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Oct 25. 2020

이렇게 사표낼 거, 버티지나 말걸

"사표를 내보니 내가 보였다" 회사는 회사, 나는 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16 6 어느  '사직서'라고 적힌  봉투를 부장께 내밀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전 일찍 부장께 전화를 드린 뒤 회사로 향했다.


보도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가득 품었던 독기는 어디 가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 이게 아닌데.


 누구보다 행복하면서도 한쪽 입꼬리  올리며 ~ 비웃는 듯한 얼굴로 호기롭게 사표를 던져주겠다던 상상은 역시, 드라마니까 가능했나보다.


실제 사표를 내보니, 그냥 마냥  그냥 억울했다. 그만두는  억울한  아니라 그동안 참고 견디고 버틴  억울했다. 아파도 싫어도 아무   하고 실컷   병원비에 쏟아부으며 버틴 결과가 겨우 사표라니?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정말 몰랐다. 정말 허무했다. 이럴  알았으면 그렇게 아등바등 아득바득 버티지나 말걸.




scene#1 디스크 환자, 드라마 쓰다


2016 6 26, 대박 사건이 터졌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번쯤은 들어봤을, NABBA라눈 피트니스 대회에서 비키니 모델 2, 스포츠 모델 top6 입상했다. 당연  출전이었다.

(Top6도 난 4위였다고 생각한다. 믿건 말건 뭐 내 맘이니까)

대회를 나간  운동에 대한 동기부여 차원이었다. 2014 5 목과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허리는 무려 터져서 흘러내린 상태였다. 그것이 신경을 계속 누르고 있어서 다리는 저리고 걷기도 힘들고 앉아있긴  힘들고 숨만 쉬어도 신경이 곤두서는 그런 상태다.


의사는 너무 통증이 심하다면 수술을 하라고 권했지만,  흔한 라식 수술도 무서워 일회용 렌즈로 연명하는터라 수술보단 휴직을 택했다. 시간을 갖고 재활 치료와 운동을 하기로 했다.


자연 치유의 힘을 믿었고, 젊었으니까. 운동으로 약해진 허리를 근육으로 받쳐보리라 마음먹었다.


난생처음 운동을 시작할  목표는 '회복  복직'이었다. 그렇게 6개월간 재활 치료  복직을 했다.


웬걸. 3개월 만에 재발했다. 다시 터져버린 것이다.

역시나 "바쁘다"는 핑계 앞에 장사 없었다.

 만해진 게지. "인간은 간사하다" ,  스스로를 통해 많이 느꼈다.


매일 1시간씩은 헬스장에 가다가 이틀에  , 사흘에  , 일주일에   가더니. 그렇게 발길이  끊겼고 허리는  터져버렸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아!!!!!"


그러나 수술은 여전히 무섭기만 했다. 다시 터져버린 통증에 괴로워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터덜터덜 헬스장을 다니던 어느 , 당시  몸을 회복시켜줬던 트레이너가  가지 제안을 했다.


"피트니스 대회 한 번 나가보는 게 어때요?"


운동이라는 , 죽기 전엔 하지 않는 거라 동기가 필요하다. 아팠던 사람도 일단 견딜만해지면 다른 중요한 것들(?!) 우선순위이던 운동이 후순위로 밀린다.-

디스크' 노화인지라 평생 숙제로 꾸준히 운동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렇게 살만해졌다고 "운동  하면 재발은 시간문제". 운동의 중요성은 의사 선생님도  당부,  당부했던 것이다.


그렇게 트레이너는 "피트니스 대회나 바디 프로필 사진이라도 남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운동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다.


바디 프로필은 예약하더라도 계약금 물면 그만이다. 대회는  달랐다. 출전 등록을 해놓고  나가그건  도망치는  같았다. 대회날 무대에 서지 않더라도 참가번호는 분명 남아 있을 텐데,  번호를 불렀을  아무도 등장하지 않으면 도망간 것이  나지 않겠나.


대회를 나가는 게 동기 부여 차원에서 좋을 것 같았다.

수개월간 고민 끝에 대회를 나가기로 결심했다. 6개월 꾸준히 운동+6개월 운동&식단&포징 연습 끝에 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남편에게만 알렸다. 부모님도 몰랐다.


일말의 기대도 없었 top2, top6 올랐다. 연말 시상식에서 "정말 제가 받을 줄은 몰랐어요" 하는 연예인 수상 소감을 내가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이때 기분은 기쁘고 행복하다는

이런 단순한 표현으론 설명하기 힘들다. 


