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Oct 29. 2020

나는 아나운서 준비할 때 가장 불행했다

[써봐야 하는 이유] 너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지 마

#SCENE 1 발견


"나에 대해 써봐야겠다" 생각이 들었을 때 내 나이 열아홉. 그 나이 때 가장 진지했던, 나름 인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재수를 하느냐, 그냥 붙은 대학에 가느냐.


고3  원하던 학교와 학과는 아니었지만 일단 원서 낸 곳에 붙긴 붙었다. 부모님께선 그냥 진학하길 원하셨다. 그러나 참 이상하고 신기하게도 재수하기 정말 싫은데, "이렇게 대학 가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는 가고 싶지만 공부는 하기 싫어'욕심만큼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 역시 후회됐고 아쉬움도 컸다.


재수하려면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재수학원 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없지 않나. 그것도 문제였다. 머릿속에서 가상의 시나리오를 그렸다.


"저 재수하고 싶습니다"

그럼 당연히 "왜? 대학 붙었는데?"라고 여쭈시겠지.

그럼 대답을 해야 할 텐데, 


"그 과는 제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 "니 적성은 뭔데?" 혹은 "뭘 하고 싶은데?"라고 질문하실 것이고...


, 대략 난감하군.

재수하려면 또 부모님께 손 벌려야 하는데(입시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하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대신 대학교 땐 알바도 하고, 장학금 받고 다녔답니다!!)


그렇게 고3 수능을 망치고서야 내 남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마인드 맵이라고 수업 시간에 조별로 둘러앉아 그려본 것이 생각이 났고, 그래 한 번 '내 인생 마인드 맵'을 그려보자 싶었다.


"대학 등록금이 한두 푼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 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대학 4년 공부가 졸업 뒤 직장 구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할 테고. 대학교가 진로 사관학교는 아니지만, 졸업하고 다른 공부 또 따로 할 거 아니면, 전공과 관련한 일자리를 찾아야 할 텐데.. '그럼 내가 먼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봐야겠네?'라고 해서 시작된 게 이 세 가지를 적는 것이었다.


싫어하는 건 어떻게든 피해야 할 테고,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앞에 나온 결과에 도달했다.(https://brunch.co.kr/@yeonjikim/404)


 TV 보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보지만 말고 "나도 만들어보자" 기자든 아나운서든 방송을 구성하는 사람이 돼보자! 내 목소리도 낼 수 있고, 저렇게 진행하려면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성격도 좋아야 할 텐데(?) 나는 성격이 좋으니 잘하지 않을까??!! >_< 방송은 다른 것보다 영향력도 크고,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이라!! 머릿속에서 마이크를 잡은 내 모습을 상상했다. 와우. 그래, 이거야!



#SCENE 2 선택


끝내 언론정보학과에 들어갔고, 입학하자마자 많은 동아리를 뒤로한 채 대학 영자신문사를 찾아갔다. 영어를 잘해서.. 가 아니라 영어도 배우고, 기자일도 미리 경험해보고 싶어서다. 의욕은 참 시도 때도 없이 넘쳤던 것 같다.


그런데.. 흠.. 신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취재, 인터뷰, 기사 작성 등 기자의 전반적인 업무를 미리 맛볼 수 있는 건 분명히 있는데, 허, 이것 참 야단 났네. 대학 신문 만들다가 학과 공부 놓칠 판이었다; 동아리라고 하기엔 학교 기관에 가까웠다. 수업은 물론 학과 활동은 전혀 할 수 없었고 7시쯤부터 나와 청소하고 신문사 갔다가 수업만 듣고 신문사행.. 밤늦게야 귀가할 수 있었다. 월급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었다. 취재하다 보면 수업도 지각하기 일쑤였고, 저녁 늦게까지 술 마시고, 마감이 아니어도 밤새고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있을 수밖에.


