라를 얹자. 카메라는 늘 들고다니는 스마트폰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어차피 CBS 기자는 글도 쓰고 말도 하는데, 취재한 것을 썰로 푸는 건 어설픈 언박싱을 하는 것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지TV에서 '기자 김연지'로, 결혼 만 5년 만에 찾아온 아기 소식을 전하던 '엄마가 된다' 채널은 '엄마 김연지'로 개편했다. 유튜브에서 '욕심'을 뺐더니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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