하고 싶은 것도 꿈도 많던 그 나이에,

결혼은 했지만 1년이 넘도록 아이 소식도 없던 그때,

생뚱맞게 디스크가 터져버렸다.


내 삶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남들은 다 앞만 보고 나아가는데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위축됐고, 억울했고, 원망스러웠고,

세상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내 자신이 그저 한심했다.


그런데 세상에 나바에서 내가 입상이라니

top2라니, 그것도 두 종목에서!

한 종목도 입상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은데..ㅜㅠ


자신감이 생겼다. 뭐든   있을 것만 같았다.


치킨과 라면, 떡볶이, 소주 앞에서 물과 닭가슴살만 먹던 시절, 대회 1주일 전부터 물 조절까지 들어가면

내가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감사하고 진심 겸손해진다. 내가 얼마나 가진 게 많은 사람인지 알게 될 테다.


그런 고진감래인지라 열매는 정말 달콤촉촉소프트했다. 디스크 따위, 그래 네가 감히 나를 불행하게 만들겠다고?절대 그렇게 못하지!


아무도 내 행복을 방해할 수 없어!!!!!



scene#2 박수 대신 비난이 쏟아지다


입상의 기쁨은 불과 이틀도 가지 못했다.


대회 당시 무대 위 모습이 찍힌 사진과

내 입상 사실이 언론사 기자들과 출입처에

알려지면서 난리가 났다.


소위 '지라시'의 주인공이 됐다.

그 지라시는 돌고 돌았고

나는 정말 돌아버릴뻔 했다.


소식을 전해받은(?) 타사 동기나 선후배들은

"그간 고생했다, 힘들었지, 축하한다, 이젠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 이렇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줬지만


회사에서는 전화와 메시지가 빗발쳤다.

비난의 화살은 쉴 새 없이 날아와 온 몸에 꽂혔다.


"허리 아파서 휴직까지 한 애가 몸짱 대회나 나가고, 참 나..진짜 아팠던 거 맞아?"

"아프다고 배려해줬더니, 남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몸이나 만들고.."


...

..

휴대전화 너머 이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 이 악물고 참고 버텼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내가 디스크 판정받고,

수술 대신 재활을 택하면서 휴직할 때


"넌 니 몸 관리 하나 못하고 뭐했냐"

"늘 여자들이 문제다, 이래서 여기자들을 뽑으면 안 된다니까"라며(실제 내가 휴직한 그 이듬해 여기자를 뽑지도 않았다ㅜ.ㅜ) 아픈 사람에게 돌 던진 사람들이


이제 와선

"남들은 고생하는데 자기 혼자 몸 관리한다"며 가시 박힌 말들을 내리꽂았다.(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진심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께 지금도 감사하다. 상처 주신 분들은 지금도 다 기억하고 있다.. 후후...>_<* )

그들이 말하는 '편한 곳'이라는 건

주말도 없이 바쁜 정치부, 사회부가 아닌

'산업부에 있다'는 걸 비꼬는 것이다.


단언컨대, 난 단 한 번도 일하면서 편했던 적은 없다.

복직하자마자 한 주 내내 메인 뉴스, 기획성 리포트를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대회 석 달 전 기자상까지 받았고,

대회 석 달 뒤엔 과학기자상,

그리고 이듬해 초 올해의 여기자상까지 받았다.


아픈 '여'기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보냈다지만,

인력도 모자란 데다, 출입처에 여러 이슈가 터지면서

복직 석 달만에 재발까지 할 정도로 일이 자꾸만 몰렸다.


정당과 법조처럼 티는 안 나지만 주말에 일한 날이 정말 많았다. 어떤 달에는 주말 특근 수당이 기본 수당보다 더 나오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편한 데서 몸이나 만들었다고?"


으어어어!!!!!!!!


남들한테 모두 이해를 받고 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 회사에서, 내가 왜 아팠는지, 어떻게 휴직하게 됐는지, 모두 지켜본 '회사 동료'라는 이들로부터 이런 비난을 들으면서 일할 것까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계속 아파야만 하고..

불행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로만 가득 찬 것 같았다.




scene#3 이럴 거면 버티지나 말걸..


"누군가와의 만남은 단순한 인연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이 함께 오는 것"

이라는 말처럼


세상의 많은,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내 글로, 나의 목소리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어려움과 애환을 전하고

그래서 조금이나마

이들의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따뜻한 얘기를 듣는다면, 이를 또 널리 알리면서

"정말 더러운 세상"이라며 분노하는 이들에게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팠다.