10년 차 기자가 된 지금에야 얘기하지만, 참.. 기자의 좋은 것보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언론사 악습은 어떻게 대학교에서도 어쩜 그리 잘 아는지, 또 잘하는지?? ^^;;; 기자가 된 선배들이 악습을 잘 전한 건지;;; ㅎ돌이켜 보니 딱 포스트 수습 시절이다. 후배 군기 잡고 밤새 술 마시고, X라면 까야지 이런;? ㅎㅎ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으니 요즘은 달라졌겠지.)


당시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고 또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6개월 버티다 그만뒀다. 그리고 기자 쪽은 쳐다도 보지 말아야지;; 혀를 내둘렀다. '아휴, 이렇게라도 겪어보길 잘했다' 싶었다. 대학교 신문사가 이런데, 진짜 언론사는 얼마나 심할까. 으어어어어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기자는 아닌 것 같아. 이상해~ 이상한 집단이야;;;그럼 이건 아니고 "아나운서를 준비해야겠다"고 야심 차게 방향을 틀었다.




#SCENE 3 또 다른 선택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스피치 아카데미를 다녔다. 4학년 때부터는 채용 공고가 나는 곳마다 시험 보러 다녔다.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상처가 나고 나란 존재가 먼지만도 못하다고 생각한 게 그때부터다.


스피치 아카데미는 학교처럼 등록 시기에 따라, 또 준비 기간에(입 문반, 완성반, 속성반 등) 따라 기수/반이 정해진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한 반에 모인다. 스터디도 하고 서로 봐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3개월을 보냈다. 우리 일곱 명끼리 "너는 어느 방송국, 너는 어느 프로그램 진행, 너는 9시 뉴스 메인 앵커" 세상 해맑게 서로의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행복한 3개월을 보냈다.


문제는 이후다. 그렇게 칠자매가 작은 골방을 나오자마자 내 생애 최고 우울한 나날들이 펼쳐졌다. 아카데미 자체 오디션일 뿐인데도, 세상에나.. 예쁘고 잘나고 똑똑한 애들이 하필이면 얼마나 많은 건지. 왜 이런 애들은 내가 태어났을 때 같이 태어나가지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교와 학원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세상과 마주한 순진한 개구리의 충격은 상당했다. 대한민국의 한 방송국 아나운서 공채가 떴다. 아나운서 시험은 1차 전형은 카메라 테스트다. 아직 졸업도 전, 재학생 때 치른 첫 시험이었다. 처음부터 붙을 거란 생각은 당연히 안 했다. 그저 긴장하지 말고 그간 준비한 거 잘 발휘하고 와야지!! 난생처음 정장이란 것도 사보고 어깨 뽕 잔뜩 넣고 반짝반짝 새 구두 신고 들어가는데,


오메 기죽어~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 어떻게 해..'  숨만 푹푹 나왔다.


사실, 시험장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부터 주눅 들긴 했다. 아나운서 지망생은 척 보면 딱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직 화장 안 한 민낯이었는데도 메이크업받고 온 나보다 예뻤다.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까만 지하철 문에 내가 어슴프레 비쳤다. 우물 안 개구리도 아니고, 뭐 동네 우물까지나 갔으면 다행이지, 딱 그 지하철 문 크기에 갇혀서 바깥세상을 그림자로 배운 올챙이 같았다.


당시 한 명 뽑는데 지원자만 천 명이 훨씬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금융위기가 온 때라 언론사도 채용문을 꽁꽁 닫았을 때다. 한 명이라도 뜨면 전국에서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구멍을 뚫으려 수많은 시간 준비하고 훈련하고 화려한 꽃단장을 하고 온 것이다.


어째 시험장 빼곡히 들어온 지원자들이.. 한결같이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옆에 이쁜 애 옆에 너무 예쁜 애인지...

배우 지망생, 아이돌 지망생이라고 해도 고개 끄덕일 만한 외모였다. 얼굴, 키, 몸매는 일단 기본이다.


