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는 함부로 손대는 거 아니야

일상이 멈췄다. 운동을 결심하다.

by 기자김연지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할 일은 늘 산더미다. 그런데 밥 먹고 화장실 가는 등 사소한 것들이 힘겨운 사투로 변했다.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온 신경 세포가 곤두섰고, 성격은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웃을 일이 없어졌다. 말수도 사라졌다. 말을 적게 하는 것 말고는, 무기력과 분노에서 오는 화를 숨길 방법이 없었다. 젊고 생기발랄했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되거나, 왈칵!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당황한 상대방의 표정에, 내가 또 예민하게 반응했음을 눈치챈다. '아, 내가 또 왜 이러지?' 위축되고 자괴감마저 든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 인생의 오점을 찾아 발본색원에 나선다. 사고가 난 것도 아닌지라, 원인제공자도 없어 원망할 이조차 없네. 뭐 이리 거지 같은 경우가 다 있지?


뼈를 다 뽑아내 삐뚤어진 척추를 바로 잡고 관절마다 윤활유를 바른 다음, 다시 끼워 넣고 싶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을 참다못해 찾아간 병원에서 사진을 본 의사 선생님은 "혹시 사고 난 적이 있냐"라고 물었다.


"없는데요;;?"

"어쿠..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요? 걷는 것조차 힘들었을 텐데?"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술이 무서워 양쪽 다 -3.5, 0.1 시력에, 그 흔한 라식 수술조차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인생 첫 내시경을 수면 아닌 일반 내시경으로 받았다. 마취가 무서웠거든 (물론 지금은 수면 내시경으로 받는다. 식도가 어디 있는지 한번 알았으면 된 것 같다)


시술도 있단다. 수술하면 2주 뒤부터, 시술하면 보통 사흘 뒤부터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시술이나 수술법, 무엇보다 환자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다고)


실비 보험을 들었다면 시술, 수술 비용은 비싸지만 돌려받을 수는 있다고 했다. 너무 아프다면 굳이 그 고통을 힘들게 참을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시술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도수치료나 재활 운동을 같이 하면서 허리 근육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시술로 현재 참기 힘든 통증을 완화한 다음, 통증이 사라지면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운동밖에 없으니.


'그래.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 순 없지..'



이때만 해도 운동 얘기는 (솔직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운동하라는 소리는, 식사 잘 챙겨 드시고, 푹 주무시고,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조언과 뭐가 다른가..;;라 생각했다(죄송합니다. 그땐 그랬으나, 지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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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얼른 이 통증에서 벗어나고, 열심히 경력을 쌓고 싶었다. 내가 꿈꾸던 그런 여성이 되려면 이 나이도 늦었다 싶었기에.


시술 날짜를 잡았다. 연차도 냈다. 휴가철도 아닌데 뜬금 연차를 낸 게 이상했는지 부장께선 이유를 물어보셨다. 디스크 시술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다. 이 부장님이 아니었음 어떻게 됐을까. 시술을 뜯어말리셨다.


"어이쿠, 수술이든 시술이든 허리엔 함부로 손대는 거 아니야~"


'엥.. 그럼 어찌합니까?'


그제야 인터넷도 찾아보고, 다른 허리 환자 선배님들 얘기를 두루두루 들었다.

"허리엔 함부로 손대는 거 아니다" 한결같이 같은 얘기였다.


이유는 이랬다. 시술 주사에는 '마법의 약'이라 불리는 스테로이드 성분이 있는데.. 이는 정말 거짓말처럼 기적처럼 통증을 없애준다고 정평이 나있다. 문제는 시술이든 수술이든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잊게 해 준다'는 것이다.


지금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테다. 시술이나 수술을 말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증이 사라지면 원래 패턴대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것. 죽을 것처럼 아플 땐 살려만 달라고, 착하게 살겠다고 수백 번 다짐한다. 그러다 살만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뉘우침들 다 잊고 산다.