삭막한 나날들에 굳게 닫힌 입술에

옅은 미소라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정말 간절한 사람에겐 기회가 오고

준비된 사람은  그 기회를 반드시 얻는다"말을

꼭 붙들고 죽어라 노력했다.


자신감으로 무장해 덤벼도 될까 말까인 판국에

"자신 없다"느니 "안될 거"라느니

그런 부정적인 말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고군분투 끝에, 5명뿐인 합격자 명단에 적힌 내 이름을 보자 반백수 서러움 견뎌가며, 늘 수면부족에도 시달리면서도 애썼던 그 시간들이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웃으면서 씩씩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상이 너무나 컸던 걸까.

기자로서의 삶은 정말 쉽지 않았다.

일단 술자리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여자'라고, "봐달라"라고 말한 적 없었다.


집에 와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만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잠들지언정;;(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인도에서 잠든 날 깨워 집까지 데려다준 적도 있었다ㅠㅠ)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술자리에서 추태를 부린 적도 없다. 이런 술자리가, 심할 때는 주 5일 내내 반복됐고 결국 몸만 상했다.


사건사고는 언제나, 예고 없이, 여기저기서, 시간대 가리지 않고 터졌다. 기자는 당연히 현장으로 신속하게 달려가야 했다. 혹시라도 잠든 사이 사건이 터졌는데 너무 깊이 잠들어, 팀장 전화를 못 받거나, 혹은 카톡을 못 볼까 봐 깊이 잠들지도 못했다. 그런 날이 되풀이되면서 불면증이 지속됐다.


잦은 숙직은 상처 난 데 소금 뿌리는 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서야 했던 숙직. 그리고 숙직 다음 날 아침에서야 퇴근하는데 공식적으론 당연히 '오프'이나 정말 오프이냐의 여부는 복불복이었다. 사건사고가 내가 쉬는 날을 맞춰서 터져주는 건 아니기에 퇴근해서도 눈 한 번 붙이지도 못하고 계속 일하는 날도 허다했다. 저녁 술자리가 있으면 또 참석해야 했다.

(물론 52시간이 정착된 지금은 아니지만, 라떼는..그랬다오..ㅠㅠ)


이런 나날을 4년간 반복하니 생리가 끊겼고,

질염과 위염과 장염은 삼총사염으로 붙어다녔다.


늘 부족한 수면 탓에 안 그래도 없던 정신은 자주 부재중이었다. 주중엔 일하고 술 마시고 토요일 당직을 피하면 산부인과, 내과 진료가 필수 코스였다. 술 먹고 약 먹고 술 먹고 주사 맞고..


그래도 나를 붙잡아 준 건 기자가 내 '꿈'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고의 수단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정성껏 취재하고 쓴 기사가 나간 뒤

"기자님 고맙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 얘기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그 한 마디는..


내가 뭐라고, 아직 학생티 가득하고 어설픈 것 투성인데도, 내 손을 꼭 잡으며 "진실을 밝혀달라"는 그 눈빛은


"다 때려치우겠다"며 투정하는 나를 항상 반성케 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지금은 정말 힘들기만 하고, 아직 많이 너무나도 턱없이 부족하고 버거울 때도 많지만, 어쩌면 어딘가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지금은 그만두지 말자
조금만 버티면 나아지겠지
언젠간 지나가리라.
조금만 더 버티자. 여기서 도망치지 말자.


사표는 품었지만, 그만둔단 말은 수도 없이 내뱉었지만,

목 허리 디스크 판정까지 받았지만, 6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품 안에서 '사표'를 꺼내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그렇게 버티고 비티던 내가, 결국 사표를 던졌다. 정말 이렇게 사표를 낼 줄은 몰랐다.

이럴 거면 버티지나 말걸...




scene#4 사표를 내보니 내가 보이네


"세상 살다 보면 더한 일도 겪는다"


사표가 반려됐다.


"언젠간 나한테 고마워할 거야.

오늘 나는 너를 못 본 걸로 하겠다"


"아니요 저는 더 이상 일 못하겠습니다"


"어서 가서 일해라,

아니 그냥 출입처 나가서 잠이나 자라"


나는 눈물 콧물 다 쏟고 있는데

부장께서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이 내 자존심에 쉽게 사표를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부장께서는 나를 냅다 문 밖으로 밀어버렸다.


"덩그러니~♪♩"


그렇게 나의 입사 6년 만의 출사표(?出辭表)는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4년 뒤

그때 그만뒀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다.(;;;;)

이렇게 내가 회사다니면서도 기자일하면서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부장 말씀이 전혀 틀리지 않다.