그런데 입을 여니 목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차분하면서도 당차고 알이 꽉 찬(?)듯한 목소리다. 조곤조곤한데 전달력도 있고, 돌발 질문에도 대본 있는 것처럼 완벽한 문장이 줄줄줄 나온다. 영어에 중국어까지 유창하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네. 얘는 뭐야, 성악도 배운 거야? 쟤는 저렇게 예쁜 얼굴로 능청맞게 개그 연기까지 잘하네?


하...


시험장을 나서는데 뭔가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준비한 것을 보여주러 간 게 아니라 나의 부족함만 확인하고 온 것 같았다.




#SCENE 4 좌절


여의도에서 집에 까지 오는데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또 집에 와서도 계속 절망에 빠져 있었다. 씻으러 들어갔다 화장실 거울 속 나를 보는데, 아 이렇게 못 생기고 뚱뚱한 내가 당치도 않게 아나운서 시험을 보러 간 건가? 화장도 저렴한 데서 해서 그런가,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고, 머리는 왜 이렇게 촌스럽고, 옷도 너무 평범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씻고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이렇게 한숨만 쉰다고 뭐가 나아지겠어. 생각해보자. 내가 아까 본 걔들만큼 잘하려면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 써보기 시작했다.


1. 일단 살을 빼야 한다. 그것도 많이. 최소 5Kg. 말라야 한다. 안 먹어야 한다.

2. 키? 어쩔 수 없다. 날 이렇게 작게 낳아준 부모님이 원망스럽네.

3. 얼굴? 나 눈코 입은 그래도 괜찮은데 머리가 좀 커.. 근데 머리 축소 수술은 없잖아. ㅠㅠ 걔네는 다 주먹만 한 얼굴에 어떻게 눈코입이 다 들어가지?

4. 외모는 일단 패스. 그럼 실력면으로 어학을?? 영어? 중국어? 내가 지금부터 미친 듯이 영어랑 중국어 파면 걔만큼 할까? 근데 뭐 중국에서 미국에서 아예 학교를 나온 애랑 내가 상대가 되겠어?

5. 노래, 연기? 노래와 연기를 잘했으면 아나운서 안 하고 연예인을 했겠지.

6. 나는 흥분하면 목소리도 올라가고 말도 빨라지는데, 돌발 질문에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어쩜 저렇게 한결같이 하지? 성격이 차분한 것 같은데.. 나는 돌발 질문받으면 횡설수설하거나.. 얼어버리는데ㅠㅠ  


현재로선 그 수많은 날고 기는 경쟁자들과 이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노력한다 해도, 벌써 4학년인데? 언제 준비해서 언제 시험 봐? 언제 영어 공부하고 중국어 공부해?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단점만 보이고

스터디에 가도 내가 못하는 것만 보였다.

걷기만 하는데 내 걸음걸이도 미워보이고 

그림자마저 못생겨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나.. 정말 헛살았다 싶었다. 25살이란 그 예쁜 나이에 정말 자신감과 자존심과 자존감 모두 바닥을 쳤다. 부모님만 원망했다. 왜 나는 어릴 때부터 흔하디 흔한 영어 학원 한 번 안 보내주고, 이렇게 키웠는지, 남들 다가는 어학연수 한번 안보 내줬는지, (학교에서 가는 8주짜리 단기 다녀오긴 했어요;;ㅎㅎ 호강에 겨웠지) 왜 나를 이렇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애로 키웠는지!! 키는 왜 이렇게 작게 낳았고,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로 말이야. 어릴 때 왜 날 이렇게 잘 먹인 거야. 많이 먹으면 말렸어야지!!!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그래서 어디서부터 다시 바로잡아야 하나.. 곱씹었더니 어라?


엄마 뱃속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는데?! "엄마 저 다시 들어갈테니 태교부터 똑바로 하시라고요! 모차르트 많이 듣고 영어책도 좀 읽으시고" 다시 엄마 배로 들어가면서 큰소리 한번 고 갈 태세다.


