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Oct 26. 2020

내 마음 나만 알아주면 되는 거잖아

[나를 바라보는 글쓰기②] 쓰다 보면 느껴요. 그렇게 날 갉아먹을 일인지

쓰다 보면 느낀다. 이게 그렇게 날 좀 먹을 일인가

22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엄마 교육 프로그램을 자주 보곤 하는데 한 번은 강연자가 이런 얘기를 해주더라.


"애 때문에 걱정 많으시죠? 왜 우리 애는 안 뒤집을까? 아직 못 걸을까? 다른 애는 말도 잘하는데 얘는 왜 아직 말을 못 할까? 근데 5년만 지나면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에요. 지금 보세요 우리 애가 말을 못 하나요? 걷질 않나요? 다른 애들에 비해 조금 늦었다 뿐이지 아이들은 잘 크지 않았나요? 내가 이 걱정을 왜 했지? 그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으세요?"



분노의 글쓰기 뒤 헉헉 거리며 아픈 팔을 부여잡고 내가 쓴 노트를 내려보고 있노라면, 때론 참 별거 아닌 걸로 화를 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당시엔 별거 아닌 게 아니겠지만,


'이게 내 소중한 시간을 좀 먹을만한 일인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시간 아깝다고 안 보면서
이런 귀한 시간에 아무것도 못하고
그 일을 떠올리며 화를 내고 있는 게,
가치 있는 일일까? 내게 도움되는 일일까?


마음이 어지럽거나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는 일이 내 의지대로 안될 때가 대부분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거나 일을 그르쳤을 때도,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는데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면 힘이 빠진다. 내 마음만큼이나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기에 속상한 거니까. 입시나 취업 승진 결혼.. 그런 것도 결국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나는 것이니까.


내가 지금 힘든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파악할 수 있다.

1. 내 탓
2. 네 탓(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3. 상황 탓(코로나, 태풍, 경제위기 같은 변수)


글을 쓰다 보면 내 밖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문제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과정도 결과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1. 내가 힘든 게 내 탓?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내가 금수만도 못하던 수습 시절,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건 '나'였다. 잘하려고 할 때마다 실수가 터져 나왔다. 단 하루라도 실수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실수를 안 해야지 할수록 계속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일은 어긋나기만 했다. 내가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압박하고 미워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내가 잘하는 건 뭘까? 깜냥도 안되는데 기자 되겠다고 설치는 건 아닐까? 주변에 민폐 좀 그만 끼쳐'


미친 듯이 피곤한데 속상하고 열 받아서 잠도 오지 않는 새벽.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글로 써보며 곱씹어봤다. 시각화가 필요하다. 지금은 내 실수의 시각화 과정이 되겠다.

하ㅠ 오늘 또 대박 실수. 방송사고를 낼 했다. 녹음해서 파일을 올리는데 기자실 인터넷 속도가 갑자기 거북이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에러가 났다. 이게 웬일? 기자실장님 컴퓨터에서 다시 올리려 하는데 세상에나 또 안된다. 방송 시간이 2분 남았는데 파일이 안 올라오자 연락이 왔다. 어떻게 된 거냐고.

"10분 전부터 계속 올리고 있는데, 인터넷이 자꾸 끊깁니다"

"아씌, 그럼 빨리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그 파일은 아주 신기하게도 방송시간 1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올라갔다. 그러나 내 리포트는 나가지 않았다. 내 전화를 끊자마자, 보도국 안에 있던 다른 선배가 대독 했고, 그렇게 방송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뉴스가 끝나고서 다시 편집부에서 전화가 왔고 30분 동안 깨졌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 10분 뒤면 방송 시작인데 갑자기 속보가 떴다. 이미 다 리포트 쓰고 녹음까지 올렸는데, 기사가 확 바뀌면서 고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수정하란 지시가 내려왔고 나는 그때부터 멘붕에 빠졌다.

'녹음하고 편집해서 올리는 데만 해도 10분은 걸리는데, 거의 1분 안에 기사를 써야 하는데 어쩌지??' 막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손이 막 바르르 떨렸다.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그러는데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결국 데스킹도 못 받고 내 멋대로 쓴 엉망진창인 기사가 나갔다.  

