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모든 것>이란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좀 오래전 영화인데, 제가 배우 이선균 님을 정말 좋아하는지라 그가 나온 영화는 거의 다 봤어요^^;;)
이선균이 아내로 나오는 임수정 님과 이혼을 하고 싶지만 차마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카사노바 옆집 남자 류승룡 님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류 배우님께서 얘기한다.
"한 번 적어 보내 줘. 속성으로 하고 싶다며. 네가 알고 있는 네 아내의 모든 것. 잠은 잘 자는지, 수면제는 몇 알. 몇 시에 깨는지, 주로 뭘 먹는지, 똥 색깔은 먼지, 얼마나 자주 닦는지, 속옷 색, 그게 망사인지 레이스인지, 콤플렉스, 정치 성향은 어떤지, 좋아하는 스포츠, 가수, 배우, 이벤트, 취미, 특기 등등등 그게 뭔지 다 적으란 말이야!"
속옷 색과 응가 색까진 굳이 써볼 필요는 없겠다. (써보겠다면 또 말리진 않겠다)
준비한 세장의 종이, 첫 번째 장에 지금부터 써보는 것이다. 당신에 대한 모든 것.! 특히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당신의 취미나 특기는 무엇인지!!! What do you do in your free time?!!
"취미가 뭐예요? 뭘 할 때 제일 행복해요?"
이 질문에 3초 만에 대답할 수 있다면, 나가기 버튼을 눌러도 좋다.
당신은 꽤 괜찮은 사람이고,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삶이 무료하단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100이면 100. 이렇게 답했다.
"내 취미가 뭐였더라.. 예전엔000 하는 걸 좋아하긴 했는데.."
특기를 물어본 게 아닌데, 그저 당신이 뭘 할 때 가장 행복하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한다.
"자는 걸 좋아하죠"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잠을 자야 꿈도 꾸고, 건강도 유지된다. 이 분은 평소에 충분히 못 잘 만큼 바쁘기에,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시끄러운 콘서트장에서도 꿀잠을 자요"
이건 기네스북에도 도전할 정도의 특기가 되겠지만, 취미가 자는 것이라면, 안타깝게도, 깨어있을 땐 좋아하는 게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고민이 많았는데도 잊게 만드는 어떤 것. 분명히 있을 거예요.
(앞서 종이 세장에 뭘 써야 할지 모른다는 분들을 위해 예시를 드릴게요)
내가 좋아하는 것.
1. 여행
2. 춤
3. 운동- 웨이트
4. 요가
5. 일기 쓰기(글쓰기)
6. 책 읽기
7. 방송하기 (유튜브 촬영 편집)
8. 새로운 것 배우기
9. 새로운 것 도전하기
10. 노래 부르기
11. 걷기
12. 계획하기- 계획대로 실천하기
13. 좋은 공기 마시기
14. 꿈꾸기
15. 드라마 영화보기 - 로코나 스릴러 등
16. 꽃다발보단 손편지
17. 주상복합보단 빨간 벽돌집
18. 운동화(특히 나이키 운동화)
19. 가벼운 백팩
20. 원피스. (위-아래 코디 신경 쓸 필요 없이 한벌 쑥 입으면 되니까)
21. 새벽 기상
22. 미리 할 일 해두기
23. 약속 잘 지키는 사람
24. 빈말하지 않는 사람
25. 남이 차려주는 밥
26. 어려운 사람 돕기
...
생각나는 대로 거르지 않고 쓴다
번호를 매기는 건 우선순위대로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나열일 뿐이다.
잘하는 것(자신 있는 것)
1. 인사
2. 리액션
3. 적응력
4. 친화력. 사교성
5. 운동 (특히 지구력)
6. 춤
7. 글
8. 유연함 (심신 모두)
9. 긍정적 사고
10. 예쁘게 말하기
11. 애교
12. 오지랖
13. (시간) 약속 지키기
14. 결심한 것 실행하기
15. 끈기
16. 선의의 거짓말(?)
17. 카메라 앞에서 말하기(?)- 기자라도 못하는 사람 은근히 많아요
18. 어려운 발음 하기(경찰청 철창살 같은..)
19. 상대방 얘기 들어주기
20. 기부
싫어하는 것
1. 운전
2. 요리(치우는 게 너무 귀찮다)
3. 청소(그래도 할 때는 잘한다)
4. 약속 안 지키는 것
5. 변수. 계획대로 안 되는 것, 예기치 않은 것
6. 진짜 거짓말
7. 험담
8. 욕설 등 예쁘지 않은 말
9. 다툼, 갈등
10. 침묵하지 말아야 할 때 침묵하는 것
11. 폭력, 약육강식
12. 부조리
13. 자기만 아는 사람들
14. 사치, 잘난 체..
15.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는 것
16. 시간 낭비
17. 아무것도 안 하기
18. 멍 때리기
19. 수학, 과학
20. 어려운 부탁 거절해야 하는 상황
21. 공복
22. 공복 유산소
23. 맛집 줄 서서 기다리기(아무리 세상 맛집이어도 1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다른 집 간다. 시장엔 장사 없거든. 식사 때 놓치면 뭐든 맛있어요)
...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번호는 우선순위대로 쓰는 게 아니라 헷갈리지 않기 위함이니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나씩 적다 보면 쓰면서 깨닫는다. 내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사실, 굳이 적지 않아도 이런 내 성향에 대한 큰 카테고리야 대충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쓰다 보면 나에 대해 느끼는 게 달라진다. 나는 곧 죽어도 집순이 체질은 아니다. 하루 종일 놀고 말하라고 하면 할 수 있어도, 온종일 집에 있으라 하면 좀이 쑤셔서 견딘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나. 내가 어떤 걸 할 때 기분이 좋은지 얼굴이 웃고 있는지, 몸이 들썩이는지 등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나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경우가 인상이 찌푸려지는지, 손사래 치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뱉는 나와 그 상황이 보인다.
그러다 보면, 아 "매일 이런 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절대로 억대 연봉을 주더라도 사무직은 사양할 테다. 기자란 직업이 그나마 사무실에만 있지 않아서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10년 동안 어찌어찌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사는 인생"
다이아 수저가 아닌 이상, 먹고살려면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이왕 하는 일,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출근하는 게 아니라 매일 좋을 순 없어도 웃으며 일할 수는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나를 위한 일이 아닐까.
이렇게 적다 보면 나란 사람에 대해서도, 무얼 하면서 살고 싶은지도 알게 되지만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도 그려진다. 나는 만약 돈이 생기면 서울 강남 한복판 주상복합보단 평창동 대저택에 살고 싶고, 명품백을 사는 것보단 운전과 스케줄 관리할 비서를 두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 단순히 그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도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지도록 하고 싶다. 태어난 환경이 좋았다면 분명 그중엔 세상에 보탬이 될 사람들이 있을 텐데..