(당시 내 사표를 보기좋게 퇴짜 놔주신 부장께

정말 감사하다고 다시 인사 올린다)

 

그래, 그 이후로도

얼마나 예기치 않은 일들이 많았던가.

앞으로도 내 숨이 붙어있는 동안은 또 있겠지.


사실 그때도 기자이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도 살고 싶었던 것 뿐인데..


솔직히 기자라는 직업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왔는데

쉽사리 접는다고 생각하니 나로서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호기롭게 사표를 냈지만 그마저도 퇴짜를 맞고;;

마지못해 죽을 상을 하고 다닌 게 너무나 티가 났을까?

날 어여삐 여긴 한 선배가 밥 사주겠다고 불렀고

그때도 여전히 억울하고 분했던 철부지는


"선배, 정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요?"

퇴사하기엔 도망치는 것 같고,

모른 척 다니자니 열 받고ㅠㅠ


"선배~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즐겁게 살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선배는 선배다.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는 지식으론 상대가 안된다.


"참고 다니라는 말은 절대 안 할 거야.
근데, 뭐든지 그만둘 때는
감정에 휩싸여서 마음이 요동칠 때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이 평온하고
안정적일 때 하는 거야"


그래, 맞다.

(자신과 상황과 타협해) 도망가는 건 아닐지언정

감정이 요동친 건 맞으니까.


내가 아플 땐 몸 관리도 못한다고 비아냥대던 사람들이

이 악물고 관리하니까 이제 몸 편하다고 비아냥거리는 것에 정말 화가 난 건 맞았으니까.


선배의 얘길 듣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평안해졌다.

회사라는 거,


그래,

그만두려면 오늘이고 내일이고 내 의지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신중해질 필요는 있다.

정말 내 마음이 안정됐을 때

그때 그만둬도 늦지 않다.


그리고

회사는 회사다.


핏줄이 아닌 이해관계로 엮인 사람들이다.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말해도 알지 못한다.


말은, 없는 말도 낳고

다들 힘든지라, 해석도 다 자기 입장에서 내놓더라.


시간이 지나니 고개도 끄덕여졌다.

왜 그렇게 나를 비난했는지 어느 정돈 납득이 간다.

회사 입장에선 주말에도 자기 취미보단

열심히 일 하는 후배가 이쁠 수밖에.


왜 '미움받을 용기'라는 말이 나오게 됐는지 알겠더라.

괜히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닐 테다.


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으니까 힘든 거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으면

주말에도 계속 일하고, 기자로 살면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기자 김연지로도 살고 싶지만

그저 운동을 좋아하는 건강한 김연지로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냥

욕하면 욕먹기로 했다.

대신 엄청 행복해지기로 했다.


일할 땐 열심히 일하고

쉴 땐 운동도 하고 제대로 쉬면서

또 한 주간 버텨나갈 에너지를 채우고

충만해진 자신감으로 씩씩하게, 또 즐겁게

한 번뿐인 내 삶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래, 깎아내리려면 얼마든지 깎아내리세요.
그럴수록 난 더 날카로워질 테니까요*^-^*
난 당신보다 훨씬 행복하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일도, 운동도, 보란 듯이 다 해내 건강해지고

난 그 누구보다 행복해질 것이다.

일도 잘 할 것이다. 일 또한 내 보람의 원천인 데다

내 이름 걸고 하는 것인데 허투루 할 수 있겠는가.


운동은 나를 위해서,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인데..

운동이 내게 준 선물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사람들이 욕한다고 눈치 볼 일은 결코 아니다.


큰 깨달음 하나 더.

사표를 한번 내고 보니 진짜 '내'가 보였다.


준비만 돼 있다면 얼마든지

나는 언제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어쩌면 회사라는 안정된 울타리 안에 있다 보니

이 울타리를 벗어났다간 길을 잃을 테고

얼마 안가 늑대에 잡혀 먹을 것이라 겁먹었던 것 같다.

그러니 회사 안에서의 평가에 휘둘리고 일희일비했던게지;


퇴사는 당연히 별 거지만,

별 게 아닐 수도 있게 됐다.


그래서, 언제든, 누구나, 어떻게 올지 알 수 없는

퇴사를 조금씩 준비하게 됐다.

진짜 나 자신으로 살기로 한 것이다.


성장통이 심했던 만큼

한 뼘 더 자라고, 단단해졌다.

아무도 내 행복을 방해할 수는 없다.

내 행복은 내가 결정한다.

이전 02화 누구나 언젠가 퇴사를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