뉴스가 끝나고 어김없이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하.. "넌 왜 니 맘대로 리포트를 고치고, 그게 기사냐, 왜 이렇게 기사는 늦게 올리냐 등등"

"그게 아니라, 준비 다 해뒀는데 갑자기 속보가 떠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보니까 갑자기 뜨지 않겠나;; 말해봤자 그게 변명도 안될 게 뻔했다. '정말 기자는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그만둬야 하나. 어쩌지'


쓰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시간이 촉박할 때 터무니없는 실수를 너무 많이 했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다는 표현이 어떻게 나온다는 것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방송 시간 앞두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일단 타자를 치긴 하지만, 한 줄 쓰고 백 스페이스바 누르고 한 줄 쓰고 지우고 이걸 수없이 반복하다 방송 사고 직전까지 간 것이다. 다행히 보도국에서 방송 사고가 나도록 그대로 두진 않았다. 나도 준비 시간이 너무 없었고 인터넷이 잘 안 되는 등등 (2011년이니 3G 시대다) 그런 상황적인 억울함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방송 기자가 방송 시간을 엄수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얘기 안된다.


내 잘못인 만큼 혼나고 깨진 건 당연한 것이었다. 안에서도 방송시간 다 됐는데 파일이 안 올라오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싶다. 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안됐다. 당시 속상함과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을 토로한 다이어리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나는 왜 이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자가 안 맞는 것 같다. 그만둬야 할 것 같다. 그만둘 거면 하루라도 어릴 때 그만둬야 할 텐데"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 참 많이 울었다. 지금 보니 웃겨서 눈물이 난다.   


누구든 퇴사의 이유를 적으라면 백가지 천가 지도 넘게 쓰겠지만, 10년 차가 된 지금, 아휴 저런 일로 그만두면 진짜 언론사 다닐 기자들 없겠다 싶더라. 어떻게 보면 참 의욕 넘쳤고, 잘하려 했고, 나름 반성까지. 기특한데?!


내가 힘든 원인이 '내 탓'일 때 해결법은 가장 간단하다. 빨리 반성하고 다시는 똑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면 된다. 다음엔 안 그러도록 노력하면 된다. 어떤 점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얼른 찾고 채워가면 된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아무리 원통해봤자 주워 담을 순 없다. 내 잘못의, 내 실수의 대가가 크다면 그걸 얼른 인정하고 대가를 치르는 게 멀리 봤을 때 나에게도 이득일 테다. 거짓말로 덮으려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으니.


쓰다 보면 발견한다. 나의 부족한 점을. "난 좀 그런 편이야"라며 그저 두루뭉술하게만 알고 있던 것을 나의 글씨로 써서 내 두 눈으로 마주하면, 고칠 점이 분명해지고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만약 태생이 그런지라 '사람은 바뀌기 힘들다'라고 그 단점이 죽어라 고쳐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할 테다. 그리고


2. 인정하면 된다. 다만, 십자가 짊어지듯 모든 걸 다 이고 지고 갈 필요는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 되고,

나는 아직 수습도 못 뗀 신입이라는 걸 인정하면 되고,

내가 아직 급한 상황에 대처할 만큼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면 된다.


대학교 갓 졸업하고 온 수습이 책에서 배운 거 말고 뭘 알겠나. 이제와 느끼지만, 선배들은 수습에게 아주 대단한 걸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성실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항상 배우겠다는 자세로 임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방송 10분 남겨두고 기사를 바꾸라고 했을 때, 정말 못할 것 같으면 현재 내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것이었다. 또 녹음을 하기엔 주변이 너무 시끄럽고, 인터넷도 매끄럽지가 않다면, 바로 보고를 한다.


"10분 안에 기사를 다시 쓰고 녹음해서 올리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여러 명의 보고를 받는 팀장은 내가 있는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른다. 지시를 내렸을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 줄 안다. 그러나 이렇게 내 상황을 얘기했을 때, 더구나 방송시간이 코 앞인데, "너 미쳤어? 넌 그것도 못해?"라고 깨고 있을 팀장은 없다. (있다면 그건 진짜 그 사람 인격의 문제다)


팀장이 상황을 파악하고, 그럼 기사는 사건 개요를 잘 알고 있는 내가 쓰고, 보도국 내 입이 비어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대독과 편집을 시킬 것이다. 리포트 말고 스트레이트(아나운서가 요약해 읽는 서너 줄짜리 단신)로 대체할 수도 있었고, 6시부터 6시 25분까지 하는 뉴스에서, 원래는 그게 톱기사였다면, 6시 15분이나 20분으로 순서를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되지도 않는 걸 붙잡고 전전긍긍하는 통에 화를 키운 셈이다.