잦은 음주와 과음으로 지방간을 얻은 친구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다시는 술 안 먹겠다고 하더니, 퇴원 기념으로 술 한잔 하잔다.


난 과연 잘할 수 있을까..한창 치열하고 뜨겁게 살아야 할 때다. 말이 좋아 치열하고 뜨겁지, 아등바등 살고 있는 생계형 기자다. 가진건 몸뚱이뿐이라, 이 한 몸 열심히 일해야만 배라도 채우며 살 수 있다. 더구나 결혼도 했으니 애도 낳고 키워야 할 텐데, 앞으로 움직일 일이 더 많으면 많았지, 지금보다 적진 않을 테다.


통증이 사라졌다고 평소처럼 또 살다 보면 금방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데, 그래. 안 봐도 비디오다. 일단 시술을 받으면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 통증이 있으면, 아프니까 몸도 함부로 못 쓰고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조심스러울 텐데, 그런데 통증이 사라졌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아?


오호~!! 더 무리해서 움직이겠지. 신발장에서 장식용으로 잠자고 있는 굽 높은 힐도 꺼내 신고, 모양 안나는 백팩보단 숄더백에 노트북 등 짐 가득 쑤셔 넣고 다니겠지. 바로 앉으려는 노력보다는, 습관대로 다리 꼬고 거북목으로 노트북 두들기고, 신나게 술도 마시고.. 그러다 약발이 끝나는 순간, 또다시 주저앉겠지.


내 습관을 돌아봤을때 디스크 재발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일단 허리에 한 번 손을 대면, 시술받은 사람은 이제 시술이나 수술을, 수술한 사람은 시술로는 힘들고 계속 수술을 해야만 통증이라도 잊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잘 모르고 시술이나 수술하신 분들도 앞으로 잘 관리하면 됩니다!!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긴 하겠지만요!!)


주사든 칼이든 대고 나면 자연 치유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 어쩔 수 없는 사고로 허리가 분질러지지 않은 한, 수술보다는 "자연 치유의 힘을 믿으라"는 것이 디스크를 겪은 사람들의 얘기였다.


그제야 기억 테이프가 다시 돌면서 의사 선생님들 말씀이 다시 생각났다.


양방, 한방병원 두 곳을 다 갔는데, 두 선생님 모두 시술이든 침이든 맞으면서 통증이 완화되면, 결국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시술이나 수술을 하더라도 본인이 평소 생활 습관을 고치지 않거나 운동을 통해 주변 근육을 키우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의사는 신이 아니다. 도깨비방망이도 아니다. 통증을 잊게 해 줄 수는 있어도 이미 아파서 온 환자를, 아프기 전의 건강한 상태로 돌릴 수는 없다.


맞다. 수술에 대한 공포보다 사실, 수술 뒤 관리에 대한 불확신과 두려움은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허다한 술자리에, 걸핏하면 돌아오는 야근, 불규칙한 식사와 밤낮의 바뀜, 수면과 운동 부족.. 어딜 가나 막내는 괴롭다. 디스크 판정을 받은 그해, 나는 입사 4년 차였지만 후배라곤 달랑 둘. 막내였다. 언제든 어디서든 굴러야 하는.


병원에 전화했다. 시술 예약을 취소했다. 시술받고 사흘 만에 돌아가 봤자, 이 상태론 얼마 안 가 또 터질 게 뻔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데, 평생 병원 신세를 지며 내 남은 인생을 보낼 수는 없었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 더 즐겁고 활기차게 살기 위해 '잠시 멈춤'을 택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몸속의 자연 치유력을 믿기로 했다.


그래도 만 28년을 큰 병 없이,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아주 건강하고 생기발랄하고 씩씩하게 살아온 나였으니까. 앞만 보고 달려가던 서른 즈음, 쉼표를 찍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쉼표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강조해주는 느낌표로 자랄 줄은 미처 몰랐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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