그러나 엄마가 태교를 잘할 것인지, 내가 다시 세상에 나와도 세상에 그 잘난 애들처럼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 보내주고 중국에 유학도 보내고 그럴까? 다시 태어나면 내 키가 10cm는 더 클까?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었다. 다시 태어나기는 불가능할뿐더러. 아유 참 찌질했다. 누가 누굴탓해. 구질구질하고 구차하다.


나 그렇게 못난 사람 아닌데.. 나름 인기도 있었고, 어딜 가나 그래도 환영받는 편인데, 내가 이렇게 초라하고 볼품없었나.  


그래서 그때 다시 종이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나의 장점만 찾아 적었다. 내가 봤을 때 괜찮은 점, 친구들이 또 나의 이런 점이 좋다고 한 것들, 싹싹 긁어모았다.


그래. 그럼 그렇지. 나는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노래와 연기는 안돼도, 영어와 중국어는 떨어져도 사람에 대한 오지랖만큼은 지지 않는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애정만큼은 내가 더 많고 따뜻할 것이다.


말은 잘 못해도 글도 좀 쓴다. 

얼굴은 커도 웃는 얼굴은 봐줄 만하다.

키는 작지만, 그래서 큰 애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안다.

흥분하면 목소리 톤이 올라갈 만큼, 감정이입도 잘하고 그래서 공감능력도 뛰어나다.

상대를 더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래서 더 많은 얘기를 끌어낼 수 있다. 내게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았고, 누구보다 잘 들어줬고, '비밀'이라고 지켜달라고 얘기한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다. 그것만은 자신한다.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나누려 하고, 베푸는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기부하는 곳을 한 군데씩 늘릴 만큼. 열심히 살려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독립적이다. 걔네는 뭐 다 잘난 애들이 다 커서 아나운서 시험 보는데 엄마까지 데리고 왔더라. 수능도 아니고, 흥!!!(부러우면 지는 거다) 나는 혼자 옷도 사고, 학원도 알아보고, 다 내가 했거든.!!


그래, 가 이렇게 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꼭 아나운서가 돼야 해?나는 나대로 이렇게 예쁜데? 왜 굳이 내 두발로 그 예쁘고 잘난 애들 집단에 들어가서, 매번 비교하고 비하하면서 버티지도 못하고 나를 이렇게 괴롭힐 거면서, 내가 왜 그래야 해?


그리고 글은 굳이 얼굴을 보이지 않아도 되잖아.! 

아나운서만이 내 길인가? 다른 길도 있어. 기자해도 앵커는 할 수 있어. 기자는 더 자기 목소리를 내지! 기자 지망생들도 잘난 애들 천지겠지만, 나도 글로는 그렇게 안꿀릴걸. 그리고 성격은 내가 훨씬 좋을 걸. 취재도 내가 더 잘할 걸!! 다른 사람들 얘기 잘 들으니까!!


#SCENE5 다시 발견, 용기 그리고 결단


대학 신문사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지만, 여긴 대학교이고, 학과 공부도 병행해야 했던 곳이었고,

이게 직업이 되면 다르지 않을까. (고생한 만큼 월급 주잖아;;;!!) 한번 더 도전해보자. 기자라는 직업에. 이게 나와 더 어울릴 것 같아.


어쩌면 이 세상에 '나의 시선이, 나의 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쓸데없이 외모를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아도 되고, 깎아내리지 않아도 됐다. 비하해봤자 내가 나아질 것도 아닌데 그런 에너지와 시간 소모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 글을 더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신문도, 책도 많이 읽었다. 필사도 하면서 나의 원석을 갈고닦았다.

나는 나 자신을 찾았고, 나 스스로 내 가치를 높였다. 그렇게 나는 기자가 됐다. 지금도 흔들릴 때마다 글을 쓰며, 진짜 나로 살고 있다.   


2017년 올해의 여기자상. 기획취재 부문에서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수상했답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메인사진 출처입니다]

https://pin.it/oK3rUdo


이전 13화 언니, 저는 NPC처럼 살고 싶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