 

3. 똑같은 실수는 없다. 인정받는 프로로 성장하기. 지난 날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상황을 일단 잘 넘기고 나면, 이제부터는 나의 숙제다. 앞으로 또, 속보가 떴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 것인지 배우고 익히면 된다.


뉴스 시간은 항상 정해져 있고, 사건 사고는 언제 터질지 모른다. 6시 뉴스 시작인데 5시 59분에, 혹은 뉴스가 한창 진행 중인 6시 10분에 사건이 터질 수 있고 현장 기자는 언제든지 곧바로 생방송 연결이 될 수 있다. 도움을 구해도 조금은 면피가 되는 수습이라는 핑계를 언제까지나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젠 내 몫이다. 다른 뉴스를 찾아보고 속보성 기사의 유형을 살핀다. 특히 생방송으로 현장 기자와 연결됐을 경우에 어떤 식으로 뉴스가 나갔는지 찾아본다.


이렇게 하면 되더라. 속보가 터졌을 땐, 이미 알고 있던, 작성해둔 기존 뉴스에다 새로운 사실만 먼저 언급하면 된다. 예를 들어 "기존 기사가 어떤 사건에 대해 수사하던 검찰이 무슨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피의자는 모든 걸 부인하고 있다"는 게 기존 기사다. 그런데 10분 전에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확보했다는 속보가 떴다. 이는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보는 이렇게 쓰면 된다.


"△△△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은 새로운 정황을 확보했고, 이를 위해 ㅇㅇㅇ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는 줄곧 혐의를 부인하던 아무개 씨의 진술과 상반대는 것으로. 이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비난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아무개 씨는 계속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등등 "이후에 미리 써뒀던 기사를 붙이면 된다. "앞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고 그래서 검찰은 이에 대한 수사를 계속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런 식으로 몇 줄만 고치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속보 공식을 선배들은 아니까, 그거 그냥 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지시를 하신 듯하다.; 그러나 수습은 속보가 처음인지라..ㅠㅠ

   

깜냥도 안되는데 그걸 하겠다고 "네"라고 대답한 뒤 부여잡고 발만 동동 구른다고 해서 갑자기 없던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거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도 힘들지만, 내가 전전긍긍하는 바람에 나의 상황을 알리 없는 회사 사람들까지 모두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나 때문에 힘들다면 써보자. 나 자신과 주변 상황을 인정하자. 바꿔보자. 고치면 된다. 그럼 아무것도 아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방송 사고 직전까지 갔고, 그것 때문에 자기 비하하고 힘들게 들어온 회사를 그만둬야 할 만큼 내 잘못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또 내 실수를 쓰면서 '또다시 속보가 터지면 어떡하지?' 이 한마디 질문으로 속보의 기술(?)을 배웠고 "속보만큼 쉬운 기사도 없구나"란 걸 깨달았다.


10년 차가 되면서 힘들어하는 신입 후배를 만나면 늘 하는 말이 있다.


"회사는 너네에게 아주 큰 기대를 하지 않아. 그저 성실하고 보고 잘하고, 기자가 된 이유를 잊지 말고.. 다만 절대 거짓말하면 안 돼. 팩트에 대한 거짓말뿐만 아니라, 지금 네 상황에 대한 거짓말도 큰 거짓말이야. 몸이 아픈데 괜찮다고 말하거나, 지금 그 기사를 쓰기엔 여력이 안되는데 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야"



잠깐 따져볼까요?


10번 도전해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타율 0.3.

야구를 잘 모를 땐, 10번 중에 3번만 안타를 쳐도 굉장한 타자로 평가받는다는 것을 몰랐다. 10번에 6번은 쳐야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날아오는 공 10개 중에 3번만 방망이에 잘 맞춰도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지 않나.


사람들은 0.9할의 타자가 되려 한다. 적어도 0.7?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했던 적은 없었다. 사람이 매번 잘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 자신과 나의 내일이 달라지는 건 분명하다.


내 실패를 내 실력으로 다져주는 게 '글'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되고,

치유하게 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준다.

'나답게'


아무도 내 맘을 몰라주는 것 같아도 괜찮다.

내 맘은 내가 알아주면 된다.

나부터 알아주면 된다.

나를 알수록 나는 점점 나다워질 테다.




 




이전 07화 들키길 바랐던 비밀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